이순을 코앞에 두고 보니 스치는 것마다, 바라보는 것마다 어머니의 흔적들로 주변을 맴돌고 있다.
지금 같으면 참 잘 모셨을 텐데, 예전엔 도저히 그럴만한 여력이 없었고, 마음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던 내 삶 안으로 어머니를 끌어안을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어려서 보아왔던 어머니는 내게 있어서 거대한 태산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에게는 여러 다양한 재능이 참 많으셨는데, 병이 들어 우리 집에 잠시 모셨을 때 막내인 나를 붙들고 억눌려있었던 감정들을 전부 쏟아내셨었다.
"나는 바느질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노래, 글쓰기 등등 못하는 게 없는데 왜 내 인생이 이렇게 꼬였지?" 라며 온갖 불만들을 토로하셨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엿보는 순간 비로소 어머니에 대해 조금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머니도 그저 연약한 한 여자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친정아버지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오직 정신력 하나로 모진 삶을 버텨오셨다.
그런 중에 어머니는 대장암 말기라는 통고받으시면서 6개월의 사형선고를 받으셨지만 우려와는 달리 모든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셨고 이후로 5년을 더 사셨다.
오빠의 사업 실패 후 어머니의 거처마저 힘들어진 상황에서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기는 했지만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많은 재산 아들 앞으로 다 밀어 넣으시더니 이제는 방한 칸 머물 곳이 없다는 사실에 눈물만 났다.
신랑의 눈치를 보며 어머니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복병이 숨어있었다. 자신과 사투하는 동안 나 자신도 잊고 있었던 어머니를 향한 원망들이 한꺼번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중 신랑과 어머니 사이에 트러블이 나면서 어머니는 뒤도 안 돌아보시고 언니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렇게 언니가 지극정성으로 어머니를 케어하는 중에 상태가 나빠진 관계로 다시 병원으로 모셔야 했다.
약이 독했는지, 어머니에게 치매가 왔고, 그 때문에 정신을 놓는 시간도 점점 많아졌다. 어머니는 수년 전에 돌아가신 작은 어머니를 찾는다며 병실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간호사들이 애를 먹기 일쑤였다. 급기야 병원에서는 간병인을 붙이지 않으면 퇴원하라고 경고했다.
어머니의 숨이 끊어지기 전날 어머니는 천국을 보셨다며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내 손을 가만히 잡아주셨다.
다음날 어머니는 평안한 가운데 숨을 거두셨다. 병원에 도착하기 바로 전에 어머니가 숨을 거두시는 바람에 임종을 지키지 못했는데 간호사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새언니가 평소에 어머니가 좋아하던 시편을 읽어 드렸는데 그 소리를 듣고 너무나 평안하게 임종하셨다고 했다.
임종을 못 지켰다는 사실보다, 감춰두었던 얘기를 풀어놓고 싶었는데, 영영 물 건너가고 말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려왔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후유증이 남아 있음을 느낄 때마다 두 딸에게 마음이 가는 게 사실이다. 어머니의 나이만큼 되고 보니 내가 얼마나 어리석게도 매인 부분이 많았는지 절감하게 된다.
늙는 게 아니라 익어간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요즘, 좀 더 아름답게 늙어가는, 아니 익어가는 비결을 살펴보고 있다. 마음에서, 손에서 인생에서 움켜쥐고 있던 것들이 조금씩 풀어지는 것이 감사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