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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태 Nov 21. 2024

일단 닫기로

결심 후/ 책방은 포기하지 않기로

2019년 3월 책방을 열었다. 두 번 임대차 계약을 갱신했다. 상권이 안 좋은 가게인 만큼 월세는 처음보다 5만 원 정도 올랐다. 2025년 3월 계약기간이 끝난다. 갱신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건물주에게 책방을 빼겠다고 말해 뒀다.

최근 '부동산 전화'가 부쩍 늘었다. 하루는 건물주 책방을 와서 넋두리를 했다. 건물주는 책방 건물 3층에 살고 있는 할머니다. 항상 친절하시고 책방에 대한 염려도 자주 해준다. 조금 과할 때도 있지만. 건물주 할머니의  습관 중 하나는 나와 대화할 때 '고맙다'는 말을 빼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장님 나오셨네요. 이쪽 부동산이란 부동산에는 다 임대 내놨어요."

"아, 네. 어쩐지 부동산에서 전화가 많이 오네요. 며칠 전에는 책방도 보고 갔어요."

"근데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긴 하나봐. 계약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데요."

"그런 거 같아요. 요새 임대 붙여 놓은 가게들이 많더라고요."

"그런가봐. 이거 어째. 그래도 하느님이 도와주실 거야. 사장님 항상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부동산에서 또 연락 오면 책방 잘 보여줄게요."


당초 책방을 언제까지 하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여력이 되는 한 계속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올해 들어 삶에 균열이 생겼다. 책방 유지에 버팀목이던 월급이 조만간 끊긴다. 타의가 아닌 자의다. 이에 맞춰 '서울살이'도 마침표를 찍을 작정이다. 주거 비용을 줄이자는 현실적인 고려와 다른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결합된 결정이다. '지방살이'를 준비하는 마당에 서울에서 책방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 계약종료 시점까지 이사와 폐업을 준비하자는 판단을 내렸다.

'다른 삶'에도 책방은 여전히 존재한다. 폐업이라는 삭막한 단어를 써야 하는 상황이지만, '일단 멈춤'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장담 하기는 이르지만, '지방살이'를 시작할 곳에서 본격적으로 동네에 밀착한 독립서점을 열 계획이다. 그때가 되면 동네 책방이라는 단어를 자신 있게 쓸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계획보다 '지방살이'가 늦어질 거 같다. '지방살이'의 전제 조건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파는 일이다. 집은 이미 부동산에 내놨다. 점점 부동산 연락이 뜸해지더니 최근에는 연락이 없다. 밥벌이로 금융권을 경험했다. 나름의 진단을 내리면 금리 영향이 크다. 코로나19 이후 급하게 올랐던 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다.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다. 피벗 시대가 오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주요국에서 금리 인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생각보다 금리 인하 속도가 더디다. 자연히 대출 부담에 부동산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는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새다.  미국의 정치-경제적 환경이 금리 인하에 우호적이라는 점에서 당장 집을 팔기보다는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판단이 선다.


이런 상황은 잔머리를 굴리게 만든다. 당초 책방 계약이 끝나기 전에 서울살이를 정리하려 했다. 지금에서는 책방 계약이 끝난 후에도 당분간은 '서울살이'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책방 인테리어를 담당했던 서가와 책장 그리고 소품과 가구, 무엇보다 책방을 꽉 채운 책들을 '지방살이'를 시작할 곳으로 옮겨 놓고 두 번째 책방 오픈을 차근차근 준비하려고 했다. '지방살이'를 시작하기까지 임시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책방 계약을 편법적으로 몇 개월 연장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어차피 건물주도 공실 걱정을 하는 상황이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얼른 생각을 접었다. 일이 복잡하게 꼬일 수 있다. 건물주와 계약 관계로 인해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있다. 방법을 찾는데 몇 달 여유가 있다. 지금 당장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우쳤다. 책방을 열고 나서 이상이랑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겪었다. 월세 부담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당분간이라도 느껴보고 싶다.


폐업을 준비하면서도 책방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실보다 득이 많았다. 돈은 못 벌고 썼지만, 얻은 너무나 많았다. 매월 책방은 단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하지만 책방을 안 했으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 중인 독립출판물 작가들, 감동을 준 동네 단골손님, 신념과 열정으로 가득한 지역 활동가와 예술가들 그리고 몰랐던 책들 등. 무엇보다 어떤 돌아가신 기업가가 말했다는 "해봤어?"의 의미를 몸으로 이해하게 됐다. 또 하나, 한 번 해봤으니 다음은 조금이라도 나아지겠다는 자신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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