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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Feb 03. 2021

1호가 될 순 없어?

 

JTBC에서 방영 중인 <1호가 될 순 없어>는 꾸준히 증가하는 이혼율과 대비되는 개그맨 부부 커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박미선이 <아는 형님>에 출연해 개그맨끼리 결혼한 커플 중에 아직 아무도 이혼한 이가 없다고 말하면서 이혼 커플 1호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 데 기인하는 방송입니다.      

팽현숙과 최양락, 김지혜와 박준형, 이은형과 강재준을 비롯한 여러 개그맨 커플이 패널로 출연합니다. 타인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전하는 이들의 삶은 우리와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삶에 대한 고민과 힘든 시절을 겪고도 모두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팽현숙은 어린 시절 힘들게 보냈기 때문에 배우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에 지대한 열정을 쏟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결국 유복하게 지냈으며 용돈을 모두 나이트에 반납했던 사실을 밝혔지만요. 팽현숙은 요리를 비롯해서 도예, 그리고 회화 작업에도 욕심을 내는 모습이었습니다.     

작년 9월 20일 방송에서 팽현숙은 자신이 직접 빚은 도자기들을 선보였습니다. 이에 최양락은 도예 작가는 거 티 내려고 하냐며 혹평을 쏟았습니다. 속이 상한 팽현숙은 자신이 내세울 것이 없어서 무언가 배우려고 열정을 쏟아 빚은 건데 몰라준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임미숙은 이에 대해 자신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꿈이 없어서 너무 슬픈데, 이에 반해 현숙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과거의 아픔을 도자기에 하나씩 풀어내고 있는 것이라며 그 애틋함을 읽고 지지하는 마음을 보였습니다. 팽현숙이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모습은 본받아 마땅합니다. 다만, 과한 열정에 비해 집중도나 지구력이 조금은 아쉽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늘 긍정적인 자세로 도전하는 열정에 존경을 표합니다.     

자신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가족들과의 부딪힘 속에서 상처 받고, 또 힘을 얻는 그들의 삶은 우리 모두의 일상과 상당히 닿아 있습니다. 다만, 부부 사이의 어려움이나 문제 해결에 있어서 패널로 출연하는 이들의 방식은 이혼이 아닌 꾸준히 같이 살아가겠다는 의지라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무조건 함께하는 것이 최고의 결정은 아니라는 생각이지만요.      

많은 커플 중에 팽현숙의 삶에 조금 더 관심을 보인 이유는 그녀가 하려는 많은 취미 때문입니다. 이혼 커플 1호가 되지 않으려는 모습과 도자기를 빚고, 그림을 그리려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성자 작가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최초로 프랑스로 유학을 갔던 작가이죠.      

1951년 프랑스로 간 이성자는 “동녘의 대사 (ambassadrice de l'aube)”라고 불릴 정도로 프랑스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유화와 목판화를 비롯해 도자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그녀의 작품은 한국적인 감성을 담아 프랑스 미술계에 전하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1935년 일본에서 유학한 의사와 결혼한 이성자는 슬하에 3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힘든 결혼 생활을 뒤로하고 1953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1965년 체결된 한·불문화 협정으로 인해 이성자가 프랑스에서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이성자는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슈발리에 훈장도 받았습니다.      


당시 여성 작가로, 게다가 유럽에서 타자로 치부되는 동양인으로서 프랑스 미술계에서 인정받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쉽지 않다’라는 말도 너무나 가벼운 표현이겠지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던 이성자는 기법과 표현에 있어서는 프랑스의 영향이 지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선택한 소재는 그녀의 뿌리였던 한국적 모티브를 택했습니다. 초기 작품은 구상과 추상에 대한 실험적인 도전 정신이 엿보입니다. 다양한 표현 방식을 연구하던 그녀는 유화만큼이나 목판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판을 깎는 것은 ‘음’ 캔버스에 물감을 얹는 것은 ‘양’으로 인식되어 둘은 순환 관계에 있습니다. 목판은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성자에게 예술은 음과 양의 조화이면서 자연의 순환구조를 모두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성자는 목판을 종이에 찍기 위한 매체(찍기 위한 표현 도구이자 종이와 작가를 연결하는 다리)로 한정하지 않고, 목판 자체도 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성자의 목판 (이미지출처: 문소영의 컬처스토리, 2018)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2018) 전시 전경
<장애 없는 세계>(1968)와 <오작교>(1956)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자신 역시 어머니로서의 한국에 두고 온 세 아들에 대한 애정은 60년대 《여성과 대지》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나는 여자이고, 여자는 어머니이고, 어머니는 대지이다.”라는 말을 남긴 이성자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수용하였고, 어머니로서의 자신에 자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자연의 순리, 어머니와 아들에서 확장되어 우주로 뻗어나갑니다. 음과 양, 동양과 서양과 같은 대립되는 요소들의 화해, 화합의 의미는 확장된 우주에서도 지속되며 서로의 상생을 추구합니다.      

1호가 되지 않으려는 개그맨 부부들의 노력을 다른 시대에 다른 삶을 살았던 도불 1호 작가 이성자의 작품과 그녀의 예술관이 고요하게 대변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족을 꾸리고 나와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한 날들을 보내지만 현실은 너무나 다르죠. 우리의 일상은 상대방보다 나를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내가 보여주었던 작은 배려에 조금은 보상받고 싶은 마음들이 대립하면서 상처 받고 또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의 연속입니다. 도전과 열정을 쏟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인정 혹은 공감을 원하는 것이 인간이니까요. 이성자는 이러한 본능을 초월한 듯 보입니다. 그녀의 작품에는 예능 프로에서 부부끼리 보이는 패악질은 흔적도 없습니다.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고 우주의 섭리를 수용하는 대지와 같은 포근함이 있네요. 

<내가 아는 어머니>(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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