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삶을 살지 못하더라도
"마모된 자신을 상승시키기 위한 방식이 여행이겠지요. 당신은 그 여행에서 사라짐으로써 사슬을 끊었습니다. 당신이 설계한 이번 삶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쪽으로, 불멸의 감정을 저만치 대칭으로 놓아둔 채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접었습니다. 사랑할 힘은, 그 아름다움의 힘은 다음 생으로 넘기세요. 그것도 아름답습니다."
책을 읽기 전 습관처럼 앞뒤 표지에 실린 글들을 먼저 집중하곤 한다. 카피라이터와 비슷하게 상업적인 냄새가 짙은 문장과 단어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감탄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최근까지는 단연 "넷플릭스를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가 백미다. 다른 말 필요 없고, 미친 센스다.
추천글의 목적이 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겠나. 상업성이 느껴진다고 욕하기 어렵다. 그런데 추천글이 그냥 그 자체로 작품이 되기도 한다.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았는데 뭔가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읽히고, 그 메시지를 시적으로 압축해 여운을 남기며, 내 삶에 대한 잡힐 듯 잡히지 않던 감정을 확 낚아채 토닥여주기까지 하는 통찰이 느껴진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꼬시지 않고, 읽어야 한다고 가르치려 하지 않으며, 안 읽고는 못 배기겠지라는 식의 호기심을 자극하려고 애쓰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뒤흔드는.
몇 번을 다시 읽어보게 돼 정작 그 책의 표지를 넘기는데 오래 걸리게 만들고야 마는... 토마스 만이 쓴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뒤표지에 실린 이병률 시인의 추천글이 그랬다.
시인의 추천글을 처음 봤을 때 낮은 한탄이 나왔다. 그리고 몇 번을 다시 읽으며 눈이 크게 떠졌다. 시인의 추천글을 되뇌며 고흐, 사강, 오사무를 떠올렸고 내 지나온 시간들을 곰곰이 되짚었다. 나는 선택을 한 것일까.
그것도 아름답다,는 시인의 말에 한 발 더 나가야 한다는 오래된 명제에 고개를 끄덕인다. 패배감 비슷한 감정이 실은 다른 아름다움을 아직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확신하는 어리석음을 다시 경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