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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S ELECTRIC Jul 16. 2024

LS일렉트릭의 로켓배송을 꿈꾸며,

그렇게 나는 미국 공장장이 되었다.

2012년 1월, 신입사원 연수 시절이었다. 


“광훈아, 너는 말발이 좋아서 공장장까지 될 거야.” 


내 동기 녀석이 뜬금포 멘트를 던져줬다. 신입 사원 연수 때 의욕 넘치고 말이 많고 발표를 자진해서 하던 내 모습을 보고서 그 동기가 이런 멘트를 던진 것이다. 그때는 젊기도 젊었고 무언가를 도전해 본다는 생각으로 연수 시절에 패기 넘치는 행동을 했던 것 같다. 하기야 연수 시절 받았던 과제들은 진짜 업무도 아니라 연수할 때 실수한다 해도 큰일 날 것도 없었고 그저 도전하는 걸 즐겼던 거 같다. 그 동기 녀석 말이 씨가 됐는지 나는 공장장이 되었다. 그것도 LS일렉트릭의 미국 공장장이 말이다. 


신입사원 시절의 나와 동기를


아무것도 없이 그저 텍사스 한복 판에 내가 공장장으로 일하게 될 장소에 가 보았다.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설비도 없었다.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 하는 곳이다. 뭐든 근본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왜 우리가 미국에서 공장을 인수하여 생산을 시작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궁금증에 대해서 나를 여기로 보내주신 임원분께서 답을 주셨다. 


“나는 LS일렉트릭의 로켓 배송을 꿈꾸고 있어.”


전력시장의 로켓 배송? 그렇다. 미국 내에서 LS일렉트릭이 가야 할 일종의 청사진이 바로 이것이다. 

업계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LS일렉트릭의 한국 양산 공장은 최대한 공장 내의 부지를 최대한 활용해서 제작된 제품들이 바로바로 출하될 수 있게끔 한다. 제품 제작에 필요한 부품들이 생산 일정에 맞추어 정확하게 공장으로 납품되고 계획에 맞춰져서 순차적으로 조립된다. 제품 조립이 완료되면 바로 포장이 되고 배송될 곳으로 운반이 된다. 모든 과정이 고객의 주문과 동시에 시작되는 MTO(Make to Order) 시스템이며 이 과정으로 인해 공장 내부는 최소한의 재고만 보유한 채로 공장 내부의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는 이점을 안겨준다. 



이런 방식은 일단 미국에선 불가능하다. 

우선 방대한 땅의 크기로 인해서 재고를 최소한으로 가져가는 MTO 방식으로는 절대로 고객을 만족시키는 배송을 해줄 수 없다. 새로운 자동차 하나를 구입해도 주문 이후에 제작이 들어가서 집으로 배달해 주는 한국과 다르게 미국에서는 자동차 매장에 진열된 수많은 자동차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돈을 지불하고 바로 진열된 차를 본인이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제조업을 한다면 이렇게 재고를 가져가는 MTS(Make to Stock)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 때문에 현재 LS일렉트릭의 한국 사업장은 MTO 방식을 취하고 있고 미국은 창고를 현지에 둬서 MTS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있는 미국 텍사스 공장의 역할은 무엇일까? 

바로 ATO(Assemble to Order)가 궁극적인 목표이다. 고객이 주문하면 기존 완성품의 옵션만 변경하여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다양하고 빠르게 제공해 주는 것. 그것을 해야 하는 건 영업을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공장을 더 효율적으로 돌리기 위해서도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의 MTS도 아니고 한국의 MTO도 아닌 ATO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MTS, MTO, ATO란 무엇인가


MTS, MTO, ATO의 공정 및 리드타임(납기)


기존의 방식처럼 주문이 들어와야 한국에서 제작이 들어가고 필연적으로 태평양을 건너는 시간까지 더해진다면 고객에게 빠른 배송이라는 이익을 실현해 줄 수가 없다. 미국 창고 내에 재고를 쌓아 두는 것 또한 고객이 재고 이외의 제품을 원할 경우 고객 만족을 시켜줄 수 없다. 미국에 다양한 기본 재고들을 보유해 놓고 고객이 주문 시에 원하는 스펙에 맞추어 개조 작업을 텍사스에서 진행하여 고객에게 빠른 전력기기를 안겨주는 것이 바로 텍사스 공장의 존재 이유이며 내가 여기서 일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빠른 배송이라는 고객 만족을 미국 전력기기 시장에서 보여줄 수 있다면 LS일렉트릭이 전력시장의 아마존, 쿠팡을 꿈꿔볼 수도 있을 것이다. 


LS일렉트릭의 주력사업인 전력기기는 전통적으로 BtoB(Business to Business) 사업이었다. 하지만 고객층이 다양해지고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BtoC(Business to Customer)로 변해가고 있다. 전통적인 MTO 방식을 탈피하고 MTS 방식을 택하면서 보다 고객 중심적이고 세계 시장에 맞추어 변해가고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결국 우리는 로켓 배송이라는 말처럼 고객 지향적이고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일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부지런히 면접 보면서 어느새 직원을 4명 뽑았다. 생산 팀장도 있고 작업자들도 있고 지게차 운전자도 있다. 미국이라는 멜팅팟의 나라답게 출신지도 다들 다양하다. 전형적인 Texas 출신의 Texan 생산 팀장 1명, 쿠바에서 건너온 작업자 2명, 베네수엘라에서 건너온 지게차 운전자 1명까지… 그리고 한국에서 직접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로 뛰어든 나도 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들을 관리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이제는 좀 요령이 생긴 것 같다. 의사소통의 문제, 문화적인 차이 등도 하나하나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극복해 나가는 중이다. 사실 한국인처럼 알아서 요령껏 하는 건 기대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모든 프로세스를 철저히 짜놓고 제공해 주면 그에 따라서 생산 팀장과 작업자들이 움직여 준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에 나의 맷집이 강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LS일렉트릭이 변해가는 환경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듯이, 나 역시 미국에 맞춰져서 탈피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현재 나와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점차 성숙해 가면서 나 또한 그들과 발맞추어 성장해 나가는 느낌이 든다. 마치 텍사스 공장이 나아가야 하는 ATO의 방향처럼 직원들의 요구에 따라서 나라는 제품에 계속 업그레이드가 가해지는 느낌이다. 



신입사원 때와 비교해 보면 그때만큼의 무대포 정신이나 패기, 젊음이 있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미국에 오게 됨으로써, 그것도 공장장으로 오게 됨으로써 도전 정신은 신입사원 못지않게 다시 리셋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예전 신입사원 때 나를 공장장이 될 것이라 예언 했었던 그 동기 녀석의 말이 다시 떠오른 게 아닐까? 그 동기를 텍사스 공장에서 다시 보게 된다면 텍사스 바비큐를 한번 사주고 싶다. 


미국 공장장이 되어 명함 한 장을 받았다. 명함에는 Plant Manager라고 적혀 있다. 내가 미국 공장장으로 결정되었을 때 어떤 한 분은 나에게 “어깨가 무겁겠어요.”라고 한 적이 있다. 지금은 어깨가 무겁기보다는 이 명함 한 장이 참 무겁다. 그래도 헤쳐 나가면서 나의 맷집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3명의 직원이 30명, 그리고 나중에는 300명 정도 된다면 이 명함이 가벼워질 순간도 오게 될 것이다. 모든 게 가벼워지는 그 순간에 미국 땅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LS만의 로켓 배송이 현실화되길 바란다. 


Plant Manager가 박혀 있는 무거운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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