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 / 전능감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집 앞에 도착했을 때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인데 발걸음이 무겁다. 집 앞에 있는 공영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며 서성였다. 조금만 마음을 추스르고 집으로 들어가자고 생각하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유튜브를 열었는데 모르는 가수의 영상이 떴다. 알고리즘 추천이다. 무심히 클릭했다. 산발 머리에 콧수염, 통통한 얼굴에 큰 안경을 낀 가수가 야외무대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는데 도입부가 잔잔하다. 노래 중반부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며 갈라지는 소리가 난다. 내가 좋아하는 소프트한 허스키 느낌이다. 처음 접하는 음색과 감성에 끌릴 무렵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그래 내가 남들보다 특별한 존재가 아니지. 남들이 알아주는 빛이 아니라, 나만의 빛을 낼 수 있을 텐데.'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이때부터 내 18번은 중식이의 <나는 반딧불>이 됐다. 노래방 기기가 있는 곳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기면 언제나 <나는 반딧불>을 골랐다. 그때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가수의 노래인 만큼 노래방 기기에서 검색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예약하면 "누구야 노래야?"라고 물었고, 노래를 부르고 나서는 "노래 괜찮네"라고 말했다. 최근 나만의 노래였던 <나는 반딧불>이 상당히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졌다. 중식이가 아닌 다른 가수가 부르면서 유행하고 있다. 얼마 전 만난 친구는 내게 "야, 너 전에 불렀던 그 노래 있잖아. 그게 요즘 유튜브나 라디오에서 많이 나오더라"고 말했다.
<나는 반딧불>과의 인연이 떠오른 이유는 혐오정치가 교실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접하고서다. 기사는 혐오와 차별을 놀이처럼 증기는 학생들의 사례로 시작된다. 가장 먼저 등장한 사례는 부천의 한 고등학교 축제에서 진행된 ‘나락퀴즈쇼’다. 유튜브 채널 ‘피식 대학’이 만든 콘텐츠를 패러디해서 만든 퀴즈의 선택 항목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이 차별을 철폐하고 권리를 되찾기 위해 벌인 운동들이었다. 기사는 전문가의 말을 빌려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벌어졌던 혐오정치가 교실까지 확산되는 사례라고 진단했다. 기사에서 인용한 전문가인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혐오정치는 ‘나보다 약자’라는 걸 집단적으로 놀리고 조롱하며 전능감을 얻는 것을 속성으로 한다”며 “예전에는 ‘일베’ 한다는 걸 입 밖에 낼 수 없었는데 ‘일베식 혐오를 하면 낙인찍힐 것’이라는 위협감이 사라진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축제의 나락퀴즈쇼가 논란이 되자 학교 측은 공개적으로 반성문을 올렸다. 학교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려 축제 준비 과정의 안일함에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학교와 해당 학생들을 향해 무지하다는 식의 비판이 과하다는 불편함을 넘어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물론, '나락퀴즈쇼'의 본래 의도를 고려하면 비판하는 쪽에서 조금 더 여유 있게 반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렇게 '정치적 올바름(PC)'라는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대며 유머러스한 관용을 질식시키고 있지 않나,라는 문제의식을 느끼면서도 정작 기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전능감'이라는 개념을 썼다는 것이다. <나는 반딧불>이 떠오른 지점이다.
기사에서 전문가의 분석을 보면 '전능감'은 혐오정치의 속성 가운데 하나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전능감을 억누르기 위해서 사회적인 대응이 필요하거나 사회적인 풍토를 바꿔야 한다는 시각도 담겼다. '혐오 정치'라는 PC적 시각을 뒷받침하는데 '전능감'이라는 개념을 붙이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PC를 옹호하는 진영은 누구보다 사람들이 쓰는 단어와 표현에 민감한데 과연 적확하게 쓰인 것일까?
전능감이란 무한한 힘이나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나 느낌을 말하며 심리학적, 발달적,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설명되는 개념이다. 영유아기부터 형성되는 것으로 연구된 전능감은 현실적 한계를 인식하는 균형 잡힌 시각과 함께 성장하면 높은 자아존중감으로 발전한다는 견해가 중론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인간 본성이고, 이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한 개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부족주의 등 공격적인 진영논리 성격을 띠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PC와 연결시키기에는 너무나 보편적인 인간의 속성인 셈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규정되는 행위들의 속성으로 비판받기에는 너무나 넓은 개념으로 보인다. 문제가 있는 전능감이라면 혐오 정치의 속성이라고 꾸짖기에 앞서 <나는 반딧불>을 한 번 들어보라고 권유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조금 시간은 걸렸지만 결국 노래가 인기를 얻은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