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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태 May 06. 2024

대학 서열화

나의 글쓰기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병폐로 꾸준히 꼽히는 사안 중 하나는 '대학 서열화'다. 스카이(SKY)라는 말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난, 이 말을 들은 지 30년은 된 거 같다. 난 40대 초반이다.


이 말의 문제점은 이미 널렸다. 인터넷 검색만 할 수 있으면 쉽게 찾는다. 그래서 이 말을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렵다. 뻔한 글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화를 주제로 글을 쓸 때 진짜 실력이 나올 수 있다. 대학 서열화를 옹호하며 통념을 뒤집을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할 확률이 높다. 너무나 견고히 자리 잡아온 논리를 깰 반박 논리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질 수 있을까? 파격적인 글이 될 수 있겠지만 공감을 얻기 힘든 글이 될 수 있다. 생명력이 짧은 글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해왔던 주장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내 삶과 연결해 쓸 수도 있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사례고, 처음 세상에 나온 글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왜 대학 서열화가 나쁜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이다. 대학 서열화가 누군가의 삶에 이런 구체적인 영향을 줄수도 있겠구나,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글이다. 


공적인 에세이를 잘 쓰는 한 작가의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난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고, 책을 찾는데 시간이 걸릴 거 같아, 그 글의 취지를 대략 적어보면 이렇다. 


작가는 글 쓰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글 써서 돈을 벌기 참 어려웠다. 더욱이 자신의 글에 자존감도 높지 않았다. 그래도 글 좀 쓴다는 말에 전업 작가의 길을 가려고 열심히 썼지만 주변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그러던 중 선배인지 선생님인지 누군가의 조언을 받는다. 주장하고 싶은 바나 감정을 그대로 단어로 옮기지 말고 그런 주장과 감정과 관련된 구체적인 상황을 그려주라고. 그러면 독자들은 그 주장과 감정에 공감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단어로 쓰이지 않은 주장과 생각을 읽는 이가 떠올렸다면 성공한 글쓰기라고. 


이번 글의 결론이다. 이래저래 해서 대학서열화는 나쁘다. 이렇고 저렇고 하지 않을까 해서 대학 서열화를 좋다고 할 수 있다. 머릿속 생각을 논리적으로 주장해 봐야 진부하거나 얕은 글이 되기 참 좋은 주제다. 이럴 바에 아예 글에는 대학 서열화를 언급 안 하는 게 낫다. 읽는 이가 자연스럽게 '아, 이 글은 대학 서열화를 말하는 것이구나'라고 떠올리게 도와주면 그만이다. 근데 이게 어렵다. 힌트를 얻을 만한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내가 지금껏 대학 서열화에 대한 말과 가운데 최고로 치는 것은 유시민의 강의 내용 일부분이다. 유시민이 과거 대선주자로 거론되던 때였던 같다. 유시민은 강연에서 '노무현 대통령과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묻는 취지의 질문에 아래처럼 답했다. 누구나 아는 대학 서열화의 병폐를 자신의 경험에 빚대 누구에게나 와닿게 풀어냈다. 


"노무현 대통령과 내가 많이 다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학을 못 나왔습니다. 저는 제일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제일 좋다는 대학을 나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깔보는 사람은 많았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저는 미워하는 사람은 많지만 깔보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노파심에 팩트를 덧붙인다. 유시민은 서울대를 나왔고 노무현은 고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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