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환 Dec 28. 2021

성실한 나라의 라임크라임

안국진 감독과의 폐관수련기

[승환의 회고]

 안국진 감독님과의 인연은 ‘밤이 너무 길어’를 찍고 영화제를 돌리고 있던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민국 대학영화제에 출품작으로 선정되어 폐막식에 참석했는데, 당시 이미 학교에서 영화 잘 찍기로 소문난 국진선배의 ‘우리집에 놀러오세요’도 후보에 올라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노숙인조차 피해갈 수 없는 내 집 마련의 꿈을 다룬 작품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주제의식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발전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어쨌든 우리는 폐막식에서 만나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당시까진 통성명도 한 적이 없었을거다, 아마.) “연락 왔어?” “아뇨.” “근데 왜 왔어?” 수상자에게는 미리 연락을 해준다는 데에 명확한 인식이 없었던 나는, 그야말로 성실한 태도로 꼬박꼬박 출품된 영화제의 관련행사에 모두 참석을 했던 것 같다. 선배는 별 싱거운 놈 다 본다는 투로 그렇게, 우수상을 거머쥐고서는 무관의 나와 스치듯한 첫 인연을 맺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좌) / 밤이 너무 길어(우)

 두 번째 인연은 느닷없는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 선배는 학교를 졸업한 후 영화아카데미에 다니고 있을 때였고, 나는 졸업을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일 거다. 내 영화를 좋게 봤고, 지금 당신이 독립영화의 조연출을 맡게 됐는데 장편영화의 연출부 경험을 해보면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였다. 전규환 감독님의 ‘무게’라는 작품이었고, 나는 승낙했다. 일은 고됐고, 나는 모자랐고, 선배는 답답했을 테니, 나는 더욱 고됐다. 촬영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는 선배의 자판기 커피 심부름에 침을 뱉을까 정말 딱 1초 정도(다시 말하지만 일이 정말 고됐다) 생각했던 것 같은데, 커피를 가져다주자 선배는 커피를 마시려다 말고 나를 한번 쓰윽-쳐다보더니, 먼저 마시라고 권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마실 수 있었지만, 속으로 이 사람은 정말 비상하다, 통찰력이 있구나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촬영 후로도 우리는 가끔 서로의 시나리오를 피드백해주면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재욱의 회고]

 그를 처음 본 건, 홍대 앞에 영화아카데미가 있을 때였다. 안국진 감독은 승환이와 나를 영화아카데미 바로 옆에 있는 큰 카페로 호출했다. 그는 우리에게 한 페이지 시놉시스를 줬는데 제목은 ‘무력시대’였다. 일하다 식물인간이 된 와이프를 책임져야 되는 남편의 이야기였고 다중플롯적이었는데, 무척 재밌게 읽었다. 아마 그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프로토타입이었나보다. 나와 승환이에게 연출부를 하자고 제의를 했으나 둘 다 작품 마무리할 게 있어서 거절했다.     


[승환의 회고]

 그 한 장의 시놉시스와 그날 그의 설득의 기술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었다. 종이 속의 이야기(시놉시스)도 선배의 이야기(화술)도 힘이 있고 매혹적이었다. (결국 거절하긴 했지만) ‘감독은 저래야 되는구나’라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만남이었다.

 ‘무력시대’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바뀌고, 디벨롭되어가는 남모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들을 직간접적으로 배웠다. 선배가 차기작으로 여고괴담의 새로운 시리즈를 맡게 되었을 때는 아예 페이를 받고 선배 집에서 합숙을 하며 시나리오 쓰는 데 일조를 하게 되었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무산되었지만, 당시의 경험은 작가로서도 한 명의 직업 영화인으로서도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선배의 집에는 장난감이 많았다. 레고나 프라모델같은.. 시나리오를 다져나가며, 가끔 그 장난감들을 보면서 영화라는 게 저런 식의 조립 내지는 건축과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선배는 저런 것들을 모으나?’ 물론 선배는 별생각 없이 그냥 갖고 논 걸 수도 있다.

 그 후에 나는 재욱이와 함께 ‘라임크라임’을 찍게 되었고, 어느 정도 편집이 마무리되었다 생각할 즈음에, 피드백을 얻기 위하여 선배에게 편집본을 보냈다. 다 보자마자 전화가 왔다. 이건 무궁한 가능성이 있다. 근데 지금으로선 안된다. (후술할 테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재욱이와 나의 기억은 조금 다르다. 반 잔을 보며 나는 ‘반이나 남았네’파고, 상대적으로 재욱이는 ‘반밖에 안 남았네’파인 것 같다. 우리는 서로로부터 현실과 희망을 깨닫는다) 이렇게 전화로 얘기할 게 아니라, 너랑 니 친구랑 짐 싸갖고 우리집으로 와라. 합숙이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안국진 감독과의 폐관수련기가 시작되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재욱의 회고]

 안국진 감독이 ‘라임크라임’ 가편집을 봤다. 굉장히 구리다고 했다. 다만 이건 100퍼센트 편집 문제라고 한다. 그리고 특단의 조치로 너네 짐 싸서 자기 집으로 넘어오란다. 나는 안국진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에 중고로 아이맥을 샀다.

 “어. 안녕? 아이맥이냐?” “오는 길에 샀어요.” “미친놈” 처음으로 의미 있는 대화는 “너넨 둘이 같이 있는 게 별로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였다. “아...네...그런가요..” 

 안국진 감독(이하 안감독)은 승환이에게 내 준 숙제 검사를 했다. 편집본을 기준으로 시나리오를 만든다. 해당 시나리오를 다시 씬리스트로 만든다. 씬리스트는 시나리오의 기초적인 정보만 기재해 놓는 것이다. (예시-S#3 주연이 송주에게 힙합공연에 가자고 제의한다.) 왠지 모르지만 잘했다고 칭찬받았고, 그걸 가위로 조각조각 자르라고 했다. 그다음 씬리스트 문장이 이어지게 다시 순서를 조합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영화아카데미에서 수학하신 분이라 그런가, 우리는 안국진 선생님의 말씀을 조용히 따랐다. 씬 짜깁기를 하면서 영화라는게 의외로 순서를 조정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만 인과가 틀어지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생각보다 머리를 굴려야 되는 작업이었다. ABC였던 것이 CAD가 되면서 맥락이 사라지기도, 창출되기도 했다. 사라진 맥락은 몽타주에서 가볍게 보충하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작업은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올 길을 닦아 놓는 과정으로 여겨진다. 그러기 위해선 눈에 띄어야 하는 것과 숨겨야 하는 것을 골라야 한다. (나와 승환이에겐 모든 게 다 중요하지만) 이 작업을 해야만 관객이 ‘라임크라임’이라는 집을 편하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관객의 입장으로 생각하라’고 안감독이 말했다. 하루가 갔고 그는 승환이를 데리고 자기 집 베란다에서 석양을 보라고 했다.

 다음날에는 집에서 간단한 옷과 세면도구를 가져갔다. 왠지 당연하게 합숙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보통 후반작업에서 편집 오퍼레이터는 내가 하는 편인데, 뒤에 안감독이 있으니 등골이 서늘했다. “여기 좀 자를까요?” “맘대로 해봐.” 컷을 잘랐다. “좀 디테일하게 해. 지금껏 이렇게 했니?” 그 후 나는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천천히 보면서 잘랐다. 

 영화 전반부에서 안감독은 “튀죠. 많이 튀죠.”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보기엔 전혀 튀지 않는데... 송주가 엄마를 가게에 데려다 주고 학교에 가는 장면이었는데, 차라리 의미가 적더라도 두 씬 사이에 인서트가 필요하다고 했다. 엄마와 가게주인이 담배 피는 장면 인서트를 넣었다. 안감독은 씬과 씬이 튀는 장면을 어떤 방식으로든 붙이라고 주문했다. 지금까지 내게 인서트란 의미도 없고 멋도 없어서 잘 넣지 않는 주의였는데, 이 작업에선 인서트를 넣으면서 원했던 호흡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장면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인서트는, 송주가 상희에게 주연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는 장면에서의 상희 뒷모습이다. “이 장면 전 씬과 너무 튀지 않니?” 그렇게 찾아서 넣은 상희 귀걸이가 나오는 뒷모습 클로즈.....나는 그 인서트로 상희 캐릭터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교훈. 폼 잡지 말고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하라, 유연하게 생각하라.

 두 주인공이 상근이형을 피해가는 장면과, 힙합클럽으로 뛰어가는 장면은 두 컷의 주인공 위치를 동일하게 잡으라고 하셨다. 나는 마음속에서 ‘월리 찾기 수법’이라고 명명했다. 월리를 찾고 다음 장을 넘겼는데 월리가 비슷한 위치에 있으면 찾기 쉬울테니까. 송주가 슈퍼마켓에서 돈 훔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편집이 튄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전 씬 마지막 지점 상희의 위치와 다음 씬의 시작점 송주의 위치를 같게 했다. “음......좋군. 그래 이거지. 이제 좀 하는데?”라며 좋아하셨다.  

 저녁시간에는 찜닭을 시켜먹었다. 영화 편집을 편집자와 연출자 중에 누가 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나는 내 영화의 편집을 지금껏 남의 손에 맡겨본 적이 없다. ‘자기만의 방’, ‘캠퍼스’도 나와 승환이가 했고, 승환이의 영화도 우리가 편집했었다. 솔직히 얘기해서 맡길 돈이 없었다. 내가 하는 게 가성비 최고 아닌가? 내 시간은 무한하게 쓸 수 있으니까, 그리고 승환이 시간도 무한하게 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 안감독과의 시간 덕분에, 다음 작업에서는 편집자에게 편집을 맡겨야겠다 생각했다. 편집을 다른 사람이 하면 내걸 빼앗길 것 같은 공포가 있었는데, 오히려 내가 했을 때 날카롭게 하지도 못했다.

 하루가 갔고, 안감독은 승환이에게 베란다에서 석양을 보라고 했다. 오늘은 나도 나가봤는데 뷰가 좋았다.

 그에게 제일 고마웠던 것은 집요하게 어떤 장면들을 제거하라고 했던 것이다. 우리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송주가 상희패거리와 방에서 술을 먹는 장면에서 원래는 송주엄마가 거실에 있다는 설정이 보였었는데, 안감독이 무조건 삭제하라고 했고,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편집 마지막 날에 결국 삭제했다. 어떤 장면은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었고, 그 해석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져야 되는 것이다. 오독을 막기 위해서라도 버려야 하는 장면이 있다. 

 안감독이 왜 우릴 도와줬을까.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후에 우리 같은 신인 감독이 있다면 성심성의껏 도와줘야겠다는 일종의 내리사랑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가 사는 집에 7일 동안 있었다. 안감독이 우리 영화 최초의 관객이다. 그에게 좋은 영화로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영화를 완성했다.


[승환의 회고]

 선배의 집에는 장난감이 여전히 많았다. 아니, 전보다 늘어있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가끔 내가 레고가 된 기분이었다. 우리는 철저히 분해되고 마음껏 조립되기를 자청했다. 수많은 시간 동안 갇힐 수 밖에 없었을 우리의 사고와 시각은 제대로 한 번 깨어질 필요가 있었다. 그런 걸 깨주기에 안국진이란 사람은 그야말로 제격이다. 사실은 정이 많고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도움을 주려는 성격이지만,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선 직설적이고 상대방의 마음이 다칠까를 염려하지 않는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리고 깨어지긴 깨어져야 했지만, 가끔은 멘탈이 헤롱댈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마음껏 해체하고 주무르고 있는 것은 1년간의 우리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그것에는 우리의 시간과 땀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거창하게 말하면 신념 같은 것도 들어있을 터였다. 그런 우리 자신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 하지만 필요했다. 신념이라 생각했던 아집을 거두고, 무의미한데 공들였던 시간과 땀의 실체를 아프지만 보아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정말 감사하다. 서른 살 넘어선, 장편영화를 찍고 주변 사람들이 거의 후배들이 되어가면서는 더욱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크게 ‘배웠다’라는 감각을 갖는 일이 잘 없었는데, 분명 국진선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내 주변에 영화에 대해 그렇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식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국진선배가 유일하다. 은인이자, 은사다

 그곳에서의 일주일은 짧지만 긴 시간이었다. 마치 드래곤볼에 나오는 정신과 시간의 방 같다.

 국진선배가 한 말 중에 ‘결국엔 의미보단 재미’라는 말이 인상 깊다. 선배의 모든 작품엔 의미가 담겨 있지만 대중작품을 지향하는 작가로서 그것도 다 재미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얘기일거다. 반면 본인의 입으로 말한 바는 없지만 우리 배급사 시네마 달의 김일권 대표님이 갖고 계신 생각은 아마 ‘결국엔 재미보단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분명 재미를 추구하지 않는 건 아니나, 그래도 중요한 것을 꼽자면 의미를 선택하실 것 같아서다. 두 분다 극단적인 분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또 그 사이에서의 밸런스를 찾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 둘 모두가 봐도 만족할만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덕분에 ‘라임크라임’은 무사히 영화제를 돌고, 개봉을 하고, 이제는 어느새 굿바이GV를 앞두고 있다. 시사회에 초대해 온 국진선배는 영화를 보고 근래 못 봤던 에너지의 정말 멋진 작품이 나왔다며 자기 영화처럼 기뻐했다. 나는 안심이 됐다. 그리고 정말 정말 기뻤다. 영화를 다 만들고 엔딩 크레딧 도움 주신 분들의 맨 처음으로 안국진, 세 글자를 넣는데 우리는 이견이 없었다. 그곳에서의 일주일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자랑스러운 ‘라임크라임’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