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는 너, 너를 바라보는 나

『타인의 해석』 말콤 글래드웰

by 브레인하트

사전적 의미로 ‘타인’은 ‘다른 사람’으로 표기됩니다. 하지만 ‘타인’의 뜻을 사전에 있는 표기로만 설명하기엔 그 쓰임새를 다 포용하기 어렵죠. 타인은 ‘나’라는 고유명사를 제외한 모든 이가 될 수 있고,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를 제외한 이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속한 집단과 국가 외의 대상까지 범위를 확장 할 수도 있습니다. 즉 개인의 주관과 특정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미묘한 쓰임새를 가진 용어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타인의 해석』으로 6년 만에 신간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타인의 해석』에서 ‘타인’은 일상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포함합니다. 『타인의 해석』은 낯선 사람에게 쉽게 호감을 사고 어떻게 친밀한 관계를 형성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처세술에 관한 책이 아닙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낯선 사람들이 서로 만났을 때 그 속에서 어떻게 서로를 오해하고 비극이 생기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책은 흑인 여성 블랜드가 면접을 보러 텍사스로 향하는 중 백인 남자 경찰 엔시니아에게 교통위반으로 정차 요청을 받는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시작되는 둘의 대화는 서로를 오해하면서 점차 격해지고 관계는 뒤틀려갑니다. 엔시니아는 블랜드를 체포해 유치장에 구금하고 블랜드는 며칠 뒤 유치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작가는 낯선 사람들이 서로 만나 비극을 초래하는 다양한 실제 사례를 분석하며 블랜드의 죽음에 대한 단초를 파헤칩니다. 각 챕터는 서로 다른 사건, 사례를 개별로 다루고 있지만, 낯선 사람과 조우했을 때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본질적 이유를 공통으로 설명합니다. 책장을 덮을 때쯤 블랜드의 죽음으로 귀결된 세 가지 비극의 요인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 오류, 투명성 가정의 실패, 맥락의 중요성입니다.


우리는 몇 가지 단서를 설렁설렁 훑어보고는 다른 사람의 심중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여긴다. 낯선 이를 판단하는 기회를 덥석 잡아버린다. 물론 우리 자신한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은 미묘하고 복잡하며 불가해하니까. 하지만 낯선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75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 오류는 낯선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이 정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미국 펜타곤의 고위직 정보요원이 쿠바의 이중 스파이로 의심될 때 심문관은 별다른 의심 없이 용의자의 증언이 진실하다고 믿었습니다. 펜실베니아대학의 풋볼팀 코치와 미국체조협회 전담 의사의 성범죄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도 범죄를 입증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조차 이들이 정직하다고 믿었고 그루밍 성범죄처럼 피해 당시 자신이 성범죄 대상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낯선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의혹이 더는 믿을 수 없는 사실로 드러났을 때 진실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그제야 용의자들의 위선이 드러났습니다.


투명성 가정의 실패는 낯선 사람의 외면에 보이는 태도가 내면의 감정과 일치한다고 여길 때 발생합니다. 행복할 때 웃는 사람도 있고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슬플 때 우는 사람도 있고 웃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표현하는 감정은 원래 내재되 있다기보다는 학습된 것으로, 문화권에 따라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의 외면에 보이는 태도를 고정관념으로 인식할 때 우리는 예기치 못한 혼란스러움에 빠지고 잘못된 판단을 내립니다. 진짜 피의자는 법정에서 선량한 표정과 반성하는 태도를 연기해 혐의는 무죄로 종결되거나 감형을 받습니다. 그리고 죄 없는 용의자는 불안한 행동과 어눌한 자기변호로 부당한 형을 선고받습니다. 이것이 투명성의 환상입니다.


마지막으로 결합의 중요성은 낯선 사람의 행동이 특정한 상황 및 조건과 연결된다는 의미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일어난 자살은 개인의 감정적 요인뿐만 도시가스 사용과 맞닿아 있습니다. 인체에 치명적인 일산화탄소가 들어 있는 도시가스는 기술의 발전으로 1960년대부터 일산화탄소가 없는 천연가스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산화탄소 중독 자살률은 천연가스 보급률과 비례해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낯선 사람의 행동을 개별적인 상황에 의거해서 판단하기보다 그를 둘러싼 환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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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현상을 연구하고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려면 논거의 타당성과 개연성을 입증하는 과정과 사례가 중요합니다. 『타인의 해석』은 말콤 글래드웰의 이전 저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고 실제 사례를 인용하며 주장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책의 미주는 작가가 주제에 대해 얼마나 고심하고 방대한 조사를 했는지 뒷받침해 줍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많은 서적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말콤 글래드웰은 책의 끝 페이지에 다다를 때까지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오해와 갈등을 피할 수 있는 해결책을 자세히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짧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친절하고 겸손하게 대하라구요.


작가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깊이 고심했지만, 친절과 겸손이라는 비교적 간결한 답변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사람과 생기는 문제를 대처하려면 서로 의심하고 의중을 간파하려는 행위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검증하고 조사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도 필수적으로 수반됩니다.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관계를 밀어내야 하고, 위험을 피하고자 정중한 거절이라는 가면을 쓴 채 민얼굴로는 불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낯선 사람의 모든 언행에 대해 사실 여부를 구분하는 것은 굉장히 피곤하고 별 이점도 없는 일입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마다 검문소에서 까다로운 신원조회를 하고 동호회 가입을 위해 양손 가득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만약 이런 태도로 타인을 대한다면 정상적인 사회작동은커녕, 인류는 문명화조차 어려웠을 것으로 과히 짐작해 봅니다. 현대사회에서 낯선 이와의 만남은 필연적입니다. 의심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보다 신뢰를 기반으로 둔 효율적 의사소통이 훨씬 더 중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친절과 겸손이라는 간결하지만 통찰력 있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요?



타인을 신뢰하는 우리의 본성이 모독을 당하는 사태는 비극적이다. 하지만 그 대안, 즉 약탈과 기만에 맞서는 방어 수단으로 신뢰를 포기하는 것은 더 나쁘다. (중략) 우리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의 심중을 투시력으로 꿰뚫어 보는 완벽한 기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제와 겸손이다. P397~398



우리는 낯선 사람을 만나고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어떻게 보면 피로 맺어진 부모도 태어나는 순간엔 처음 마주하는 낯선 사람입니다. 또래가 함께 배우는 학교, 같은 유니폼을 입는 직장, 어색함이 맴도는 소개팅 자리도 ‘타인’이라는 관계로 시작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말이 오가고 감정을 교류하면서 ‘우리’라는 관계로 확장됩니다. 그리고 확장된 관계 안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상을 많이 바꿔놓았습니다. 타인과 만남을 더 꺼리게 되고 물리적인 거리를 유지하라고 합니다. 낯선 이와의 조그만 접촉에도 오해와 갈등이 쉽사리 생기기 쉬운 시대를 살고 있죠. 그래도 잊지 맙시다. 인간은 함께 살아왔고 또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을. 우리는 타인을 만났을 때 그저 조금 더 능숙해지고, 친절해지고, 겸손해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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