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에게
오래전 우리 가정에 예상치 못한 큰 어려움을 인해 잠시 일했던 호떡 포장마차는 내 인생에 적지 않은 교훈을 주었다.
딸아이가 학교 앞 교문 근처에서 엄마가 포장마차 장사를 하게 해달라고 교장선생님께 정중히 허락을 구했던 일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얼마든지 부끄러워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딸아이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그 일이 지금까지 가슴 아픈 추억이자 오래도록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어찌 보면 사소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일은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꽤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일을 계기로 한 지인의 권유로 라디오 프로그램인 “여성시대”에 사연으로 보내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연이 채택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는 한바탕 난리가 날 만큼 가족모두가 크게 기뻐했었다.
방송국 작가로부터 직접 인터뷰 요청도 받았지만, 그때는 자신이 없어서 정중히 거절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 못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호떡을 팔며 겪었던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친정어머니 때문이었다.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세상 물정에 어두우셨고, 그로 인해 집안의 거의 모든 재산을 잃는 큰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돌도 안 지난 갓난 아기라 기억은 없지만, 어머니가 얼마나 큰 고생을 하셨는지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호떡을 굽던 어느 겨울날,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만두와 찐빵 장사를 하시며 사 남매를 키우셨던 어머니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사셨다.
친정아버님은 어머니의 고생이 자신 때문이라 여기셨는지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장사에 매진하셨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 날부터 어머니는 틈만 나면 병든 닭처럼 스르르 조는 일이 많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싫었던 나는 어머니가 왜 그렇게 늘 졸기만 하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는지 어머니는 나를 위한 따뜻한 말도, 사랑에 대한 감정조차 나눌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장사에 뛰어들고,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 없이 서서 일하는 삶을 겪으며,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하루는 장사 도중 엄마와 전화를 하며 문득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 대를 이어 빵 장사를 하게 됐네. 웃기지? 이참에 만두도 팔아볼까?"
어머니가 속상해할까 싶어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사실 깊은 속울음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왜 그렇게 잠이 부족하셨는지, 왜 그렇게도 자주 눈가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는지를 이제야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호떡을 굽고 팔면서 열 시간 넘게 서 있을 때가 많았고, 하루가 끝나면 다리는 저리고 발가락은 감각이 없을 정도였다.
눈앞에 서 있는 손님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호떡을 건네다가도, 문득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핑 돌곤 했다.
사람들 몰래 뒤돌아 눈물을 훔치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일에 몰두하던 나날들…. 그 시간은 내 삶에 있어 잊을 수 없는 훈련과도 같은 순간들이었다.
문득 남편 생각도 났다.
“여보, 당신 지금까지 우리 먹여 살리느라 고생 많았잖아. 당분간은 생활비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해볼게.”
그 순간 남편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남편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어. 몸도 약한 사람이….”
학교 앞 장사 계획은 결국 교장선생님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다른 장소를 알아보던 중 자연스럽게 남편의 일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그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노점도 정리가 되었다.
그 이듬해 신문사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리고 1년 뒤엔 출판사로 이직을 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꽤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경험은 내 삶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는 깊은 흔적이 되었다.
노점이라는 말 그대로 ‘밑바닥’의 삶을 통해 인생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얻었고, 그 어떤 책이나 강연보다도 더 큰 공부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 시간은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 시간이었다.
호떡 하나에 기뻐하고, 천 원짜리 한 장에도 감사하는 사람들을 보며, 인간적인 온기와 삶의 본질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 노점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그 좁은 틀 속에서만 세상을 보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수많은 사건들이 많은 삶에서 그때의 고생이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한 선물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함께 견뎌준 가족과, 이미 먼 곳에 계신 나의 어머니께
진심으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일러스트 ‘반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