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단 하루만으로도 모든 인간의 삶을 바꿔놓는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서 사람들은 총구를 디밀며 서로를 위협한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늘 전쟁의 위협 속에 살아간다. 전쟁이 가져온 삶의 변화는 이렇듯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누군가는 전쟁이 가져온 인간성의 말살에 대해 한탄한다.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보여주는 전쟁의 참상은 아비규환이라는 비유로도 모자란다.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표지와 저자 아고타 크리스토프
소설은 전쟁이 가져온 인간성의 상실을 논하기 이전에, ‘인간성’이란 단어가 인간을 규정하는 방식이 온당한지에 대해 독자에게 묻는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성과 감성, 지성과 의욕, 자비심 등이 인간이 지닌 특질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견해는 그 사회에 속한 인간의 존재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쟁은 오랫동안 우리가 그러리라 여겨왔던 인간의 성질을 급격하게 해체할 뿐이다. 소설의 주인공 쌍둥이가 괴물이라면 우리 역시 괴물이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비밀 노트(1986년)’와 ‘타인의 증거(1988년)’, ‘5십 년간의 고독(1991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연작 소설은 각각의 완결성을 갖춘 하나의 독립된 소설이다. 대도시에서 살아가던 쌍둥이 형제 루카스와 클라우스가 할머니 댁에 맡겨지면서 소설 ‘비밀 노트’는 시작된다. 세계 2차 대전에 던져진 두 소년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살가운 보살핌을 받고, 사랑이 가득한 말만 듣던 두 아이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한다. 이름 대신 ‘개자식’이란 호칭으로 불리고, 고된 노동과 폭력에 시달린다. 할머니마저 손주들 편이 아니다. 전쟁 전에 남편을 독살한 의혹을 받는 그녀는 쌍둥이를 방치하고 학대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곧 생존방식을 터득한다.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궁여지책이다.
쌍둥이는 점차 스스로를 극한 환경에 몰아넣는다. 야만적인 환경에 익숙해지고 대도시의 편안함을 잊는다. 다른 이들의 폭력 때문에 울지 않기 위해 서로를 때리며 몸을 ‘단련’한다. 정신을 단련한다며 서로에게 상스러운 욕을 퍼붓는다. 한때 넘치는 사랑을 받던 아이들이다. 예전에 들었던 따뜻한 말을 떠올릴 때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 말들은 잊어야 한다. 이제 아무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추억은 우리가 간직하기에는 너무 힘겨운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 27쪽
이번엔 반대로 서로에게 엄마가 해주던 말을 들려준다. 그럼으로써 엄마가 한 말이 ‘차츰 그 의미를 잃고 그 말들이 주던 고통이 줄어들’게끔 한다. 그런 훈련을 통해 그들은 사랑을 상실했을 때의 고통이 얼마나 비참한지에 대해 깨닫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상실의 고통이 두려워 서로를 외면한다.
그들이 ‘비밀 노트’를 작성하는 방식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바로 ‘진실’만을 기술하는 것이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것들만을 기술하기로 약속한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를 쓰기로 한다. 쌍둥이의 담담하고 간결한 화법은 저자의 건조한 문체와도 일치한다. 소설은 줄곧 ‘우리’라는 1인칭 시점을 사용한다. 루카스(Lucas)와 클라우스(Claus)는 순서만 다를 뿐, 같은 철자를 조합한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분리되지 않은 두 사람의 주체성을 뜻할 수도, 혹은 동일한 인물의 두 가지 페르소나를 뜻할 수도 있다. 쌍둥이는 외모뿐 아니라 인격과 성격마저 동일한 인물처럼 비친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쌍둥이의 행동은 점점 기이하고 엽기적으로 변한다. 쌍둥이는 그들에게서 감정을 차단하는 법을 ‘단련’한다. 심지어 ‘잔혹 연습’을 통해 동물을 죽이는 일에 익숙해진다. 그들은 생선부터 시작해 사람이 먹는 동물을 도축한다. 그러나 얼마 후 그들은 ‘죽일 필요가 없는 동물들도 죽이게 되었다.’ 장님과 귀머거리 연습을 통해 그들이 깨달은 점이 있다.
"장님 역은 단지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 돌리면 그만이고, 귀머거리 역은 온갖 소리에 귀를 닫아버리면 그만이다." -46쪽
쌍둥이는 그런 방식으로 외부의 자극에서 그들을 분리한다.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전쟁이 증폭한 욕망과 결핍에 시달린다. 신부는 언청이 소녀를 능욕하고, 언청이 소녀는 쌍둥이를 유혹한다. 하녀는 장교를 꼬드기고 장교는 쌍둥이를 추행한다. 그들은 우리처럼 완전한 선인도 악인도 아니다. 언청이 소녀는 자신의 성性을 제공함으로써 필요한 물건을 얻고, 그녀의 만족할 줄 모르는 성욕을 충족한다. 신부와 장교는 더욱 복잡한 인물이다. 장교는 쌍둥이의 성을 착취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다른 이들을 구원해야 하는 임무가 버거운 신부는 음행이란 큰 죄를 짓는다. 그런가 하면 마녀라 불리는 할머니조차 때로는 다른 이들을 돕는 모습을 보여준다.
쌍둥이는 나름의 확고하고도 납득할만한 도덕관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놀라운 관찰력으로 상대가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 탈주병에게는 음식과 모포를 가져다주고, 언청이 소녀에게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들의 할머니에게 맡겨진 소녀를 ‘사촌 누나’로 부르며 돌본다. 언청이 소녀의 어머니인 이웃집 아주머니는 수십 년 동안 마음에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 딸이 죽자 그녀는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그들은 가장 고통이 덜한 방법으로 그녀를 죽게 한다. 뇌출혈을 겪은 할머니가 또 그런 일이 발생하면 자신을 독살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녀의 말을 따른다. 쌍둥이가 죽인 사람들은 간신히 생명의 끈을 붙들 뿐, 살아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쌍둥이가 한 일은 그들의 존엄사를 돕는 조력 행위에 가깝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쌍둥이의 행위를 결정짓는 것은 이웃이나 상대방이 ‘진정’ 원하는 일이라며 ‘철학자로서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 세계가 그 안에 있다고 밝혔다. 공감이나 감정 이입 없이 순수하게 맹목적으로 자발적으로 자동반사적으로 윤리적 행위를 하는 것을 통해 세계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지젝은 말한 바 있다. 쌍둥이는 사제관의 하녀가 끌려가던 전쟁 포로를 조롱하자 ‘그들의 의지로’ 그녀를 살해한다. 그들이 지닌 철학에는 세상의 윤리나 도덕이 파고들 틈이 없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 생존하기 위해 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처단의 대상이 아니다. 아무 이유 없이, 타인의 고통을 비웃는 자는 죽을만한 죄를 지은 것이다. 그들의 가치 판단은 단호하고 무자비하다.
쌍둥이를 데리러 온 어머니는 마당에 떨어진 폭탄으로 그 자리에서 생명을 잃는다. 그들의 갓난 동생도 함께 목숨을 잃는다. 몇 차례의 살인과 어머니의 끔찍한 죽음에도 쌍둥이는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독자들은 쌍둥이의 행각에 거부감이 들 수도, 그들 행동에 개연성이 부족한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쓴 ‘비밀 노트’의 원칙을 상기하자. 그들은 철저하게 ‘진실’만을 기술하기로 독자와 약속했다. 그들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밀에까지 우리가 가닿기는 불가능하다. 그들이 억누른 감정이, 그들이 미처 말하지 못한 느낌이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사랑하고 사랑받으려는 욕망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소설은 언뜻언뜻 그들 마음이 느끼는 ‘진실’을 보여준다. 필요하지 않으면 사과와 과자, 동전까지 버릴 수 있는 아이들이지만, 그들을 동정하던 이들이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은 버릴 도리가 없었다.’ 방공호 밖으로 뛰어나와서는 ‘폭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광경에 심호흡한다. ‘공포를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길가에 버려진 시체를 볼 때와는 달리 죽음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종군기자 신분으로 전쟁터로 떠난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뒤에야 아이들을 찾아온다. 아버지는 전쟁 전에도 늘 붙어있는 쌍둥이가 비정상이라 믿으며 그들을 분리하려고 애썼다. ‘비밀 노트’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독자를 충격에 빠뜨리기 충분하다. 쌍둥이는 문자 그대로 아버지의 몸을 ‘딛고’ 다른 세상으로 떠난다. 그와 동시에 쌍둥이는 드디어 서로에게서 분리된다. 두 번째 소설 ‘타인의 증거’는 할머니 집에 혼자 남은 루카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독자들은 루카스가 독립된 한 사람의 주체인지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50년 간의 고독’에 이르러서도 독자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란 말인가. 책장을 덮을 때까지 독자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남아있다. 끝없는 불확실성, 분열해 가는 주체, 정체성의 혼란이야말로 인간이란 존재가 숨긴 비밀이 아닐까.
저자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935년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전쟁터로 끌려갔고 어머니는 생계에 매달렸다. 저자는 남동생, 오빠와 함께 들판과 길거리를 쏘다녔다. 소설의 많은 부분이 저자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단식 훈련과 부동자세 훈련을 한 경험이 있다고 저자는 밝혔다. 열여덟 살 무렵 자신의 역사 선생과 결혼했다. 1956년 소련이 침략하자 남편, 아이와 함께 조국을 탈출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헝가리어로 시를 쓴다. 이혼 후에 대학 교육을 받고 1970년대에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1986년 비밀 노트를, 1988년 ‘타인의 증거’를, 1991년 ‘50년간의 고독’을 출간한다. 2011년 스위스에서 사망한다. 저자의 고향 헝가리는 나치 정권에서 해방되자마자 러시아라는 새로운 침략군을 맞는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쳐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던 한국의 실정과 비슷해 더욱 마음을 울리는 소설이다. 소설의 원제는 Le Grand Cahier, La Preuve, Le Troisièmoe Mensonge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란 이름으로 발간되었다. (까치글방, 용경식 옮김, 2022, 12. 20 17쇄 발행, 원제 Le Grand Cahier, La Preuve, Le Troisièmoe Menso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