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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태 Mar 30. 2022

이기적인 글쓰기

‘투표 인증’ 트라우마

"글쓰기는 '나'를 표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면서 동시에 생각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글을 쓰지 않으면 생각도 점점 단순해질 가능성이 높다." <서울리뷰오브북스 3호> 중     


이전 글을 통해 누군가의 ‘뭉클함’에 불편함을 느꼈던 나의 생각을 정리했고, 이번에는 불편했던 감정의 뿌리를 확인하고자 쓴다.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내 생각을 더욱 깊게 이해하고 싶어서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거나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온전히 나를 위해 쓴 글이다.       


지팡이를 짚고 노인이 투표하는 행위를 뭉클하다고 표현한 문장에서 느낀 불편함은 ‘투표 인증’ 행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감정이다. 누군가의 ‘투표 인증’ 게시물을 보면 먼저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러나 SNS 게시물 대부분을 스킵하는 일상에서 투표 인증 게시물에 대해선 유독 집중력을 발휘한다. 일종 불신인데, 10년 전쯤의 '그 일'이 있고 나서다.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 두 놈이 이제 막 유행하던 트위터에 ‘투표 인증’을 포스팅했다. 타지역에서 온 두 친구는 부재자 투표를 한 후, 투표소 앞에서 각자의 ‘부재자 투표봉투’를 손에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을 '투표합시다'라는 글과 함께 트위터에 올렸다. 당시 손등에 도장을 찍는 식의 투표 인증을 보기 힘들었던 시기다.  SNS 체가 신기했던 시기에 ‘투표 인증’이라는 문화 자체도 생소했던 때다.

학교로 돌아온 두 친구는 자신들의 투표 인증 게시물을 나에게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했다. 투표를 했다는 것은 물론 이를 SNS를 통해 익명의 타인들에게 공유한 일이 스스로도 기특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투표 인증 사진을 본 순간 기가 찼다.      


“야 니들 봉투를 들고 나왔어?”

“응, 투표를 했다는 걸 보여줘야 할 거 아냐.”     


“아이고, 그거 무효다”

“무슨 소리야?     


부재자 투표는 정식 투표일에 일정한 사유로 인해 선거인명부에 등재된 거주지에서 투표가 불가능한 경우, 신고 후 선거일 전에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부재자 투표를 신고를 한 유권자는 타지역에서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회수용 봉투와 투표용지를 우편으로 받는다. 해당 유권자는 부재자 투표 기간 동안 지정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은 후 회수용 봉투에 넣어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두 친구가 투표 인증에 활용한 봉투가 바로 '회수용 봉투'였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밝힌 무효투표 사유 중 하나가 '정규의 회송용 봉투를 사용하지 아니한 것'이다. 부재자 투표 제도는 2013년 1월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따라 사전투표제가 도입되면서 2014년 폐지됐다.      

   

이후 SNS는 일상이 됐고, 선거 때마다 SNS에는 투표 인증이 넘쳐난다. 손등에 찍힌 도장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진부해도 보람되고 뿌듯한 일일 테지만, 인증 게시물을 볼 때마다 두 친구의 기억이 떠올라 께름칙하다. 그 때 자랑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그 놈들도 덜 민망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기도 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투표 인증 게시물은 내 마음 속에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선사한다. 미간을 좁히면서도 투표 인증 게시물에 눈이 가는 이유다. 이번에 써먹었듯이 간간히 글감을 얻는 '덤'을 바라는 마음도 지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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