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레슬링이 예술인 세 번째 이유

by 이스윽

소설,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와 같은 형태에만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프로레슬링에도 이야기가 있다.

'기승전결이 있는 나름의 이야기'와 '다양한 콘셉트의 인물'이 프로레슬링이 예술인 세 번째 이유이다.

이들은 다짜고짜 느닷없이 싸우지 않는다. 나름 이들이 싸우게 되는 이유들이 있다.


한 경기가 벌어지기까지 나름의 기승전결이 있다.

선역 선수가 제3의 선수와 경기를 벌이고 있는 도중에 악역 선수가 난입하여 경기를 망쳐놓는다. 그걸로 대립관계가 형성된다.

악역 선수가 시비를 건다. 시비를 거는 방법도 다양하다. 선역 선수의 아버지를 건드리기도 하고, 아들을 건드리는 이야기부터 선역 선수의 경기력을 폄훼하거나 깎아내리며 관계가 심화된다.

이러한 관계가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가량 이어지기도 한다.

매주 시간이 갈수록 선역과 악역 선수의 대립이 격해지고 그들의 대립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메인 PPV로 이어진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진다. 선역이 이기면 정의구현이 되어 관객은 속이 시원해지고, 악역이 이기면 관객은 아쉬워하거나 분노하며 다음번 정의구현을 기다린다.


단순한 인물 간의 이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아 직관적이고 좋다. 이번 주를 놓쳐도 다음 주에 바로 다시 이해할 수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이야기다.

그리고 이야기와 인물은 관객의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안정감을 주고 맞추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예측하지 못한 선역 선수가 악역으로 전환하거나, 악역 선수가 선역 선수가 되는 순간은 언제나 흥미롭고 충격을 준다.) 그리고 이야기가 단순해야 말이 통하지 않는 전세계 수 십 개국의 사람들에게 수출할 수 있다.(wwe도 수익사업이자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는 주식회사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와 인물이 다소 유치하거나 특정 국가의 인종을 위한 이야기라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먼저 선역과 악역으로 딱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는 인물을 요즘 시대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실제로 사는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언제나 착한 인물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나쁜 인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직장에서 나에겐 미운 나쁜 상사이지만 그 상사도 집에 가면 누군가의 좋은 아빠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하지만 레슬링의 세계에서의 인물은 대부분 일차원적으로 착한 역할은 착하고 나쁜 역할은 나쁜 모습만 보여준다.

단순하기에 국가를 초월하여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를 얻어낼 수 있지만 유치함은 어쩔 수 없다.

리들(riddle)의 악역 연기는 상상할 수 없다. 그는 팬들과 사진을 잘 찍어주는 선역이다.



그리고 선역과 악역에 미국 중심의 선입견과 편견이 주입되어 있다. 이 선입견과 편견은 미국인 중심의 사고가 깔려있는 듯하다.

레슬매니아31 당시 탱크를 타고 오는 러시아 대표 rusev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벌어질지 몰랐던 2015년 당시 루세프라는 레슬러와 존 시나(John Cena)의 대립은 한창이었다.

레슬마니아라는 wwe에서 벌어지는 큰 행사에 맞추어 루세프는 러시아 국기와 함께 탱크를 타고 등장했다. 그는 악역이었고, 푸틴을 찬양하며 미국을 디스 하는 역할로 등장했다. 또한 그의 행동 역시 악역답게 젠틀하거나 깔끔하지 못했고 관중은 자연스럽게 러시아라는 국가의 사람은 악행을 저지를 사람으로 보이도록 설정하였다.

참고로 루세프의 실제 국적은 불가리아다.(러시아와 불가리아의 관계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단지 캐릭터가 러시아 연방의 영웅이기 때문에 그렇게 연기한 것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은 오해할 소지가 충분하다. 미국이 정의이고 러시아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보일 수 있는 위험한 이야기다.(작금의 러시아는 악이 맞다.)


그럼에도 관객을 하나로 묶는 효과 때문인지, 다민족이 사는 미국에서도 국가라는 소재는 여전히 자극적인 내용이어서 그런지 국가에 관한 이야기는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이야깃거리 중에 하나였다.


인물 또한 미국인 시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는 유창하게 영어를 할 수 있음에도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어설프게 영어를 쓰게 하는 연기를 시키기도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아시아인은 어눌하게 보인다.

그와 대립하는 미국인 레슬러는 편안하게 영어를 구사한다. 자연스럽게 모자란 사람(아시아인)과, 그보다 상위의 사람(북미인)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선입견과 편견으로는 아시아인은 영어를 잘하면 안 되는가 보다. 아시아인이 영어를 잘하면 몰입이 어려워서 그런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이런 점은 요즘 시대에 많은 불편한 사람들에게 매우 언짢게 보인다.


요즘에는 청소년도 볼 수 있도록 15세 관람가를 지향하며 레슬링이 진행되고 있기에 젠더나 국가, 인종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은 것 같다. 국가 간의 대립이나 어수룩한 아시아인의 캐릭터는 잘 보이지 않는다.

프로레슬링을 잘 모르거나 자주 보지 않는 사람은 승패가 짜여 있는 이것이 재미없다고 한다. 레슬링을 스포츠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누가 이길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재미있다.

그렇지만 프로레슬링을 예술의 시점으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야기는 얼마나 탄탄하게 짜여있는지, 승패를 떠나 배우(레슬러)들이 대본에 맞추어 얼마나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지 합이 잘 맞는지를 보면 그때부터 레슬링은 예술이 된다. 그들이 자신의 캐릭터에서 얼마나 벗어나지 않고 충실하게 연기하고 있는지 본다면 훨씬 프로레슬링을 흥미 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레슬링은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