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인 <가향> 2023년 4월 회지
성당 가기
이석례
올 초, 어느 날 어기적어기적 집 근처에 있는 성당에 갔다. 평일 오후 성당은 묵상 중인 듯 조용했다. 절도 교회도 사람들 없이 고즈넉하면서 적막한 이런 분위기가 참 좋다. 묵직한 문을 반신반의로 밀쳐보니 열렸다. 안에서 사무실 직원을 만났고 약간의 불안과 불확실한 마음으로 안내에 따라 교리공부를 하겠다는 서류 한 장을 얼떨결에 작성했다. 그리고 ‘그래 더 늦기 전에 약속을 지키자.’라고 마음먹었다. 그 주부터 일요일마다 9시에 성당 지하 학습실에서 초보자 교리반에 참석해 공부를 하게 됐다.
몇 개월 코스의 공부 외에 성경 필사, 기도문 외우기, SNS로 보내주는 동영상 보기 등 할 일이 많았다. 늦게 일어나는 날에는 차를 끌고 허겁지겁 달려가 맨 뒤에 앉아 눈 감고 반은 졸지만 그래도 한 번 결석하지 않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출석카드에 도장을 받아가며 이런저런 간섭을 받을 때는 짜증이 올라오기도 했다. 예수님은 안 그랬을 것 같은데 지금 사람들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는 것 같아 반항기가 기어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 왔으니 잘 해보자고 마음을 다독였다.
시간이 갈수록 배우는 것도 많았고 공부 마치고 예비신자로 참석하는 예배도 좋아졌다. 그런데 세례를 받기 위해 대모가 필요하고 가족관계 상세증명서와 결혼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단다. 의문이 생기고 마땅찮았지만 가톨릭의 법이 그렇다니 피해 갈 수 없었다. 신앙에서 제일의 덕목은 아마도 무조건적인 믿음과 순종이 아닐까. 그런데 마음 한편에 불협화음을 느끼면서 왜 이럴까? 회의가 생기기도 했다.
어느 날 우리 동네 지역장과 반장이 사전에 예고도 없이 방문을 왔다고 전화가 왔다. 순간 당황했다. 나는 그들의 얼굴도 모르는데 내가 적어낸 주소를 보고? 난감했다. 사람이 사람집에 온다지만......, 마침 내가 호숫가로 걸으러 나가는 길이라 안 된다고 했다. ‘자매님’으로 서로 신앙심과 정을 나누는 좋은 일이라는데 나는 왜 거부감을 느끼고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걸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이는 내가 갖고 있는 병 같기도 하다. 누가 우리 집에 온다거나 내가 남의 집에 가는 일이 편하지 않다. 그날 산책은 연초록빛으로 올라오는 새순과 흩날리는 벚꽃 속에 번잡한 생각이 이어졌다.
후회가 됐지만 그만두면 언젠가 더 크게 후회할 것 같았다. 걸을 수 있을 때, 교리공부를 이해 할 수 있을 때 하자고 마음을 달랬다. 이 숙제는 누가 부여한 것은 아니다. 페루에서 살 때 우앙까요 성당에서, 또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성당에서 혼자 약속을 했다. 피 흘리고 계신 예수님 성화를 붙잡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저를 지켜주세요, 한국에 가면 꼭 성당에 가겠습니다.’ 또 ‘실비아’란 내가 선택한, 페루에서의 내 이름이 성녀의 이름인 줄도 모르고 사용했다.
자주 성당에 들어가 쉬고 미사에 참여하고 어려울 때면 ‘하느님, 하느님’ 소리 없이 외쳤다. 더 황당한 일은 트루히요에서 한국인 신부님을 만났을 때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다가 그 신부님 초대로 바닷가에 있던 신부님 성당에 놀러가기도 했다. 그 때 신부님이 하신 말씀은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마음을 치료하는 약이 됐다. 사실 이런 일이야 살다보면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일 수도 있다.
하느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자 했던 제일 큰 원인은 내 마음이 불안하고 정신이 취약해졌으며 죽음을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50여 년을 뜨내기로라도 절에 가고 부처님 십대성지순례단에 참가해 인도여행도 해봤다. 그리고 불경을 외우고 절에 가 묵언수행도 했다. 그런데 불심이 단단하지 못했던 것인지 반성을 해보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 ‘이렇게 살면 이렇게 될 것이다.’ 라는 믿음이 깨졌다. 정말 인생은 알 수 없고 내가 너무 오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하게 신과 종교와 믿음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성당 가기’란 숙제가 현재 나의 심리상태와 맞닿았다. 어떤 숙제라도 쉽지 않고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것이리라. 어제는 서울에 있는 절두산과 새남터성지 순례를 교육생들 틈에 끼여 다녀왔다. 왜? 보다는 그냥 모든 게 기적! 이를 마음에 두고 천천히 다가가 보려고 한다. 2023.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