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시간 없는 책방

다음 책방은?

by 돈태

"영업시간이 어떻게 되나요?"

6년 가까이 책방을 하면서 손님들한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책방에 온 손님은 물론 네이버에서 검색되는 책방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어김없이 책방의 영업시간을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럴때마다 "따로 영업시간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손님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뭐지?라는 표정에서부터 신기해하는 눈치, 은근히 책방을 걱정(?) 해주는 느낌 등.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고 싶을 때면 "제가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영업시간을 정해 놓지 못해요"라고 덧붙였다.


"오늘 책방 열렸나요?"

영업시간을 정하지 않고, 영업시간에 대한 공지도 따로 하지 않기 때문에 책방 오픈을 확인하는 전화도 더러 받았다. 책방이 열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주는 손님들이 고마웠다. 그런데 고마움이란 게 책방에 대한 관심이 고맙다기보다 내가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게 해줬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에 가깝다. 지인들 중에 책방이 닫혀 있을 때 왔다 갔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그렇다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손님들도 책방이 닫혀 있을 때 왔다가 그냥 갔을 가능성이 있다. 지인의 헛걸음 소식을 들었을 때 익명의 손님들의 헛걸음 가능성이 뒤따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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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팅"

얼마 전에는 책방에 도착하니 유리창에 '화이팅'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전후맥락 따지지 않고 짠해졌다. 책방 계약이 곧 끝나서 책방을 정리하고 있다는 인스타를 올리고 며칠 뒤였다. 아마도 이곳에서 책방이 영영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은 손님 또는 지인 가운데 누군가가 책방이 닫혀 있을 때 왔다가 그냥 돌아가지 못하고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했다. 포스트잇을 조심히 떼서 책방 안으로 갖고 들어왔다. 포스트잇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단골손님 가운데 한 명이 인스타에 "지나가다 같은 마음입니다"라며 댓글을 남겼다. 그 손님이 붙인 건 지 헷갈리는 댓글이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손님이 편해야 하는데"

책방 영업시간을 정하지 않은, 정말 솔직한 마음은 따로 있다. 딱 한번 이런 솔직한 마음이 입 밖으로 삐져나온 적이 있다. 자영업 공간과 관련한 모임에서 알게 된 지인이 책방에 놀러 왔을 때다. 지인은 나름 유명인이다. 책도 몇 권 쓰고, 언론에 지인의 인터뷰 기사도 실렸다. 젊은 나이에 개성 있는 술집을 여러 개 성공시키며 이름을 알렸다. 이미 장사에 대해서는 도가 텄을 지인은 책방을 구경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게가 잘 되려면 주인은 불편하고 손님이 편해야 하는데,라고.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이렇게 단박에 내가 원하던 공간 콘셉트를 알아차리다니.


"여기 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라서"

지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정말 용하다고. 지인은 의아해했다. 나는 의도치 않게 책방을 하는 개똥철학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작은 동네책방을 좋아했고, 언젠가는 내 책방을 열고 싶었는데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그냥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여건이 되면 그때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책방 오픈을 미뤄오던 어느 날 지금 당장 책방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후회할 거 같다는 생각을 했고, 책방 계약을 했다고. 다른 사람들 눈치 보고, 다른 사람들 기준에 맞추고,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받기 위해 애쓰며 버티는 삶에 마침표를 찍는 연습을 책방에서 해보자고. 그래서 영업시간을 정해 놓으면 거기에 억지로 맞추는 경우도 생길 거 같아서 영업시간 자체를 무시하기로 했다고.


'한 번 해봤으니?'

유명한 지인의 우려는 현실로 증명됐다. 6년 동안 책방은 월세를 뛰어넘는 월 매출을 기록해 본 적이 없다. 순수익이 아닌 매출로도 말이다. 언론사에서 받는 월급이 있었기에 책방을 운영할 수 있었다. 책방 수입을 걱정하는 지인들에게는 "비싼 취미"라며 쿨한 척도 했다. 다른 책방 주인들이 수입을 고민하며 이런저런 행사를 기획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불구경하듯 했다. 책방이 열리지 않은 날도 늘어갔다. 그러니 책방을 6년 가까이 운영했어도 책방에 대한 디테일한 전문성이 있을 턱이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책방을 정리하며 주변에는 책방을 옮긴다고 말한다. 책방을 다른 곳에서 열 계획이다. 이제는 매달 들어오는 월급도 없다. 돈 벌려고 책방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방에 돈을 쓸 수만은 없는 처지다. 그런데도 다음 책방에서도 영업시간을 정하지 않을 거 같다. 다만 책방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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