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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re Sep 10. 2020

디스코 엘리시움

당신은 기묘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41번 서에서 레바숄 마르티네스로 파견된 형사다. 하지만 살인사건은 뒷전이고 약과 술에 쩔어 살던 당신은 어느 날 밤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고, 그 상태에서 지원을 위해 파견된 57번 서의 카츠라기 킴 형사와 만나게 된다. 이제 당신은 킴 형사와 함께 살인 사건의 수수께끼를 푸는 동시에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 나가야한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형사인가?' 라는 캐치프라이즈를 달고 출시된 ZA/UM사의 인디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이다. 약간의 펑크스러움을 곁들인 현실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게임은 고전 RPG, 특히나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와 같은 게임에 열광했던 사람이라면 빠져들만한 요소를 잔뜩 가진 텍스트 위주의 게임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분명 탐정 rpg라는 것을 내세우며 홍보하고 있으나 사실 정말 그런 게임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검시나 기타 조사는 캐릭터의 스탯에 따라서 알아서 진행되거나 파트너인 카츠라기 킴 경위의 도움을 받아 선형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므로 '당신은 어떤 종류의 형사인가?'라는 문구는 이 게임을 대표하기엔 약간 어려움이 있다.


그것보다는 '당신은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라는 문구가 조금 더 게임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다분히 정치풍자적인 색깔을 가지고 그 속에서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가, 정치적 혹은 윤리적으로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게임에 가깝다. 

주인공은 자신의 생각과 직접 교류하며 정체성을 찾아나간다.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동료 캐릭터는 카츠라기 킴 경위 하나다. 하지만 주인공의 다양한 생각들이 플레이어와 교류한다. 그 생각들은 스탯에 따라 주인공에게 제안이나 조언을 해준다. '권위, '수사학', '연극(거짓말)', '노련미', '평정심', '직감' 등 다양한 생각이 말을 걸어오고 그들은 나름대로 각자 구분되는 성격과 화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조언이 항상 옳지는 않다. 당연하지만 말이다. 현실에 사는 우리 역시, 욕망이나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결과를 불러오는 게 아닌 것처럼. 오히려 파국적인 결말을 불러올 때도 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 위에 이런 스탯이나 생각(일종의 패시브 스킬)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주인공의 캐릭터를 쌓아갈 수 있다는 것이 이 게임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스탯과 생각, 그리고 타인과 교류할 때 고르는 선택지에 따라 당신은 슈퍼 형사가 될 수도 있고 재미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과만하는 만만한 형사가 될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도 공산주의자가 될 수도, 자유주의자가 될 수도, 혹은 회색분자나 도덕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다분히 정치적인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정치적, 혹은 성격을 가진 인격이 될 수 있으나 공산주의자가 되어 혁명에 앞장서거나, 자유지상주의자가 되어 혁명파를 처단하거나 할 수는 없다. 한 마디로 당신이 영웅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레바솔이라는 혼란스러운 도시엔 이미 이해관계와 영향력이 다양하게 얽혀 있고, 주인공은 단지 이방인일 뿐이다.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건 미시적인 영향을 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 부분에 있어 디스코 엘리시움은 정치적인 만큼 현실적이다.


정치적인 색깔을 띤 대부분의 예술이 그렇듯, 디스코 엘리시움은 상당히 풍자적이다. 풍자의 대상은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물론 게임 내에서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게임 자체가 약간 좌파 친화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풍자나 비판의 대상에서 빗겨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게임 내에서는 자유주의의 패악보다는 노동 운동의 허상이나 공산주의의 비현실성에 대한 지적이 더 많이 보인다.

'공산주의란 실패다'
제작자들 본인도 풍자의 대상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이 게임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에 발매된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라는 게임과 상당히 닮은 점이 많다. 주인공은 기억을 잃고 자신을 찾아 나서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캐릭터의 정체성이 결정되며, 연인이 주인공의 과거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 등.


스토리의 구조와 게임 시스템은 분명 토먼트와 닮아있으나, 디스코 엘리시움은 토먼트의 안티테제라 할 만한 게임이다. 특히나 두 게임에서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하는 캐릭터가 그렇다. 토먼트의 주인공, 이름 없는 자는 영웅이며 거대하고 거시적인 것을 상징한다. 그는 플레이어인 동시에 세계관 내에서 하나의 세계적 의지인 존재다.


그에 반해 디스코 엘리시움의 형사는 지극히 개인이다.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인 '나' 이다. 물론 세계와 주인공이 여러가지 영향을 주고 받지만 딱 그 정도다. 영향을 주고 받는 정도. 따라서 상당히 서사시적인 토먼트와 달리 일상적인 편에 가깝게 게임이 흘러간다.


토먼트의 가장 중요한 질문인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상당히 고전철학적이다. 동양철학에서의 인성론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상당히 있으며, 캐릭터와 게임 내 사건은 추상적이거나 철학적인 개념을 실체화시켰다는 느낌을 준다.


반면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 당신의 세계에 대한 해석이다. 또한 사상이나 철학, 체제보다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부분에서 확실히 토먼트보다는 현대철학적인 느낌을 많이 준다.


마지막으로 사족이지만 디스코 엘리시움의 평가에 대해 한 마디 붙이고 싶다. TIME지는 작년 2010년대 10대 게임으로 이렇게 평했다.

Disco Elysium is proof of what video game fans have known for years: that the medium has special strengths and can tell unique stories you won’t see on TV or read in a book. It’s a game that highlights how all video games are art.
(디스코 엘리시움은 수 년간 게임 팬들이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한 하나의 증명이다: 게임은 책이나 TV에는 없는 독특한 힘과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 이 게임은 게임이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지 강조하고 있다.)


말 자체에는 공감한다. 분명 게임에는 다른 매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부분이 존재하며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디스코 엘리시움이 정말 그 말을 대표하기에 적당한 게임인가?


게임이 다른 매체와 분명히 구별되는 점은 상호작용성이다. 하지만 디스코 엘리시움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 상호작용성을 상당부분 거세했다. 보통의 RPG 게임과 같은 전투도 없고, 어드벤처 게임과 같은 아이템-환경 간의 상호작용도 상당히 제한적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분명 좋은 작품이지만 그 이유가 '게임 답기' 때문이거나 ''게임에만 존재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이 게임이 가진 상호작용성은 기껏해야 대화 선택문 정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게임은 앞서 말한 토먼트를 비롯해 지금까지 숱하게 있었고, 심지어 인터랙티브 무비에도 있다(물론 인터랙티브 무비와 게임의 경계는 앞으로 점차 줄어들겠지만). 예술로서의 게임의 구분점은 이 게임이 아니라 다른 아무 온라인 게임이나 패키지 게임을 할 때 더 느껴진다. 다른 장점도 많은 게임을 칭송하기 위해 굳이 저런 평가를 내려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


개인적인 점수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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