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닫으며

동네사람들

by 돈태

부동산 계약서에는 상가 임대차 종료일이 3월 11일이다. 새로 상가계약을 맺은 임차인이 인테리어를 이유로 조금 빨리 책방을 비워줄 수 있냐고 물어서 그리하겠다고 했다. 남은 계약기간의 임대료는 새로운 임차인이 부담하는 조건이다. 그렇게 2월 28일까지 책방을 정리해야 한다. 이때가 2월 초쯤이다.


책방 정리 데드라인이 확정된 만큼 짐을 옮길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했다. 다행히 외삼촌의 창고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다음은 책방 짐을 옮기는 일이다. 인터넷에서 이사업체를 검색해서 소형이사 업체와 계약을 했다. 이사 날짜를 24일로 잡았다. 이사 후 5일 정도 여유를 두고 남은 짐을 직접 정리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사업체에 맡길 짐을 최소화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그만큼 이사 후 직접 처리해야 할 짐들이 많았다. 자가용으로 옮길 수 있는 크기의 짐들은 집으로 옮기고, 그 외의 물품들은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렸다. 변수가 생겼다. 이사 업체와 계약한 책 박스 규모로는 책방의 책을 다 넣기에 부족했다. 직접 옮겨야 할 책이 상당했다. 책방의 책을 책방주인이 과소평가했다.


주관적으로 가치 있는 책 순으로 박스에 포장했다. 업체가 옮기지 않을 책들을 남겨보니 양이 상당했다. 대부분 중고책으로 어떻게 책방에 왔는지 기억이 안 나는 책도 있고, 오래전 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시절에 샀던 책 그리고 타의로 인해 책방에 온 책들이 대부분이다.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알라딘에 파는 것이었다. 이틀 동안 책더미 씨름하며 알라딘을 오갔다. 알라딘은 까다롭게 구매할 책을 골랐다. 3분의 1 정도가 안 팔렸다. 3분의 1 정도만 해도 100권 가까이 됐다. 집에 남은 공간들도 이미 이사업체가 옮기지 못할 책들로 채워진 상태였다.


불현듯 군대 시절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군부대 안 공터에 있던 아이스크림 냉동고가 생각났다. 냉동고를 관리하는 사람은 따로 없었다. 냉동고 위에 아이스크림 가격이 적힌 메뉴판 비슷한 것과 냉동고 옆에 돈을 넣을 수 있는 돈통이 있을 뿐이었다. 군인들이 알아서 돈을 내고 아이스크림을 갖고 가라는 의미다. 양심에 맡겼던 것이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리려던 책장 하나를 책방 밖으로 내놓고 알라딘에서 구매를 거부한 책들을 채워 넣었다. 책장 위에는 '필요하신 책 갖고 가세요. 가격은 원하는 만큼 계좌이체 해주세요. ㅇㅇ은행 0000'라고 적힌 A4용지를 붙였다.


책을 밖에 내놓은 날, 저녁에 첫 번째 계좌이체가 왔다. 모르는 이름의 사람이 5000원을 보냈다. 책을 가져가고 돈을 보낸 것으로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다음날 책방에 도착하니 책장 안에 정돈돼 있던 책들이 누군가 휘젓은 것처럼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책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책을 밖에 내놓은 지 이틀이 지나도 책들이 그대로 책장을 채우고 있었다. 단지 누군가의 손에 휘젓어진 모양새는 또다시 마찬가지였다. 책을 고르다가 최소한으로 갖고 간 거 같았다. 소액의 계좌이체가 간간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28일까지 책들이 다 정리되지 않을 거 같았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책 무료나눔을 올렸다. 책을 갖고 가도 되냐는 연락이 생각보다 많이 왔다. 밖에 있으니 필요한 만큼 갖고 가라고 반복해서 답했다. 답을 보내며 느낌이 이상했다. 책을 한 번에 다 갖고 가기 위해 점찍어두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려는 것보다 한꺼번에 트럭에 싣고 가서 어딘가에 넘기겠다는 의도가 그려졌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무료나눔을 올린 후 책은 빠르게 줄었다. 책방에서 짐을 정리 중일 때 책을 가지러 온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을 하거나, 그냥 가져가도 되냐는 말을 남기며 책을 한 아름 갖고 갔다. 동네에 어느정도 책방 소식이 전해졌는지 동네주민들도 책방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처음 본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자기는 근처 산다, 저쪽에서 가게를 한다 등 자신의 신상을 밝힌 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책을 갖고 갔다. 한 주민은 책을 그냥 가져가는 것이 미안하다며 책방을 정리하며 내놓은 쓰레기를 치워줬고, 책방 근처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사장은 책 잘 읽겠다며 커피를 갖다 줬다. 계좌번호를 적어놓은 A4용지가 무색해 땠다.


책 말고 의자, 탁자, 신발장, 청소기 등에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라고 적힌 A4용지를 붙여 책방 앞에 내놓으면 기다렸다는 듯 사라졌다. 책방이 있는 건물에 거주하는 아주머니도 수시로 책방 앞을 왔다갔다 했다. 그간 말 한마디 나눠본 적이 없는데 밖에 내놓은 책을 가져가며 책방 정리를 아쉬워하며 자기 이야기를 들려줬다.


책방 정리 데드라인 하루 전인 27일, 책방 정리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책방 안에 소파 하나 남았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렸는데 아직 거래가 완료되지 않았다. 솔직히 가장 빨리 팔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가장 안 팔린다. 문의는 많이 오는데 거래로 이어지지 않았다. 2인용 소파의 크기 때문에 트럭이 싣고 가야 하는 부담이 큰 것으로 보인다. 소파가 가장 빨리 팔릴 것으로 예상했던 이유는 책방 정리하는 과정에서 오가던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건물주인은 물론 새로운 임차인 그리고 몇몇 동네주민들이 밖에 내놓은 물품을 갖고 가며 소파를 탐냈다. 그만큼 상태도, 디자인도 누가봐도 괜찮다. 내일 마지막으로 책방에 가는 날, 소파를 밖에 내놓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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