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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선생 Feb 26. 2022

   <1인가구 특별동거법>

열네 잔의 캡슐 커피 같은 다양한 맛의 소설들 

                 열네 잔의 캡슐 커피 같은

                           <1인가구 특별동거법>을 읽고 


                                                         이 석 례


 1월 중순, 미국 캘리포니아로 90일 살기를 하러 딸네 집에 오면서 나는 이재은 작가의 소설집 <1인가구 특별동거법>을 가지고 왔다. 이 책은 2월 가향문학회 월례회 ‘이달의 공부’ 텍스트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책을 내가 추천했으니 책임감을 가지고 읽고 독후감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엽(葉)편소설, 손바닥만하다는 장(掌)편소설, 스마트소설, 플래시픽션 등으로 불리는 짧은 소설 14편이 실린 이 책은 휴대하기 좋았다. 여기 저기 쉬는 곳에서 느긋하게 즐긴 독서의 맛은 볕 좋은 바닷가 마을과 어울리지 않았다. 글 속은 암울하고 답답하고 슬펐으나 책이 놓인 화단 옆 벤치, 카페 야외식탁, 파도 소리 넘실대는 모래밭에는 항상 볕이 반짝이고 공기는 쾌청했다. 이 책은, 한 편 한 편이 짧은 분량으로 부담을 주지 않아 뚝딱뚝딱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각 작품이 내뿜는 의미와 분위기와 문체는 결코 가볍거나 만만하지 않았다.  

 한 문장, 한 문단, 한 작품마다 작가의 고뇌가 찐득하니 붙어있다. 짧은 분량은 형식일뿐 그 안에 품고 있는 내용, 비유와 상징적인 문장들, 열어놓은 이야기와 결말은 독자에게 많은 상상력과 그 여백을 채워나가는 묘미를 즐기게 한다. 그리고 소설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인생을 그려 나가야 하는 부담감, 그것도 한 순간적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해 묘사한 긴장감이 작품에 배어있다. 이런 작가로서의 고뇌가 주인공들의 이름, 제목 등에서까지도 느껴졌다. 결론적으로 작가도 작품도 지금, 여기, 우리들의 삶과 치열하게 맞장을 뜨고 있다.

 처음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참 기발하다. 정말 1인가구 특별동거법을 만들면 현실의 주택문제가 해결될까? 혼밥시대가 개선될 수 있겠다.’등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짧은 분량에, 인생과 현실에 대한 탐색을, 흥미로운 설정으로, 생동감 넘치는 서사로 어떻게 담아냈을까? 또한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고 주인공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살려 나갔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 편씩 꼭꼭 씹듯 읽었다. 나의 기우는 역시 기우였다. 내공이 옹골찬 작가의 저력이 빛나는 작품들은, 미국까지 가지고 온 내 수고가 헛되지 않게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미래를 ‘희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절망 안에 숨겨놓았을지도 모르지만 우둔한 독자 눈으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작가는 인물들과 거리 두기에 고심 하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생활에 근거해서 소설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에세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수필과는 성격이 분명 다른 소설이고 함축적인 문장과 함의를 품고 있는 내용들이 시 같은 소설이 되어 참 좋았다. 

 주인공인 너, 당신, 여자 등은 모두 작가 자신이다. ‘무명의 일’에서는 ‘너는 나의 주인공’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나는 서술자이지만 작가이기도 하다. 이팔청춘도 철부지도 아닌,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전업작가로서 오늘 이 세태를 살아내야 하는 고뇌가 절절하다. ‘한숨으로 실존의 무게를 재지 않는다.’지만 술에 취할 수밖에 없고 지루한 잰말놀이는 독자에게도 지루하다. ‘술 권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무명작가는 그래도 치열하게 살아낸다. 살다보면 살아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무들’에서는 천 원짜리 지폐에 ‘미안하다’란 유언을 남긴, 소위 ‘헬조선(hell朝鮮)이라 말하는 이 시대의 절망의 늪에 몸을 던진 청년 소준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여은’. ‘나비 날다’에서는 J작가로 현재 마흔다섯 살이고 결혼을 하지 않아 예순다섯 살쯤에는 로봇캣 까뮈와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인물이다. 여은, J도 현실의 이 작가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인터뷰한 내용으로, 신문기사로, 인천의 전통놀이 등을 활용하여 멋지게 소설을 창작해 내는 솜씨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거리가 없다’는 말은 게으르다는 말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14편이 개별적인 작품이지만 이 작품집 전체는 이런 저런 인생경험을 하며 흘러가는 장편의 모습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수식어가 넘쳐나는 도시다. 그 중 ‘서울은 활기차고 세련된 문화중심지’ 살아보고 싶은 곳임은 분명하다. 주인공이 그 꿈을 위해, 취향을 포기하고 100원 더 싼 음료를 찾고 역설적으로 가난이 매일을 버티게 한 십년 걸려 모은 삼천만 원으로 얻은 방은 지하감옥, 방공호 같았다. 그러나 75점짜리 이력서로는 매번 퇴짜뿐이다.

 결국 서울은 꿈의 도시일 뿐 호락호락하게 일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뺑소니에 치인 고라니의 절뚝이는 다리’같은 L시로 돌아갔다. 이 직유는 L시를 그리고 주인공의 현실과 심정까지도 비유하고 있다. 12층 고시원에서 한 마리 벌레로 변신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지금 우리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그레고르 잠자다. ‘변신’의 꿈이 이루어졌다는 마지막 문장은 아주 시니컬하게 일침을 가한다. ‘서울은 처음이지?’라고 묻는 모든 이들에게. 엽편소설이 지니는, 기지에 찬 효과 유발이라고 할 수 있는 미덕의 작품이다.

 한 문장이 한 문단을 이루며 끝을 맺는 ‘무명의 일’의 ‘제발 혼자 있지 않게 해 줘. ’, ‘서울은 처음이지?’의 ‘변신의 꿈이 이루어졌다.’는 그 한 문장이 짊어지고 있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등량감으로 작품 전체의 주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코로나19로, ‘코로나, 봄, 일시정지’에서처럼 커밍아웃의 인물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가족, 친구들과 일시정지다. 이런 세태를 코묻은 말, 잰말로 놀이나 하면서 견뎌내는 것이 바로 생명을 지키는 일임을 두이와 포가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작품은 시대상황 기록물로서도 가치가 있다. 짧은 분량의 소설 한 편을 읽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공기받기’는 위킹맘의 애환을 잘 보여준다. 그것도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나 다름없는 이런저런 일을 하다 겨우 마트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여자 이야기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공기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내야 하는 것처럼 아이도 챙기면서 키우고 살아내는 일이 쉽지 않다. 1초의 착오도 없어야 공기를 받을 수 있다. 미스터리 쇼퍼에게 찍히지도 않으면서 ‘친절 7대 용어’를 지키는 일이란 쉽지 않다. ‘온라인수업’을 읽고 나도 그 수업을 수강하고 싶어, 인터넷에 있는 작가의 ‘마음만만 연구소’를 찾아봤다. 소설을 읽으면서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다 또 커피 한 잔을 내렸다. 

 커피를 마시며 머리를 흔들어 봐도 왜 자꾸 주인공들이 작가와 겹쳐지는지 모르겠다. 20년 후에도 독신자들에게 한 결 같이 사랑 받는 <1인가구 특별동거법>이 인천 배다리헌책방거리에 있는 책방 ‘나비 날다’에서 나비(까뮈)와 함께 인기몰이를 하며 날 것이기 때문일까? 한 캡슐 한 캡슐 커피를 내려 마시 듯 그리고 그 커피에 우유,  설탕, 코코넛 오일, 강황가루, 생강가루, 계피가루 등을 넣어 마시면 다양한 커피 맛을 즐길 수 있다. 이런 ‘다양한 맛을 이재은 작가의 소설집 한 권에서 맛보았다’는 것이 한 줄로 끝맺는 감상이다.     

캘리포니아 몬테레이 바닷가 벤치에서 



캘리포니아 퍼시픽 그로브 러버스 포인트 


캘리포니아 퍼시픽 그로브 러버스 포인트 


캘리포니아 퍼시픽 그로브 러버스 포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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