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시장에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는 험한 말이 있을 정도로, 한 번 망가진 기업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 한국 전선 산업의 살아있는 역사 대한전선(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최근 대한전선의 주가 흐름이 심상치 않습니다. AI 데이터센터 확장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 그리고 '닥터 코퍼(Dr. Copper)'라 불리는 구리 가격의 상승이 맞물리며 주가가 급등하고 있습니다. 1,000원 대를 맴돌던 '동전주'의 설움은 이제 옛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재무제표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저로서는, 지금의 붉은 상승 화살표 뒤에 숨겨진 지난 10년의 피눈물이 먼저 떠오릅니다.
1. '흡혈전선'이라 불리던 아픈 과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한전선 주식 토론방에는 '흡혈전선'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이 돌아다녔습니다. 개미 투자자들에게 그만큼 많은 상처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2015년에는 회계감사에서 '계속기업가정'에 대한 의심까지 받으며 상장 폐지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과거 대한전선은 무리한 사업 다각화의 실패로 막대한 빚더미에 앉았습니다. 영업이익을 400억 원, 500억 원씩 내도, 이자 비용으로만 한 해 300억~400억 원이 나가버리니 남는 게 없었습니다. "영업이익은 다 누가 가져가냐고요? 빚 갚는 데 다 쓰였습니다". 당시 재무제표는 그야말로 '빚 갚느라 허덕이는 가장'의 가계부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후 사모펀드 IMM PE에 인수되어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었고, 주주들은 감자와 유상증자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2. 호반을 만난 건 '새옹지마(塞翁之馬)'였을까
2021년, 대한전선은 호반그룹이라는 새로운 주인을 맞이합니다. 당시 건설사 2위권인 호반산업이 전선 회사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시장의 의구심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지배구조의 안정화는 재무제표의 질을 바꿨습니다. 과거 사모펀드 시절에는 '매각을 위한 몸집 줄이기'와 '단기 이익'이 목표였다면, 호반 그룹 편입 이후에는 '성장을 위한 과감한 투자'로 기조가 바뀌었습니다. 최근 진행된 유상증자는 과거처럼 빚을 갚기 급급했던 '심폐소생술'이 아니었습니다. 해저케이블 공장을 짓고 설비를 늘리는, 미래 먹거리를 위한 '근육 키우기'였습니다.
3. 숫자가 증명하는 화려한 부활
2024년과 2025년의 재무제표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매출액의 퀀텀 점프: 2020년 1.6조 원 수준이던 매출은 2024년 3.3조 원을 돌파하며 2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이는 AI 전력망 수요 증가라는 시대적 흐름과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판가에 반영할 수 있는 전선업의 특성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이익의 질적 개선: 과거에는 영업이익이 나도 순이익은 적자인 구조였으나, 이제는 영업이익이 1,000억 원을 훌쩍 넘기고 당기순이익도 흑자 기조를 탄탄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밑 빠진 독'이 드디어 수리된 것입니다. 자산의 변화: 자산 총계가 3조 원에 육박합니다. 과거에는 자산의 대부분이 팔아야 할 비주력 자산이었다면, 지금은 당진 해저케이블 공장과 같은 알짜배기 생산 설비(유형자산)와 수주받은 물량을 소화하기 위한 재고자산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4. 다시, 영광의 시대를 꿈꾸며
과거 대한전선은 창업 2세 경영 시기까지 54년 연속 흑자라는 대기록을 가진 초우량 기업이었습니다. 오너의 부재와 경영 실패로 '잃어버린 10년'을 보냈지만, 이제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합니다. 물론 투자는 냉정해야 합니다. 구리 가격은 언제든 다시 꺾일 수 있고, 글로벌 전선 시장의 경쟁은 치열합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전선의 재무제표는 단순히 테마에 편승한 거품이 아니라, "본업의 경쟁력 회복"이라는 단단한 지반 위에 서 있음을 보여줍니다. 호반그룹의 자본력과 대한전선의 60년 기술력 이 만나, 과거 50년 연속 흑자의 영광을 재현하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투자자 여러분, 이제는 '흡혈전선'이라는 오명을 지우고, 대한민국 전력 산업의 대동맥을 잇는 이 회사의 숫자에 다시 한번 주목해 볼 때입니다.
구릿값 상승이 전선 관련주의 매출과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
대한전선 주가와 원재료인 구리(전기동) 가격의 상승은 밀접한 정(+)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전선업계의 특수한 가격 결정 구조와 매출 인식 방식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부분을 이해해 보죠.
구리 가격 상승과 주가 상승의 연결 고리 (에스컬레이션 효과)
전선 회사의 주가가 구리 가격 상승기에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에스컬레이션(Escalation)' 조항 때문입니다. 이는 원재료 가격 변동분을 납품 단가에 연동시키는 계약 방식을 말합니다.
• 매출액의 자동 증가: 전선 제조 원가의 비중이 큰 구리 가격이 상승하면, 대한전선은 이를 제품 판매 가격에 반영하여 수주 금액과 매출액을 높입니다. 실제로 사업보고서에서는 매출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원자재(전기동)의 국제가격(LME) 상승'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 영업이익 개선: 판매 단가가 올라가면, 동일한 마진율을 적용하더라도 절대적인 이익 규모가 커지는 효과가 발생하여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이는 주가 상승의 동력이 됩니다.
구리 가격과 대한전선 실적/주가의 동행 추이
사업보고서상의 구리(전기동) 매입 가격 추이와 대한전선의 매출액, 그리고 주가 흐름을 비교해 보면 그 연관성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 분석: 2020년 톤당 약 699만 원이던 구리 가격이 2024년 약 1,251만 원, 2025년 3분기 약 1,365만 원으로 2배 가까이 급등하는 동안, 대한전선의 매출액 역시 1.6조 원에서 3.3조 원대로 2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외형 성장은 주가를 부양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 2021년 사례: 2021년 사업보고서에서는 매출액이 전년 대비 약 22.7% 증가했는데, 그 주요 원인을 "원자재(전기동)의 국제가격(LME) 상승"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 2024년 사례: 2024년 매출액이 전년 대비 15.7% 증가한 원인 역시 "원자재(전기동)의 국제가격 상승"을 주요인으로 꼽았습니다.
그렇다면 가지고 있던 재고자산도 재무제표 상으로 숫자에 영향을 미치겠네요.
재고자산 평가 이익 효과
구리 가격이 상승하면 회사가 이미 보유하고 있던 재고자산(구리)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평가 이익이 발생하거나, 낮은 가격에 사둔 원재료로 만든 제품을 높은 가격에 팔게 되어 영업이익이 일시적으로 급증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 대한전선의 재고자산은 2020년 말 2,174억 원에서 2025년 3분기 말 7,259억 원으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는 매출 규모 확대에 따른 물량 증가도 있겠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재고 자산 가액 증가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구리 가격이 하락할 경우 반대로 실적이 악화될 위험이 있으므로 대한전선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파생상품을 이용합니다. • 구리 선물 거래: 대한전선은 원재료 가격 변동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상품선물계약(동선물)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이는 구리 가격이 급락하더라도 손실을 방어하여 안정적인 이익을 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요약하자면, 최근 구리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은 대한전선의 제품 판매 단가를 높여 매출과 영업이익의 규모를 키우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실적 성장은 AI 전력 수요 증가라는 호재와 맞물려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높였고, 이것이 어제 대한전선 주가 급등의 원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