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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강 Dec 01. 2020

가장 보통의 존재

지금은 없는 친구를 추억하며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는 한국 록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이 앨범이 완벽에 가깝고 그만큼 찬사를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저는 앨범이 나오고 나서 시간이 제법 흐른 후에야 절친한 친구를 통해 이 명반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교성도 늘고 성격이 제법 뻔뻔해지기도 했지만, 학창 시절의 저는 수줍음이 많고 감수성이 여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다닐 때도 친한 친구들이랑만 주로 어울려 다니고, 쉬는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조용히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을 회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맛없는 급식, 쓸데없이 넓은 운동장, 남고 특유의 군대식 문화, 반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이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추억만큼은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에게 언니네 이발관을 소개해 준 친구도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입니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 저는 우연히 옆자리에 배정된 짝이랑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유머감각이 있고, 박식한 친구였는데,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는지 역사, 철학,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흥미가 많고 상식도 넘쳐났습니다. 음악 취미도 매우 고상했는데, 제가 mp3에 대중가요랑 팝송을 넣어서 듣고 있을 때 그 친구는 음질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CD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여느 때나 다름없이 mp3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그 친구가 귀를 정화하라고 하면서 제 귀에 이어폰을 그대로 꽂아 넣은 다음에 오아시스의 앨범을 재생시켜 준 게 지금도 기억에 납니다. 덕분에 저는 '브릿팝'이란 단어를 알게 되었고, 한동안은 그 친구의 영향을 받아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트래비스, 콜드플레이와 같은 영국밴드 음악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저와 친구는 둘 다 역사를 무지하게 좋아해서 망설이지 않고 2학년 선택과목으로 세계사를 선택했고, 그 결과 2학년 때도 같은 반에 배정되었습니다. 1년 동안 자연스럽게 더 친해져서 고등학교 3학년 때 반이 갈라지기는 했지만 쉬는 시간에 수시로 보고 밥도 같이 먹기도 하면서 졸업할 때까지 계속 붙어 다녔던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친구는 저에게 합격 기념으로 김두식 교수님이 쓴  '헌법의 풍경'이라는 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책 앞에는 "인터넷에서 사서 제본 상태가 좀 그렇네... 이해하고 합격 축하한다. 훌륭한 법학도가 돼라"라는 메모가 꽂혀 있었습니다. 친구가 준 책과 메모는 지금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술 마시고 노느라고 훌륭한 법학도는 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친구한테 면목이라도 있으려면 그래도 남보기에 부끄럽지는 않은 법조인은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제가 상경하고 친구가 재수를 결정하게 되면서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진 시기도 있었지만, 이듬해에 친구 역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 자주 만나 소주 한잔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던 것 같습니다. 20대 초반 남자 대학생들끼리 서로 만나봤자 얼마나 영양가 있고 의미 있는 대화를 했겠냐만은 친구가 사회의 여러 분야에 해박했던 덕분에 나름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가 어떻고, 현대철학이 어떻고 같은 얘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친구도 애주가였던 탓에 둘이 만나면 다음날 머리가 지끈지끈 거리고 속이 안 좋을 만큼 소주를 마셨거든요.


이후, 친구가 군대를 다녀오는 사이에 저는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로스쿨에 진학하게 되었고, 제대를 한 직후 친구가 1년 동안 호주에 어학연수를 다녀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친구의 대학교 4학년과 저의 로스쿨 3학년 시기가 겹치게 되었습니다. 한 명은 취업준비, 한 명은 변호사시험 준비로 매우 바쁜 시기였지만,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친구는 본인의 중학교 동창을 저에게 소개해줬는데, 그 동창도 동향 출신에 다른 학교 로스쿨 3학년에 재학 중이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2013년 8월 어느 더운 여름날, 친구, 친구의 중학교 동창, 그리고 본인, 이렇게 세 사람이 야구를 직관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시험 준비 때문에 심정적으로 지쳐있는 저랑 중학교 동창을 보다 못해 친구가 야구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자고 하면서 삼성 라이온즈의 잠실원정 경기표를 예매해 놓았었거든요. 요즘 삼성 라이온즈 경기를 보면 혈압이 오르고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되지만, 당시의 삼성 라이온즈는 압도적으로 성적이 좋아 응원할 맛이 나는 팀이었습니다. 이날 경기 상대방은 두산 베어스였는데, 생각보다 플레이를 잘해서 삼성 라이온즈가 결국에는 패배했습니다. 경기는 패배했지만 이 날 경기는 지금도 매우 기억에 남는데, 이승엽 선수가 만루홈런을 치는걸 현장에서 직관했기 때문입니다. 원정석에서 친구들과 같이 자리에 일어나 열광적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이승엽 세 글자를 외치는데 왜 사람들이 훌리건이 되는지 조금은 이해를 할 것도 같았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 세 사람은 잠실새내에서 밤을 새워서 술을 마셨습니다. 야구경기에 져서 울적하고, 공부 스트레스도 심한 상태에서 세 사람이 만나 이것저것 할 얘기도 많다 보니, 한잔 두 잔 술이 들어가기 시작해 어느새 첫차가 다니는 시간까지 술을 마셨던 것 같습니다. 날이 밝아지고 첫차가 다니는 시간이 되었는데, 유독 친구가 집에 빨리 들어가기 싫어했습니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우니 잠실역까지만 걷자고 해서 세 사람이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친구는 서로 얼굴을 자주 봤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반복해서 했습니다. 요즘 이상하게 외롭고, 친구들이 계속 생각난다는 말에 덧붙여서요. 


야구를 직관하고 나서 몇 주간은 정신없이 지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학기가 개강했고 변호사시험 준비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해야 하는 시즌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열람실에 밤 11시까지 남아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개인 약속이나 일정을 잡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친구가 얼굴 보자고 연락이 와도 연락을 제때에 못 받거나, 주말에 하루 정도 시간을 내보겠다고 한 뒤에 결국에는 약속을 잡지 못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 친구의 중학교 동창 역시 저랑 같은 처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추석 연휴 직전에 시간이 나서 친구랑 건대입구 쪽에서 약속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친구는 저를 보자마자 비싼 몸이랑 이제야 술 한잔 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핀잔을 주었지만, 이내 여느 때나 다름없이 해맑은 표정으로 반겨주었습니다. 저녁식사로 고기를 먹은 후에 2차로 이자카야에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친구는 평소보다 소주를 더 빨리 마셨는데, 제가 속도를 조금 늦추자고 얘기를 해도 자기는 오늘은 많이 마시고 싶은 날이라고 하면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저도 이내 체념하고는 소주를 같이 쭉쭉 들이켜 마시게 되었습니다.


두 명이서 소주를 4병 정도 비웠을 때, 친구는 저에게 언니네 이발관 5집을 들어봤냐고 물어봤습니다. 제가 언니네 이발관은 아는데 5집 앨범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얘기하자, 친구는 아직도 그 명반을 안 들어봤냐고 하면서 본인이 다음에 만날 때 검사할 테니까 집에 가면 꼭 들어보라고 강권하였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웃으면서 그 앨범이 그렇게 좋냐고 되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앨범 제목과 첫 번째 트랙의 곡명이 '가장 보통의 존재'라고 얘기하면서, 혹시 살면서 문득 자기가 정말로 평범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질 때가 있었는지 저한테 물어보았습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지"라고 심플하게 대답하자, 그 친구는 "아니, 보다 진지하고 철학적인 의미로 말이야. 어릴 때는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고, 뭐든지 하면 다 될 것 같고, 주변 사람들은 다 내편이고 나를 응원해주고 그랬는데, 어른이 되어 보니까 나는 60억 인구를 구성하는 평범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걸, 사람들이 어쩌면 나를 그렇게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니까 괜히 울적해지고 그래.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노래의 가사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어."라고 얘기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친구는 언니네 이발관 5집 앨범의 전곡이 명곡이지만, 그중에서도 '아름다운 것', '인생은 금물', '산들산들'이 정말로 명곡이라고 추천해 주었습니다. 저는 휴대폰을 꺼내 곡들을 메모하려고 하다가, 그냥 5집 전체를 들어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휴대폰을 집어넣었습니다. 이후로 소주를 몇 잔 더 마시면서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27살이었던 당시에는 모두에게 그 시기만의 고민거리가 있었거든요. 서로 본인 하소연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술자리 막바지에 친구는 제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그냥 뭘 하든 네가 행복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고, 그냥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친구에게 고마우면서도 술기운에 괜히 머쓱하기도 해서 너도 늘 잘될 거다, 응원한다는 식으로 클래식한 덕담으로 화답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친구에게 따뜻한 말을 더 많이 해주지 못한 게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술자리를 파하고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친구는 어깨동무를 하면서 언니네 이발관 5집을 꼭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겠다고 하고 저는 친구를 택시에 먼저 태웠습니다. 친구는 아쉬운 표정을 하면서 추석 지나고 꼭 보자고 얘기했습니다. 손을 가볍게 흔들면서 친구가 탄 택시를 배웅했는데, 그게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추석 연휴가 끝난 주의 금요일이었습니다. 정해진 시간 동안 기록형 문제를 푸는 수업이어서 휴대전화를 무음 상태로 해놓고 있었는데, 끝나고 확인해 보니 수업 시간 중에 친구의 중학교 동창이 2차례나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인지 '친구 일 때문인데 문자를 확인하면 연락 한번 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도 함께 남겨져 있었습니다.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아서 로비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친구의 중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가 전화를 걸자마자 통화가 연결되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자, 그 친구는 한동안 뜸을 들이더니, "뭐라고 전달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발인이 내일이라고 하네. 장례식장은 대구이고..."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로비 앞에서 손에 들고 있던 교과서를 전부 떨어트릴 뻔했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실감이 나지도 않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조금 차리고 난 뒤에 전화를 준 친구랑 오후에 시간을 맞추어 같이 대구로 내려가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금요일 저녁이다 보니 KTX 표가 없어서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로 내려갔습니다. 저랑 친구의 중학교 동창, 그리고 시험 준비를 위해 서울에 상경해 있던 고등학교 친구, 이렇게 3명이서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는데 휴게소에 잠깐 내려서 쉴 때를 제외하곤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버스 안에서 가끔 친구들이 내는 깊은 한숨소리를 들으면서, 친구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모두 허탈하고 황당한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을 뿐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조용한 버스 안에서 저는 그때 처음으로 언니네 이발관 5집을 재생했습니다. 첫 번째 트랙은 친구의 말처럼 '가장 보통의 존재'였습니다.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내가 온 별에선 연락이 온 지 너무 오래되었지


아무도 찾지 않고 어떤 일도 생기지 않을 것 바라며


살아온 내가 어느 날 속삭였지 나도 모르게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 게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그대의 별에선 연락이 온 지 너무 오래되었지"



노래를 들으면서 처음 들었던 감상은 멜로디가 서정적이고 가사가 우울한 감성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트랙을 들으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친구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의 대화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신분으로 여기 보내져 


보통의 존재로 살아온 지도 이젠 오래되었지


그동안 길따라 다니며 만난 많은 사람들


다가와 내게 손 내밀어 주었지 나를 모른채


나에게 넌 허무한 별빛


너에게 난 잊혀진 길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게


이런 이런 큰일이다 나를 너에게 준게"   

   


노래 가사를 들으니, 친구가 왜 살면서 자기가 정말로 평범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질 때가 있었는지 물어봤는지 알 것만 같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범하니까요. 그리고 동경하는 것들은 마치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한없이 멀고 또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가 온 별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나는 지구에서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게 본인의 임무니까요. 보통의 존재로 사는 것이.


사실, 그 날 첫 트랙 '가장 보통의 존재' 이후 언니네 이발관 5집의 다른 곡들이 어떤 감상을 가져다주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대구에 내려가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고, 또 우울했기 때문에 '가장 보통의 존재' 이후로는 곡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던 탓이기도 합니다. 앨범의 모든 곡들을 제대로 감상하고 가사의 의미를 해석하면서 감탄하게 된 건 친구의 장례식을 다녀오고 나서도 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바람에 제법 늦은 시간에 장례식장에 도착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친구의 부모님은 저랑 친구의 중학교 동창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셨습니다.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마지막 가는 길에 절친한 친구들이 모두 와줘서 아들도 기뻐할 거라고. 친구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저도 괜히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친구 어머니 손을 꼭 잡아드리는 것 말고는 해 드릴 게 없다는 것이 더 서럽고 마음이 아팠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본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훌쩍 떠나가버린 친구가 야속하게 느껴지도 했고요. 영정사진을 보니 허탈하기도 하고 실감도 나지 않아 한동안 정신이 멍했습니다. 사진 속에서도 그 친구는 여전히 똘똘하고 장난기 어린 눈으로 조문을 온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밤늦은 시간까지 장례식장에 있다가 외갓집에서 쪽잠을 잔 후, 발인을 위해 새벽에 다시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서울에서도 친구의 대학 동기들이 많이 내려와 있었는데, 친구 부모님의 부탁으로 저도 친구의 대학 동기들과 함께 운구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시신을 운반하고 화장까지 치르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실감 났습니다. 젊은 사람의 장례식이 대체로 그렇듯 친구의 장례식 역시 매우 쓸쓸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다 보니, 장례식은 무겁고 조용하고 엄숙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보면 주인공이 젊은 나이에 목숨을 끊은 여자 친구의 장례식을 회상하면서 살면서 그토록 쓸쓸한 장례식은 처음 봤다고 언급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친구의 장례식이 바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친구를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낸 이후,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친구의 존재가 본인의 삶에서 점차 흐릿해질 듯하다가도, 문득 친구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있습니다.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실 때, 친구들을 만날 때, 삼성 라이온즈 야구경기를 볼 때, 괜히 힘들어서 하소연할 누군가를 찾게 될 때, 그리고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들을 때, 문득 지금은 세상에 없는 그 친구가 생각이 나서 무척이나 보고 싶어 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늘 감상에 젖게 되고, 또 친구가 떠나기 전에 따뜻한 말을 해주지 못했던, 더 자주 만날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스스로를 자책하게 됩니다. 정말 힘들어하고 외로워했을 그 친구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저려오듯이 아픕니다.  


친구와 관련하여 많은 추억을 함께 공유했던 친구의 중학교 동창은 현재 판사로 재직 중입니다. 가끔 만나 소주를 한잔 기울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금은 세상에 없는 친구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영원히 27살로 남아 있을 친구를 위해 건배를 하고 나면, 괜히 마음 한구석이 시려오기도 합니다. 아마 건배를 한 친구도 마찬가지겠죠. 


저는 언니네 이발관 5집 앨범이 친구가 남긴 유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앨범을 순서대로 듣다 보면 제각기 서로 다른 곡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는 한편, 가사를 통해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어느 순간 본인이 가장 평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상태에서 동경하는 대상 앞에서 느끼는 무력한 감정을 그리고 있고,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와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식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작은 마음', '의외의 사실', '알리바이', '100년 동안의 진심'은  상처 받은 내면, 무기력한 감정을 감성적인 맬로디로 전달하고 있고, '인생은 금물'은 다시 끊임없이 어떤 대상을 동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자조와 해학을 표현하고 있으며, '나는'은 앨범의 클라이맥스로서 결국 끊임없이 상처 받으면서 흘러가듯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에 대한 성찰을 묘사하고 있고, 마지막 곡인 '산들산들'은 그럼에도 꿋꿋하게 본인의 길을 걷듯이 삶을 살아봐야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면서 앨범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명반을 제 멋대로 개인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는 현대인이 통상적으로 느끼는 상실감, 체념, 절망감, 그럼에도 이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삶의 의지 내지는 이 모든 개념을 다 아우르는 숙명론을 서사적인 형태로 묘사하고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날 내가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내가 동경하던 것들은 저 멀리 다른 별에 있는 것처럼 손으로 잡을 수 없을 수 없고 너무 밝아서 나랑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서 혼자 상처 받고 체념하면서도 또 바보같이 잡을 수 없는 것을 동경하게 될 때, 언니네 이발관의 이 앨범은 사람의 감성을 더욱 흔들어 놓는 것 같습니다. 제가 노래를 듣고 느낀 이 감정을 친구는 아마도 진작부터 공유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곡 '산들산들'처럼 새로운 길, 새로운 별을 찾아서 우리는 끊임없이 걸을 수밖에 없는 거겠죠. 그게 바로 인생이니까요. 


오래전부터 지금은 세상에 없는 이 친구를 위해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면 꼭 언니네 이발관을 주제로 쓰고 싶었습니다. 5집 앨범에 대한 감상을 들려주지 못했기 때문에 괜히 마음에 걸리기도 했거든요. 친구와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저는 다시 언니네 이발관 5집을 들어보았습니다. 역시 명반은 명반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멋진 음악에 대해 수다를 잔뜩 떨고 싶은데,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줄 친구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건 정말로 슬픈 일이네요. 



"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었지


가장 보통의 존재 쓸모는 없지


나를 부르는 소리 들려오지 않았지"



친구가 옆에 있다면 이렇게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이 별에서는 보통의 존재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내 기억 속엔 분명하게 네가 남겨져 있다고. 그리고 돌아간 별에서는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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