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이제 죽고 사는 문제가 됐다"
선거철인 요즘, 인터넷상에서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검색하다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문장이다.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과학기술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미래가 과학기술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중에서도 탄소중립(Net Zero) 정책은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주제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이상기후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탄소국경세, 내연 기관차 규제 등 실질적인 제제가 눈 앞에 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발표하여, 환경 보존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여도를 표현하고, 국가의 경쟁력을 홍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1년 11월에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NDC목표를 26.3% 감축에서 40% 감축으로 상향 조정하여 국제 사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목표연도까지 연평균 감축률은 우리나라가 4.17%이고, 일본 3.56%, 미국/영국 2.81%, EU 1.98% 순으로 우리나라가 주요국들에 비해 높다.
이를 두고 갑론을박 논란이 많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정해졌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에너지 기술 로드맵('21.12/2)"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가능성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탄소중립 에너지 기술 로드맵은 현재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을 파악하고 앞으로 나가야 할 목표를 연도별(2030년, 2050년)로 수립한 전략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에너지를 생산, 저장, 사용, 재활용의 4단계로 나누어 배출되는 탄소의 양을 감축해 나가겠다 것이다. 오늘은 이 단계에 따라서 탄소중립 에너지 기술 로드맵을 살펴보겠다.
에너지란, 인간이 활동하는데 근원이 되는 힘을 말한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주로 동물이나 물, 불의 힘을 이용하였지만, 르네상스 이후 과학의 발달로 석유와 석탄을 이용하게 되면서 인류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특히 증기기관의 발명은 의식주를 개선하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르네상스: 14세기~16세기에 일어난 문화혁명으로, 유럽 근대화의 기초가 됨
석탄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게 되면서 의식주뿐만 아니라, 생활 방식 자체에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구를 비롯한 수많은 전기제품들이 만들어졌고, 인류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조금 더 벗어났다. 밤을 환하게 비추는 전등으로 인해 생산성은 향상되었고, 전화를 비롯한 통신의 발달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토록 편리한 삶을 만들어준 석탄과 석유는 이제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석탄과 석유가 공기를 만나 연소하게 되면 이산화탄소(CO2)를 배출하게 되는데, 이것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다.
지구의 기온이 오르자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기 시작하며 문제가 커지고 있다. 빙하가 녹게 되면 그 내부에 갇혀있던 메탄가스가 방출될 수 있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 잠재력이 21배나 높아 더욱 위험하다. 그래서 온 지구촌이 국제기후협약 등을 통해, 지구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석탄과 석유의 사용을 점차 줄이는 대신, 신재생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기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태양에너지, 바람, 파도, 지열 등 지구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은 물론, 수소도 좋은 신재생 에너지원이 된다. 최근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점을 고려해 해상풍력발전에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상용화를 위한 기술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우선 전기에너지의 경우, 저장이 매우 어렵다. 물을 저장하기 위해선 물통이 있으면 되지만, 전기에너지는 그런 식으로 저장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전기에너지를 화학에너지의 형태(직류)로 변환하여 저장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배터리이며, 신재생 에너지 사업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이 배터리를 대용량화한 것을 ESS(Energy Storage System)라고 한다.
특히,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발전 시간을 예측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풍력 발전이란 바람이 불 때 전기가 생산되는 것이지, 에어컨을 틀어야 할 시간에 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기를 저장하는 기술(ESS)은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또한 발전소에서 거리가 먼 수용가*까지 전기를 안전하게 송/변전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교류를 이용해 송/변전하는 기술은 발달해 있지만, 직류와 교류를 함께 사용하는 기술은 부족해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전기를 송/변전하는 시설은 교류 전기 위주로 구축되어 왔지만, 태양광 발전 등은 직류로 전기를 생산하므로 신재생 에너지 시설이 늘어날수록,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수용가: 전기를 사용하는 고객
이러한 시설을 사람 없이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DT(Digital Transformation)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마련되고 있다. 각 시설 및 장치들의 상태를 감시할 수 있는 센서를 통해 현장에 가지 않아도 현 상태를 모니터링 및 관리할 수 있다. 센서는 사람의 눈으로 알 수 없는 것도 파악할 수 있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를 눈에 보이는 것처럼 관리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석탄과 석유는 발전소에서도 사용되지만, 수송을 위한 자동차, 배, 항공기와 각종 산업공정에도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운전 시 배출되는 배기가스로 인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인식되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자동차에 대한 기술과 지원 정책이 생기는 중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용량 증대 및 충/방전 기술의 발달로 보급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며, 충전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도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한 예로, 우리 주변에 있는 주유소를 ‘에너지 슈퍼 스테이션(Energy Super Station)’으로 전환하는 사업이 시작되고 있다. 기름을 넣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기차 및 수소차도 충전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확장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신재생에너지의 생산 및 소비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각 산업공정에서도 탄소 배출을 줄이고자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철강산업 및 석유화학 산업 또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 군이다. 우리의 직접적인 생활과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이런 기반 산업으로부터 다양한 소비재가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개선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철강산업의 경우, 코크스 소비 열량 저감을 위해 무탄소 연료로 전환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으며, 석유화학 산업의 경우, 나프타 열분해공정의 저 탄소 화를 위한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마지막 단계는 재활용 부분이다. 대표적인 기술은 탄소 포집 및 저장기술(CCUS,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이다. 대기 중에 있는 탄소를 포집할 수만 있다면, 꼭 석탄과 석유를 활용해야는 분야는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기술 연구 단계이며, 상용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각 가정마다 공기청정기가 있는 것처럼 길거리나 도로, 산업단지 등에 이산화탄소 포집기가 설치된 모습을 그려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포집 된 이산화탄소를 보관 및 이동시킬 수 있는 기술, 이를 전환하여 친환경 자원순환 측면에 활용하기 위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다.
위의 그림은 에너지의 생산과 전달, 산업에서의 활용과 수송, 공통 영역 등 3가지로 분류하고 분야별 현 수준 및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중점 분야로 정리한 표이다. 에너지 분야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확대, 이를 수용 및 운용하기 위한 인프라 확충 및 효율화로 정리할 수 있다. 산업 및 수송은 탄소배출을 저감할 수 있는 전기에너지의 활용과 관련된 기술로 정리되며, 공통 영역은 자원의 순환과 CCUS로 정리된다.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에너지 환경을 제공한다. 자연을 이용한 에너지 생산이기 때문에, AI를 활용한 정확한 예측 기술이 필요하게 되었고, 전력 변환 시 효율 향상을 위해 전력용 반도체 기술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기 때문에, 송/변전 계통을 비롯한, 수/배전반에 대한 모니터링 및 진단 기술도 Digital화 되고 있다. 탄소 중립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이룩하기위해 자연스럽게 4차 산업혁명의 융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환경의 변화는 전력 거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까지는 전기의 생산량을 가지고 전기 가격이 책정되었다면, 신재생 에너지가 상용화될수록 전기 소비량이 전기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즉, 많은 사람이 전기를 사용하고 싶어 할 때는 전기 가격이 상승하게 되고, 전력 사용이 적은 시간대의 전기 가격은 하락하게 된다.
개인 소비자들 또한 다양한 수단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으며, 전기 시장가격에 영향을 주게 된다. 우리는 전기의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프로슈머(Prosumer)가 될 수도 있다. 한 예로 전기자동차 소유주의 경우, 한낮 주차되어 있는 시간에는 차량에 있는 전기를 팔 수 있고, 또 출퇴근 등 필요한 시간에 전기를 구매하여 충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애매모호한 중립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힘이 약한 나라가 강대국 사이에서 번영할 수 있는 길은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시대를 대비하여 각 분야별 핵심기술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현 수준을 파악하여, 준비하려는 계획을 담은 것이 “2050 탄소중립 에너지 기술 로드 맵”이다.
미래는 아무도 가본적 없는 무지의 공간이다. 그렇기에 모든 인류의 행복을 위한 대승적인 가치만이 개인을 넘어서 지구촌이라는 공동체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고, 전쟁이 아닌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 시대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