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 사람들 뒤로 늑대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들은 사람들이 먹다가 던져준 뼈에서 야무지게 살을 발라 먹었다. 유달리 온순하고 사람을 따르는 새끼 늑대가 있었다. 먹이를 주면 손을 핥았고,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늑대들을 데려와 기르기 시작했다. 데려온 늑대들을 교배하자 더 온순하고 사근사근한 새끼들이 태어났다.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늑대와는 확연히 다른 동물이 탄생했다.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구(Men's best friend)라 불리는 개의 탄생 과정이다. 여기 이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개 한 마리가 있다. 인간의 질서에 속해있던 개 벅은 우연한 계기로 문명 세계를 벗어나 자연으로 내던져진다. 소설 ‘야성의 부름’은 벅의 투쟁과 적응, 진정한 야생성의 회복을 통한 자연으로의 회귀를 그린다.
벅은 미국 남부의 큰 저택에서 살아갔다. 벅은 철저하게 문명화된 인간 세계에 속해있다. 그의 몸에 밴 품위 있는 태도는 어느 정도 태생적이지만, 학습으로 습득된 면이 크다. 벅은 ‘밀러 판사의 장원 안에서 기고 걷고 나는 모든 것 사이에서 왕’이었다. 하지만 개로서는 알 수 없던 바깥세상의 변화로 인해 벅의 지위는 왕에서 노예로 격하된다. 황금을 좇는 사람들이 극지방으로 몰려들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썰매를 끌 개가 필요했다. 벅처럼 덩치 크고 힘센 개의 수요는 한없이 커졌다. 판사의 집에서 일하던 정원사가 벅을 몰래 팔아넘기며 벅의 시련은 시작되었다.
지금껏 벅은 동족보다 ‘지혜가 한 수 위인 사람을 대접하도록 배웠다.’ 벅의 조상인 늑대의 한 부류가 인간과 공생하기로 하면서 받아들인 위계인 셈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벅은 ‘인간의 친구’로서 대우받아왔다. 이제 벅은 낯선 사람들에게 얻어맞고 갇히고 학대받는다. 그런 과정에서 벅은 ‘곤봉과 송곳니의 법칙’을 받아들인다.
‘그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고 앞으로 살면서 그 교훈을 다시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원시법의 세계로 입문하는 첫걸음으로, 그는 이미 반쯤 그 길로 들어섰다. 삶의 실상에는 좀 더 광포한 면이 있다. 그래서 벅은 겁먹지 않고 그런 것에 직면하면서 그의 본성이 각성시킨 온갖 잠재된 재간을 동원해 맞섰다.’(본문 19쪽)
벅은 우편물을 배달하는 썰매 개로 팔려 간다. 벅의 새 주인 페로와 프랑소와는 현명하고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각각의 개의 습성을 파악해 잘 다룰 줄 안다. 무엇보다도 극지방의 자연환경을 잘 이해하고 신중하게 행동할 줄 안다. 그들 자신과 개들의 안전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대자연 속에서도 여전히 벅은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에 속해있다. 썰매 개들은 페로와 프랑소와의 애정과 보살핌을 받지만, 여전히 인간의 ‘도구’ 혹은 ‘노예’로 취급받는다. 이러한 예속 관계는 오랜 제도와 구조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벅을 포함해 많은 개가 썰매 끄는 개로서의 자긍심과 즐거움을 느낀다는 점이다. 개는 인간이 만들어낸 법칙에 종속되어 있지만, 불공평한 지위 속에서도 인간에게 우정과 충성심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오랜 길들임으로 다져진 습성이자 개라는 종족의 숙명이다. 벅은 ‘곤봉과 송곳니의 법칙’을 뼛속까지 체화한다. 인간에게는 형식적으로나마 복종하고 같은 동물끼리는 힘의 논리를 펼친다. 썰매 개들의 우두머리인 스피츠는 교활하고 잔인한 성품을 지녔는데, 곧 벅에게 자신의 지위를 위협받는다.
한편 벅의 몸에서 잠자고 있던 야성이 천천히 그 야수성을 드러낸다. 썰매 개들과 토끼를 사냥하는 벅의 내면에서 ‘피에 굶주린 욕망, 학살의 쾌감’이 꿈틀거린다.
‘그는 순수하게 솟구치는 삶과 조수처럼 밀려드는 존재의 파도, 근육과 관절과 심줄 하나하나가 움직일 때 느껴지는 완벽한 기쁨에 압도당했다.’(본문 52쪽)
토끼 사냥을 하던 도중, 벅은 스피츠를 공격하고 두 개는 맹렬하게 싸운다. 마침내 그는 오랜 숙적 스피츠를 제거하고 썰매 개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는 경험에서도 배웠지만 그보다 오랫동안 죽어 있던 본능이 되살아나서 그렇게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길든 세대의 유산들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는 막연하게나마 길들던 초창기를 기억해 냈다.’(본문 35쪽)
황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우편 수요는 늘어났고, 벅 일행은 더는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지친다. 벅을 포함한 썰매 개들은 이제 그 효용을 다 하고 팔려 가는 신세가 된다. 새 주인들은 남부 출신의 신출내기 ‘핼’ 일행이었다. 그들은 인간 역시 자연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외경심도 없다. 다른 생명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있을 리 만무하다. 벅 일행은 무지한 그들 때문에 점차 죽음이란 수렁으로 끌려간다.
그때 나서서 벅을 구해준 사람이 새 주인 손턴이다. 벅은 지금까지 그를 거쳐간 인간들과는 완전히 다른 관계를 손턴과 맺는다. 지금까지 벅과 인간의 관계는 주종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밀러 판사네 집에서 머물렀을 때, 그는 ‘인간의 친구’였으나, 그 말은 어디까지나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과 개의 관계는 철저한 서열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썰매 개가 되었을 때, 벅은 페로와 프랑소와를 존경했으나 그들에게 애정을 주지는 않았다. 이제 벅은 손턴과 완전히 동등한 관계를 맺는다. 손턴은 벅이 지닌 타자성을 인정하며 벅을 하나의 특별한 존재로 대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벅과 두 마리의 다른 개, 그리고 손턴은 함께 즐겁게 뛰어논다. 그 과정에서 벅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사랑, 진실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경험했는데 햇빛 비치는 산타클라라 계곡에서는 결코 맛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벅은 판사의 아들과 사냥하거나 산책할 때, 업무상 동업자였고, 판사의 손자와 놀 때는 어엿한 보호자였고 판사와 함께 있을 때에는 견고하고 위엄 있는 우정의 동반자였다. 그러나 열병처럼 타오르는 흠모, 미칠 듯이 광적인 사랑은 손턴만이 불러일으킨 감정이었다.’(본문 92쪽)
손턴은 ‘자식을 돌보듯이, 그렇게밖에 달리 길이 없다는 듯이, 벅을 돌봐주었다.’ 그들이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기이하다. 손턴은 벅을 거칠게 포옹하고 벅에게 욕을 퍼붓는다. 하지만 그가 퍼붓는 욕은 본래의 뜻을 상실한 웅얼거림이다. 벅은 손턴의 손을 입에 넣고 이빨로 꽉 물어서 그의 손에 이빨 자국을 남기는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욕설과 이빨 자국을 주고받는 인간과 개의 사랑은 원초적이고 에로스적이다. 그들의 사랑은 언어를 초월한다는 면에서 인간의 방식을 벗어난다. 무조건적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그들의 관계는 현대의 반려동물과 주인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에는 섣부른 의인화나 어설픈 감상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손턴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한 소박한 사람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는 벅의 힘을 이용해 도박판에서 큰돈을 번다. 그는 다른 이들처럼 황금을 채취하러 떠나고 마는데, 이는 그에게 닥칠 비극의 단초가 된다. 늑대 무리와 어울려 집을 나갔다 돌아온 벅은 단 하나의 사랑을 잃었음을 알게 된다. 벅은 복수심에 불타 손턴 일행을 공격한 인디언들을 살해한다. 이제 벅은 그를 유혹해 오던 야생의 부름에 저항할 이유가 없다. 벅은 늑대 무리에 합류해 그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함께 실린 단편 ‘불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자연의 위험성을 알지 못한다. 추위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친구와 함께 가라는 충고를 무시하고 길을 나선다. ‘야성의 부름’에 등장하는 ‘핼’ 일행과 마찬가지로 무지하고 어리석다. 벅이 살아갔던 ‘골드 러시(Gold rush) 시대’는 진보와 이성을 상징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했던 이들은 작품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백 년도 더 전에 탄생한 이 작품은 자연계의 한 일원인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자세에 관해 여전히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저자 잭 런던은 187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10대 때부터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골드러시에 합류해 알래스카에 다녀왔다. 1896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 분교에 입학한다. 사회노동당원으로 활동하며 니체, 다윈, 마르크스 등의 저서를 읽는다.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학교를 그만둔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 글을 기고한다. 1900년 첫 단편집 ‘늑대의 아들’을 발표한다. 1903년 발표한 ‘야성의 부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는다. 1904년에 샌프란시스코 신문사의 러일전쟁 특파원 임무를 받아들인다. 조선에 와 일본군 전선에서 러일전쟁 과정 중 하나인 압록강 전투를 지켜보았다. 이 시기 조선에서의 경험을 살려 그는 조선에 대한 글을 썼는데 프랑스에서 'La Corée en feu'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서 출판되었다. 구한말 조선의 후진성, 조선인의 나태, 계급 제도의 모순을 비판하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 편견에 가득하고 인종차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2011년에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1908년 소설 ‘강철 군화’를 발표한다. 1916년에 요독증으로 사망했다.
(권택영 옮김, 민음사, 2021(25쇄), 원제:The Call of The Wi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