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낳은 감정들

『타인에 대한 연민』 마사 누스바움

by 브레인하트

요즘 언론에서 분노와 혐오로 얼룩진 사건들을 자주 접합니다. 한순간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이 생기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에겐 가차 없이 혐오 표현을 가합니다. 정치권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더욱 첨예해지고, 사회적 경제적 박탈감을 느낄 만한 기사에는 시기심이 묻어 나오는 댓글로 도배합니다. 이러한 정치사회 풍조는 비단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작년 시끌시끌 한 대선을 치른 미국도 마찬가지죠. 저자 마사 누스바움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느낀 감정을 기반으로 여전히 미국에서 만연한 트럼피즘(Trumpism)을 고찰하고 앞으로 미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호소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두려움이란 ‘곧 닥칠지도 모르는 부정적인 일에 대한 괴로움과 이를 물리칠 힘이 없다는 무력감의 결합’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현재 미국은 경제, 취업, 건강보험, 교육과 같은 실질적인 삶의 문제를 당면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기회의 상징인 아메리칸드림은 오래전에 먹혔던 빛바랜 구호로 전락해버렸고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은 두려움으로 번졌습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분노, 혐오, 시기와 같은 감정으로 변이 되어 현재 미국 사회를 뒤덮고 있습니다.


분노에 휩싸이면 이성적 판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보복심으로 불타 오르게 됩니다. 개인의 부정행위나 구조적 불평등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이행 분노’는 문제 해결과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만, 보복 그 자체를 위한 ‘파괴적 분노’는 갈등을 더욱 부추기기 마련입니다. 설령 잘못을 저질러 보복을 당하더라도 당사자는 더 큰 분노를 느끼고 앙갚음을 계획하게 되죠.


불합리한 혐오는 사회악의 뿌리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혐오를 느낄 때 문제 해결보다는 대상을 불결한 것으로 여기고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정인을 혐오스러운 사람으로 비난함으로써 자신은 그와 다르다며 안정감과 느끼고 상황을 통제하려 합니다. 같이 혐오하지 않으면 자신 역시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할까 봐 혐오하는 것을 동조하기도 합니다. 혐오는 이처럼 전염성이 강합니다.


시기심은 타인이 가진 것에 주목하고 자신의 상황은 그보다 못하다고 비교하면서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입니다. 시기심은 파괴적인 적개심으로 곧잘 변하기도 합니다. 내가 잘되기 위해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여기며 사회적 협력을 제로섬 게임으로 만들어 버릴 때도 있습니다. 시기심이 강해질수록 인간관계는 피폐해지고 사회는 삭막해집니다. 서로의 따듯한 유대감은 사라지고 차가운 냉기만 감돌게 되죠.



『타인에 대한 연민』은 현재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 속 퍼져있는 두려움을 다루기 때문에 국내 독자들은 일부 내용에 대해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인종차별, 무슬림 난민 유입, 동성애 합법과 같은 이슈들은 상대적으로 국내문제와 연결고리가 약하다면 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저자는 진보적 이념을 표방하고 있기에 책에서는 보수적 입장의 상반된 주장을 살펴보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파헤치며 이것이 우리에게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의 입장차도 아니고 국내와 미국의 차이도 아닙니다. 오히려 인문학과 심리학같이 인간을 이해하려는 학문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부터 현대철학까지 망라하며 두려움의 본질을 고찰합니다. 이를 토대로 두려움에 기반하는 분노, 혐오, 시기에 대항하여 지금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뜨겁게 호소합니다.


마사 누스바움은 두려움을 조절하기 위해 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합니다. 또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증오, 분노, 혐오, 시기와 맞서는 용기를 간절히 토로합니다. 당연하고 맞는 말입니다. 또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천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복잡계로 되어있고, 나와 상반된 입장과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누군가의 이익이 나의 손해로, 나의 이익이 누군가의 손해로 귀결되는 제로섬 게임에 참가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을 원치 않을지라도 살면서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죠. 이러한 상황에서 내면의 끓어오르는 감정과 맞서 싸우는 것은 굳은 결심과 오랜 연습을 요구하는 큰 도전입니다.



누군가는 내면의 감정과 싸우라는 듣기에 쉬운 말보다 제도개선과 정책 수립과 같은 실질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연민』은 당면 문제에 부합하는 실질적인 공공 정책이나 경제 상황을 분석하는 책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두려움을 조절하는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고 앞으로 행동 방향성을 제시하는 좀 더 광범위하고 자기 성찰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제도를 개선하고 정책을 수립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이해와 공감입니다. 마사 누스바움의 말처럼 이해가 없는 행동은 결국 지향점과 지속성을 잃어버린 즉흥적인 퍼포먼스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술 읽혔던 책이 아닌 느리게 곱씹으며 읽은 책이네요. 사실 읽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어요. 그 까닭은 내 안의 두려움이 만든 분노, 혐오, 시기심을 엿보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당한 피해로부터 생긴 분노는 마음속을 보복심으로 채웠고, 어떤 이들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혐오를 드러내며 편협함을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또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이들에겐 이해관계를 거치지 않은 비난으로 일갈할 때도 있었습니다. 사회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질 순 있습니다. 또 정당한 비판과 이행 분노는 필요한 행동을 촉구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공감과 이해 없이 분노, 혐오, 시기만 드러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을 읽고 나서 많은 물음이 숙제처럼 뒤따라왔습니다. 어쩌면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는 책 보다 자기 성찰의 복잡한 과제를 남기는 책이 우리 삶을 변화로 이끌어 주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누구도 태어나면서부터 피부색, 배경, 종교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증오는 배우는 것이고 증오를 배웠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습니다. 증오보다 사랑이 인간의 심장에 더 자연스러운 것이니까요.” 훌륭한 말이다. 이제 이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다.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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