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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Jan 26. 2021

치타, 치타

<원더우먼 1984>

영화 <원더우먼 1984>은 상업과 예술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도입부 쇼핑몰에서의 원더우먼 액션은 다소 촌스러운 느낌이 들면서도 패션과 헤어스타일, 소품을 통해 당대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최근 화려한 스피드와 빵빵한 사운드, 사악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잔인한 액션 영화와 달리 이번 원더우먼은 조금은 소박한 그리고 순수했던 시절의 향수를 그대로 담는 액션을 보여줍니다.      

 어깨에 패드를 넣어 한껏 부풀린 쟈켓과 남성적 매력을 뿜어내는 바지 정장을 입은 그녀의 패션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감성과 동시에 한 번은 입어보고 싶은 충동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인라인이 아닌 롤러스케이트, 화려한 색상의 광택 나는 타이즈, 사자 같은 헤어스타일, 헐렁한 민소매와 나이키의 스니커즈 등은 1980년대 미국 문화를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90년대 한국의 모습도 조금은 엿볼 수 있는 장치입니다. 물론 저는 나이키가 아닌 프로스펙스를 신었었죠.     

이번 영화는 우울한 배경이었던 첫 편과의 차별을 두기 위해 일부러 8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설정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주된 키워드로 삼는다는 점이 공통분모입니다. 원더우먼 첫 시리즈는 1차 대전을 배경으로 스스로의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한 차별과 배제, 자국의 이득을 위한 희생과 살생 등을 제시하면서 신들의 시각에서 인간의 탐욕, 상실과 분노를 시각화했습니다. 최근작에서는 안정적인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타인의 행복을 탐하고 더 많은 것들을 욕망하는 인간과 이기적인 욕심이 자아낸 혼돈을 그리고 있습니다.   

알라딘의 지니와 더불어 이승철과 소녀시대도 울고 갈 ‘소원을 말해봐’의 영화 버전인 <원더우먼 1984>는 신들의 언어가 새겨진 드림 스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드림 스톤이 박물관에 전달되기 전 바바라와 다이애나가 처음 만나 서로 소개하는 장면은 배가 아플 정도로 질투가 나더군요. 이 둘은 모두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연구자들인데요. 다이애나는 자신의 이름과 동시에 “문화인류학, 고고학”이라고 덧붙이고, “바바라 미네르바, 지질, 보석, 암석, 미지 동물학이요”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러고는 서로 대학시절에 바빴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너무 바빠서 유물을 다룰 때에는 장갑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점은 못 배웠나 봅니다. 고대 유물 옆에서 커피도 마시고, 맨손으로 다루는 데 주저함이 없는 모습이 옥에 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시, 드림 스톤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이어보겠습니다. 어떠한 소원이든 이루어주지만 소중한 무언가를 반납해야 하는 것이 드림 스톤의 조건입니다. 영화 내에서 오랜 역사 속에서 멸망한 문명은 이 원석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석유왕으로 불리는 인물 역시 이 스톤을 탐하며 자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의 가르마를 뽐내는 트럼프를 닮은 탐욕의 끝을 보여주는 맥스웰 로드는 자신이 드림 스톤 그 자체가 되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건강을 조금씩 잃어가지요. 다이애나 역시 오래도록 소망했던 한 명을 다시 만나게 되지만 자신의 능력을 잃어갑니다.      


전 편에서 아레스와 다이애나가 신의 입장에서 인간을 조망했다면, 이번에는 다이애나와 맥스의 대결구도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것과 개인적인 소원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결론은 이기심을 극복해야 진실에 다가갈 수 있으며 진실은 지름길이나 거짓으로 가려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타적 배려가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든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이 시국에 적합한 교훈을 준다고 볼 수 있겠네요.      

오늘 다룰 작품은 영화 <원더우먼 1984>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바라는 세상에서 투명인간으로 취급되고,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의 관심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투박한 옷차림에 두꺼운 안경, 공부는 잘해도 누군가에게 인식되지 못하는 외로운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선한 마음을 지녔기에 노숙자에게 매일 인사를 건네고, 남은 음식을 포장해서도 따뜻할 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인물입니다. 따뜻한 마음을 소유한 그녀의 소원은 다이애나 같은 인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멋진 옷을 입고, 자신감이 넘치며 누구나 다이애나를 기억하고 관심을 표하기 때문이지요. 다이애나는 바바라에게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비추어집니다. 그래서 다이애나처럼 되기를 빌었습니다. 덕분에 기대하지 않았던 다이애나의 힘까지  얻게 되었지요.      

바바라가 동경하던 다이애나는 당대 이상적인 몸과 외모의 아이콘처럼 등장합니다.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적인 체형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적인 몸’은 여러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노출되지요. 자주 노출된 이상적인 아름다운 몸은 그것과 다른 몸을 열등하고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즉, 시각적으로 노출된 이상적인 인물(체형, 외모)은 그것에 준하지 않은 다른 인물들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규정하게 되고, 그 이상을 욕망하도록 만듭니다. 바바라가 다이애나를 부러워하고, 그녀와 똑같은 인물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비단 영화에서 뿐 아니라 동시대 우리 주변에서도 또 자신에게서도 늘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다이애나를 향한 바바라의 욕망은 결국 반인반수의 존재로 그녀를 변화시킵니다. 모든 것을 가진 다이애나에 비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바바라는 더 이상 누군가를 따라 하기보다는 최상위 포식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진 결과가 바로 치타입니다. 영화 도입부에 다이애나가 신었던 레오파드 무늬의 하이힐과도 이어지는 맥락인 듯 보입니다. 그녀의 이 같은 외모는 신화 속 사티로스와 닿아 있습니다. 동시에 치타와 아름다운 여성의 혼종적인 외모로 인해 매튜 바니(Matthew Barney)의 《크레마스터 사이클  The Cremaster Cycle》(1994~2002)이 연상됩니다.      

총 5부작으로 제작된 이 영상작품은 제9회 카셀도큐멘타에서 전체적인 작품 계획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을 두고 완성된 이 작품은 난해할 뿐 아니라 편협한 시각에서 해석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바라가 연기한 치타와 에이미 멀린스(Aimee Mullins)가 연기한 <크레마스터 3>(2002)의 치타는 여성적인 외모와 치타라는 점에서 너무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다이애나의 외형적 아름다움이 상위 포식자의 외모로 표현되었다면, <크레마스터 3>의 치타는 영상 속 견습생의 대자아로서 등장합니다. 보다 근원적인 자아로서 나타난 것이 바로 작품 속 치타입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용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작품명인 ‘크레마스터’는 남성 생식기를 수축·이완하는 근육을 말합니다. 매튜 바니는 예일대학교의 의과대에 입학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미술대학으로 변경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작가였던 점이 작용한 것일까요? DNA와 더불어 예비 의학도였던 그의 기본적인 지식이 작품에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크레마스터가 수축하면 남성의 성기가 몸 가까운 곳으로 당겨지기 때문에 (만약 분화되지 않은 신체를 지녔다면 수축된 근육으로 상승한 남성 성기가) 난소가 있는 위치와 가까워진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축한 상태를 여성성을 향하는 상태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이완된 상태는 남성성에 가까워지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크레마스터의 근육 메커니즘은 생물학적으로 성별 미분화 과정을 말하며, 작가는 여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결합시킵니다. 물론, 그의 작품을 몸과 성별 분화로만 제한해서 해석할 수는 없으며 작가와 더불어 여러 비평가들 역시 이와 의견을 같이합니다. 태아가 아직 성별이 구분되지 않아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이 시기의 여성 자궁은 작가에게 이상적인 공간이 됩니다.    

 

<크레마스터 3>의 등장인물들은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모호한 혼종의 외형을 한 모습입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의 입문식은 작품의 서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입문식의 3단계에서 주인공은 멀린스와 대결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멀린스의 외모는 그녀의 장애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듯 보이면서도 동시에 완전함과 건강함으로 대변되는 아름다움의 협소한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영화 <원더우먼 1984>에서 바바라가 욕망했던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아름다운 외모의 다이애나는 신의 영역에 존재하는 인물이지만 고대부터 늘 그러했듯 완벽한 아름다움이 재현된 존재로 부각됩니다. 또한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자신의 소원보다는 진실을 찾으려는 그녀의 힘든 결정은 무수한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쫒던 참된 것을 향하는 지성인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동시대적 신고전주의 부활을 꾀하는 영화로 보입니다.      

매튜 바니의 작품에서는 종아리뼈가 없이 태어나 무릎 아래를 절단했음에도 육상선수, 모델, 배우로 활동하는 에이미 멀린스가 등장하며 미(美)의 보편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듭니다.  또한 성별 분화 이전의 단계로 이분화되지 않은 모호한 외형과 사티로스의 모습을 통해 규범적 시각에 저항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치타와 여성, 섹슈얼리티로 이 둘은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신의 영역에서 전달하려는 훈육의 태도, 기존 시각에 내재된 아름다움에 대한 스스로의 재고를 촉발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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