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역설

유치원 등하원

by 돈태

차를 몰고 지방에 갔을 때 종종 도로 교차로에 신호등 대신 원형 로터리가 나오면 움찔움찔한다. 평소보다 속도를 줄이고, 다른 차들을 더욱 예의주시 하며 교차로를 지나간다. 동승자가 이런 나를 보며 '왜 여긴 위험하게 신호등을 설치 안 했을까'라고 말한 적도 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게 더 안전할 수 있어."

동승자는 이유를 물었고, 나는 친구 이야기로 답을 했다.

"친구 한 놈이 예전에 크게 사고가 난 적이 있거든. 새벽에 교차로에서 차를 정지한 후 신호 기다렸다고 출발했는데 다른 쪽에서 오던 차가 그냥 받아버렸어. 너무 신호만 믿은 거지."


지인의 사례, 운전 경험 등을 고려할 때 신호등 없는 교차로가 더 안전하다는 주장이 더 그럴싸하게 다가온다. 역설적인 견해에 심오한 진실이 담겨 있을 거 같아 마음이 기운다. 하지만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서 사고가 덜 난다는 객관적인 근거를 아직 확인한 적은 없다. 일반적인 상식과도 거리감이 있는 이런 생각을 남들에게 이성적으로 설득시킬 자신도 없다. 논리보다는 감에 의존하기에 단단하지 못한 견해이자 주장이다.


그런데 <이반일리치 문명을 넘어선 사상>에서 이런 생각을 지지해 주는 내용을 만났다. 철학적 사유를 논리적으로 풀어서 뒷받침하고 있다. 속으로 대신 수고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반가웠다.


"그런데 신호기가 설치되면 신호만 보게 되어 자동차도 사람도 서로 보지 않게 된다. 교차점에서 사고가 많은 것은, 신호기만 보고 자동차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자율적 동작이 없어지고 타율적 동작이 되기 때문이다. 신호기의 증설이 교통 사고를 감소시킨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프랑스나 영국조차 교차점은 신호기가 아니라 원형 로터리다."


신호등에 너무 의존하다 보니 안전보다 규칙을 지키는데 우선순위를, 혹은 방점을 찍는다. 그렇다고 모든 신호등을 없애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아이들이 등하원 하는 곳에는 신호등이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신호등에 너무 의존하는, 규칙만을 앞세운 어른들의 말들이 아이들의 안전을 오히려 위태롭게 하지 않을까 걱정을 해본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을 등원시키는데 횡당보도를 두 번 건넌다. 그럴 때마다 아들에게 "빨간 불이니까 멈춤." "초록 불에 가는 거야."라는 말을 반복해 왔다. 이제 다른 말을 더 자주 해야겠다. "횡단보도 건널 때는 뛰지 말고 차가 오는지 주위를 확인한 후에 건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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