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화'된 연기

by 이스윽

요새 김익한 저자의 '거인의 노트'라는 책을 읽는다. 기록이 왜 중요한지, 기록을 하면 어떤 장점이 있는지, 어떻게 기록을 해야 효과적인지를 다룬 책이다. 저자가 책에서 '자기화'라는 단어를 언급하였다. 영상을 보거나, 타인을 말을 듣거나, 혹은 책을 읽은 뒤 기계 같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영상, 책이었는지 자신의 말로 이해하고 이해한 내용을 중요한 자신의 키워드로 요약, 기록하라는 말이었다. 책을 읽으며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배우는 연기를 할 때 자신의 캐릭터를 얼마나 이해하고 '자기화' 시켜서 연기할까?


종종 만나는 친한 주변 배우나 수업시간에 연기 공부를 하는 학생과 이야기를 할 때면 종종 질문을 던지곤 한다. 배우가 역할에 몰입하여 캐릭터가 되는 연기가 좋은 연기일까? 아니면 역할을 배우에 맞춰서 하는 연기가 좋은 연기일까?


첫 번째 사례에 해당하는 대표적 예시는 우리나라에 김명민 같은 배우를 꼽을 수 있겠다. 온전히 배우 자기 자신을 버리고 역할에 집중하여 내가 그 인물이 되는 배우. <페이스 메이커>에서의 김명민과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은 같은 배우이지만 다른 인물이라고 관객은 믿기 충분하다.

캐릭터를 옷에 비유하면 김명민 같은 배우는 기존의 옷에 자기의 몸을 맞추려 한다. 내 몸이 뚱뚱하면 살을 빼고, 내 몸이 너무 홀쭉하면 살을 찌운다. 그래서 주어진 나의 옷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입으려 노력한다. 배우 스스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진 뒤 역할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래야 배우 본인이 어디가 부족하고 어디를 채워야 하는지 알고 배우가 옷에 자기 자신을 맞출 수 있다.

두 번째 사례에 해당하는 예시는 우리나라의 송강호, 최민식 같은 배우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다른 작품 다른 역할이지만 배우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배우의 말투, 습관, 행동이 어느 정도 유지 된다. 배우가 자기 자신을 놓거나, 버리지 않고 역할을 자신에게 가져와 맞춰서 연기한다.

송강호, 최민식 같은 배우는 자기 자신(배우)에게 맞추어 주어진 옷(역할)을 자르고 붙이고 수선, 리폼하여 입는다.


배우가 역할을 수선하는 과정이 바로 '자기화' 과정이다. 대본을 읽고 역할의 나이, 신체적 특징, 정서적 상태, 인물이 태어나며 앞에 겪었던 전사(前史)를 생각한다. 그리고 배우 자기 자신의 신체, 정서적 현재 상태를 이해, 확인, 점검한다. 인물 간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한다. 무대에서 선보여줘야 하는 것과 관객에게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고려한다. 배우 몸에 맞춘 옷을 입고 충분히 연습한다. 배우에게 그 옷이 익숙해지면 비로소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입고 '자기화' 된 연기를 관객에게 선보인다.


배우 본인 스스로 자신의 몸의 단점과 장점도 모른 채 남이 입은 옷을 보고 무턱대고 따라 맞추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맞춘 옷이 나에게도 맞을 거라 생각해서 무턱대고 입거나 여기저기 쉽게 난도질하여 입은 옷은 거적데기에 불과하다. 배우 본인의 자기 관찰과 객관화, 역할 분석을 통한 자기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연기로 관객 앞에 보이는 건 옷을 벗은 채 나체로 관객 앞에 서는 것과 다름없다.


앞서 예시로 설명한 두 가지의 경우 중 무엇이 좋고 훌륭한 연기인지 한 가지만 택하여 답할 생각은 없다. 어떤 연기가 훌륭한 연기인가를 놓고 두 상황 중 무언가를 택하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다. 결국 작품과 상황에 맞게 배우는 두 가지의 경우를 모두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몸을 옷에 맞추든, 옷을 몸에 맞추든 어울리게 소화하여 관객에게 선보였다면 역할을 연기한 배우는 본인 스스로와 역할을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자기화' 시켜 연기한 사실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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