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일 온라인에 재미있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우리에게 가수 솔비로 익숙한 권지안이 바르셀로나 국제 아트페어에 초청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2019년에는 '라 뉘 블랑쉬 파리(La Nuit Blanche Paris)'에 전시 작가로 선정돼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 30인과 함께 극찬을 받은 바 있습니다.
초기 그가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전시도 열고 있다는 이야기를 예능에서 접했을 때에는 사실 누구나 하나쯤 지닌 호사 취미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의 진지함을 제가 질투했던 것인지도 모르지요.
권지안이 음악과 미술을 결합하여 캔버스 위에 우연에 따른 흔적을 남긴 작품은 <Self Collaboration>입니다. 물론 물감이 튀어 캔버스에 떨어진 자국은 퍼포먼서의 순간적인 움직임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음악이나 퍼포먼스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 치밀하게 계획한 것들이지요. 일종의 새로운 장르인 그의 작품들은 ‘뮤직 퍼포먼스’ 혹은 ‘즉흥 회화’라고 불립니다. 추상회화나 신체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는(찍는, 혹은 자국을 남기는) 방식은 이브 클라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추상회화 작가들을 연상시킵니다.
권지안은 작품이 타 작가 혹은 그들의 작품을 떠오르게 만든다는 이유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의 케이크가 문제의 중심이었는데요. 작품의 색이나 외형이 제프 쿤스의 <Play Doh>(1994)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12월 권지안이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자 이 논란은 순식간에 온라인을 휩쓸었습니다. 오히려 이 점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되면서 권지안은 제빵실에서 케이크를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방식으로 제작한, 상당히 실험적인 본인의 케이크는 건강에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형태입니다.
케이크는 반죽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오븐에서 나올 때까지 정량의 규칙과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 ‘틀’을 부수고 권지안이 만든 것은 그냥 케이크가 아닌 것이지요. 다만 그 외형을 제프 쿤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미술에서 차용(appropriation)이라 일컫는 방식입니다. 익숙하고 잘 알려진 이미지를 빌어서 기존의 담론이나 가치를 전복시키거나 기존 미술의 권위에 도전하는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권지안은 찌그러진 혹은 대충 쌓아 올린 덩어리로 이루어진 케이크를 빌어 사회적 문제를 말합니다. 즉, 온라인 내에서의 힘의 움직임들과 사람의 감정에 남는 상흔과 직결된 것이죠. 그의 먹는 행위는 섭취가 아닌 퍼포먼스가 된 것입니다. 이 과정이 참 재미있으면서 생동적입니다. 단순히 먹는 케이크로 시작했던 그의 케이크가 악플러로 인해 온라인 세상이 야기한 문제를 그것에 덧씌우게 됩니다. 또한 축하할 일이 전혀 없는 이 시대에 홀로 즐기는 의미 없는 케이크, 또 전서했듯 어떤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바르셀 아트페어 측도 이 지점에 현대미술의 성립 조건으로서의 해프닝이라 말합니다. 이목을 이끄는 화려한 색상의 케이크는 <Just Cake>로 명명되어 억지로 내재적 함의를 글로 풀어내려는 이들을 비웃는 듯합니다.
3월 3일 인사동의 갤러리 인사아트에서 위 작품으로 《Just a Cake-Piece of Hope(희망의 조각)》 전시를 가진다고 합니다. 케이크를 먹는 행위나 혹은 조각을 나누며 관람자와 함께 사회적 문제를 삼켜버리는 퍼포먼스가 진행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만의 상상입니다. 이 논란 이후에 제작한 후속작품을 공개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