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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서기 Aug 19. 2021

나의 좌충우돌 신혼일기


     

 신혼여행에서 겪었던 작은 에피소드가 기억이 난다. 우리 부부는 일 년 정도 열렬히 연애를 하다가 결혼에 골인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큰오빠가 몇 날을 설득한 끝에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신혼여행에서부터였다. 당시 내가 얼마나 기세 등등했는지 친정아버지가 일본에서 사다주신 최고급 카메라를 던지는 바람에 산산이 부서질 정도였다.

그 일로 우리 부부는 신혼지에서 만났던 다른 부부들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연애할 때는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남편이 다 받아줬기 때문에 신혼여행에서도 달라질 것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날도 여전히 나의 철없는 행동이 계속되자, 가만히 있던 남편이 안 되겠는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난 도저히 너 감당이 안 되니까, 서로 여기서 갈라지는 게 좋겠다. 넌 네 집으로 가. 난 내 집으로 갈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때까지만 해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남편의 저승사자 같은 표정을 보고는 덜컥 겁이 났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속상해하실 부모님 얼굴, 주변의 질타, 개망신 등등….       

여기서 끝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그럼에도 남편은 유구무언 아무 말이 없었고, 내 손을 뿌리치고는 혼자 막 걸어갔다. 나는 졸지에 꽁지에 불붙은 강아지처럼 남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30여분이 지났을까, 그제야 남편은 알았다며 마음을 풀었다. 하마터면 신혼여행에서 쫓겨 왔다는 불미스러운 명예를 달고 살 뻔했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울먹거리는 내 앞에서 썩소를 마구 날리고 있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의 왈, 처음부터 기선제압을 하지 않으면 평생 나를 잡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다는 후문이 전해 들었다. 참 기가 막혔다. 그 후로 나의 봄날은 바람같이 물러가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뭘 믿고 그렇게 겁 없이 설쳤는지,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암튼 그렇게 삐거덕하게 출발을 하고 신혼열차에 올라타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가는 날부터 심하게 싸웠던 까닭에 요주의 인물로 찍혔고 오는 날까지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신혼여행지에서 헤어지는 신혼부부들이 간간히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혹여 라도 우리가 딱 그 꼴이 나지는 않을까 몹시 걱정을 해주었다.     

우리 팀에 국제결혼한 부부가 있었는데 한국인 신부가 참 예뻤던 기억이 난다. 또 어떤 사람은 웃을 때마다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는 참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 싶었다. 그 사람이 민망했던지 갑자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저, 사실은 세차장에 근무하는데요. 일하다가 앞니가 부러지는 바람에 여행도 미룰까 생각했는데 오길 잘한 거 같네요.” 그러면서 큰 소리로 웃었는데 정말 앞니가 빠지고 없었다. 내가 실소하며 웃자 그 사람은 신이 났는지 불현듯 출장 이야기를 꺼냈다. 외부 출장 시 항상 큰 대형차에 물을 잔뜩 싣고 간다는 말을 듣고 참 희한한 직장도 다 있다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소방대원이었던 것이다. 세차장이 아주 틀리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호텔에 도착하여 피곤한 여정을 풀려는 데 이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호텔 측에서 일방적으로 우리가 계약한 호텔 방을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내준 상태였다.     

당시 단체로 여행을 온 외국 관광객들이 우리가 계약한 방을 점거해버렸던 것이다.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그분들이 소위 직책이 있던 사람들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사과를 했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20명이 넘는 신혼부부가 첫날부터 오도 가도 못하고 밖에서 날밤을 새야 한다는 생각에 항의를 했지만 호텔 측에서는 어쩔 수 없다며 난감해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보는 호텔이라는 생각에 모두들 잔뜩 꿈에 부풀어있었는데 그야말로 신혼 첫날부터 졸지에 처량한 달밤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우리 팀들은 중년을 넘은 부부가 많다 보니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맴돌았다. 막막한 심정으로 한 시간 넘게 씨름을 하고 있는 그때, 모든 상황을 말없이 지켜보던 국제결혼한 부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 그 미국인 새신랑, 미군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며 미 대사관에 모든 사실을 알리고 정식으로 고소하겠다고 엄포를 놓자, 좀 전까지 배 째라 식으로 있던 호텔 측에서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는 갑자기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덕분에 신혼 팀들은 계약금 중 반을 돌려받고 식사도 추가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한 시간 전 만해도 첫날밤을 망쳤다며 실랑이하던 사람들이 호텔 측에서 호의적으로 나오자 모두들 얼굴이 해 같이 빛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웬 횡제인가 싶었는데, 한국 사람들 돈에 참 약하다는 거, 그때 새삼 알았다.     

이날의 사건은 평생에 기억에 남는 특별한 신혼여행이 되었다. 그날 밤 우리는 호텔 측에서  발 빠르게 알아봐 준 덕분으로 나름 고급 콘도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그렇게 좌충우돌로 이어졌던 2박 3일의 신혼여행이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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