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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헤일리 Jan 07. 2024

호주 생활 일주일만에 찾아온 위기

숙소 사기당하다

도착한지 얼마 안 된 우리는 집을 구하지 못했기에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며 살 수밖엔 없었다.

우리는 처음 일주일가량 지냈던 시티역 쪽 '빅 호스텔'게스트하우스에서 외곽이지만 하루에 (한국돈으로)

3만 5천원인, 빅호스텔보다 만원이 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로 옮겼다.


15kg 의 캐리어와 7kg의 배낭을 메고선 지하철로 15분 정도에 떨어진 숙소로 향했다.그 숙소는 하필이면 지하철역에서 거리가 꽤 있어서 우린 도착한 후에도 10분가량을 더 걸었어야 했다. 그렇게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을 무렵, 작은 게스트하우스 문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왔구나. 안도감이 들었고 안으로 들어갔다. 키가 190정도로 돼 보이는 젊은 흑인 남자직원이 프런트에서 우릴 반겨주었다. 내 이름으로 예약했다고 말하고 기다리는데 직원의 표정이 안 좋았다. 예약이 안 돼있다는 말이었다. 난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아고다로 예약했고 결제까지 완료했는데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거지? 난 당장 어플을 켜서 '예약 완료'이라 쓰여있는 창을 보여주었다. 직원은 휴대폰 화면을 본 뒤 다시 컴퓨터에 내 이름을 검색했지만 그래도 예약기록이 없다고 했다. 아마 어플의 문제일 거라고 했다. 나는 당혹스러웠기에 환불해 달라고 했지만 직원은 어플 회사에 전화해서 환불을 받으라고 했다. 그건 둘째치고 오늘 당장 머물 곳이 없었기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때 직원이 말했다.


"너네가 원하던 4인실은 없지만 6인실은 있는데 거기로 할래?"

"거긴 얼마인데?"

"가격은 4인실이랑 똑같아"

"..그래 거기라도 줘"


6인실은 최대한 기피하고 싶었지만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었다.심지어 4인실보다 저렴하지도 않잖아.. 울상이 된 채로 결제를 완료한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갔다. 우리가 머물층은 4층이었는데 그곳은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우린 도합 20kg가 넘는 짐을 들고선 위로 올라가야했다.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눈 앞이 깜깜해지고 숨이 잘 안 쉬어질 때쯤 우리가 새로 예약한 방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이 힘든 하루가 끝나나 싶었지만.. 문을 열자 보이는 건 아주 좁은 방에 2층침대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흡사 닭장같은 몰골의 방이었다. 방안은 환기가 안된건지 화장실 냄새가 가득했으며 심지어는 파리마저 날라다녔다. 우리가 머물 자리라며 보여준 침대는 곰팡이가 슬어있었고 룸메이트들은 전부 장기 투숙생인 듯 많은 짐들이 방안을 너저분하게 메꾸고 있었다. 친구는 충격적인 광경에 말문을 잃었고 나는 이런 방을 4인실과 똑같은 가격에 결제했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자, 수건은 여기 있어. 그럼 난 갈게"


내 굳은 표정을 본건지 직원이 급하게 말을 꺼내고는 도망치듯 아래층으로 사라졌다. 그때 방안에 있던 한명의 여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코찌를 한 ,, 락스타 같은 느낌의 차가운 인상을 가진 여자였다.


"안녕? 여행 온거야?"

"..응, 비슷해"


평소라면 외국인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서 이것저것 물어봤을 텐데 더 이상 스몰토크를 나눌 기분이 아니었다. 난 친구에게 물어봤다.


"여기서 잘 수 있겠어?"

"아니"

"나도. 환불해 달라고 하자"


그렇게 짐을 그대로 다시 들고선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Give me a refund"(환불해줘)

"Why?"

"방이 너무 작고 더러워, 우린 저기서 하루도 못 자겠어"

"그 방 넓고 좋은데 왜 그래?"

넓고 좋긴 개뿔이 좋다. 직원의 어리둥절 한 표정에 화만 더 났다. 난 표정을 더욱 굳히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안 좋아. 환불해줘."


하지만 직원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NO REFUND"

"what???why??" (뭐?왜??)


직원은 아까완 달리 아주 빠른 속도로 랩 하듯이 우리에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일부러 그런거 같다 ㅡㅡ)

속도가 빨라지니까 영어를 더더욱 못 알아들었다. 그래도 몇 개의 단어를 조합해 보면 취소가 안 되는 방이다? 그런 말이었다. 그럼 그 얘길 우리가 결제하기 전에 말을 해줬어야지 그걸 결제 후에 말하면 어쩌자는 거야?? 난 너무 화가 나서 따지고 싶었으나 영어로 내 의견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말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때 남자가 말했다.


"나는 여기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아니니까 주인과 얘기해"

"주인이 어딨 는데?"

"오늘은 없어. 내일 다시 와"

"알았어"


그래. 사장과 얘기하면 환불되겠지. 우리는 무거운 짐을 하루종일 들고 나르느라 이미 지친 상태였고 더 이상 말싸움 할 기력조차 남지 않았기에 순순히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은 근처의 나름 비싼 (하루에 5만 원 좀 넘는) 숙소를 잡았다. 우리만 사용할 수 있는 방이 이렇게나 소중한 거였다니! 침대에 누워있자니 아까 전 바보같이 따지지도 못하고 직원 앞에서 어버버 댔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영어를 못하니까 이렇게 불합리한 상황에서 서러워지는구나.라는 걸 느끼고 내가 모국이 아닌 타지에 나와있다는 게 더더욱 실감이 났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친구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서러웠고 분했다. 저녁밥도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멘붕상태였다. 그래도 내일 사장을 만나면 환불할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을 품고선 잠에 들었다.



그렇게 다음날.

우린 다시 한번 그 게스트 하우스에 갔다.

확실히 카운터엔 흑인 직원이 아닌 60대로 보이는 호주 남자가 있었다. 저 사람이 직원이 말한 사장이구나. 우린 사장에게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사장은 우리말을 듣는 둥 안 듣는 둥 한 태도를 취했다. 우리의 영어를 못 알아들었다고 해도 태도자체가 말을 들어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대충 너네가 뭐라고 하든 말든 안 들어~ 이런 느낌이었다. 사장은 우리의 말이 다 끝나자 직원을 호출했다. 그리고선 다시 상황을 물어봤다. 그러자 직원이 엄청나게 긴말을 빠른 말로 사장에게 말했고 사장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앞에서 화가 난 얼굴을 하든 말든 사장은 우리를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기분이 나빴다. 나는 말했다.


"그래서 환불 안 해주나요?"

"sorry. no refund"


들려온 대답은 거절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방 넓고 좋은데 왜 그러는 거야?"


소름 돋게도 어제 직원이 한 말과 똑같았다! 그리고 그 말이 마치 너네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야.처럼 들렸다. 나는 다시 한번 환불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남자는 계속 웃는 얼굴로 안된다고만 반복했다. 그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안 되는 영어가 입 밖으로 더 안 나왔다. 더듬대며 열을 내는 내 모습을 보며 남자는 직원과 함께 낄낄대며 웃었다. 비참했다. 당장이라도 그 자리를 도망치고 싶었으나 꾹 참고선 또박또박 따졌다. 우리가 30분 정도 거기에 서있었나, 순간 카운터 쪽으로 물건하나가 던져졌다. 뭐지?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한 백인 남성이 화가 난 얼굴로 게스트하우스 문밖 거리에서 카운터의 주인에게 손가락 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선 "FUCK YOU!!" 와 "Give me my money"(내 돈 내놔) 를 연달아 외쳤다.그리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He's  a cheater. Don't trust him! (저 사람은 사기꾼이고 그를 믿지마!)"


대충 남자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니 우리와 상황이 비슷했다. 그걸 보고 깨달았다. 아. 이 숙소 이런 게 한두 번이 아니구나. 생각하니 뭔가 맞아떨어졌다. 숙소 측에서 어플 숙소 예약을 일부러 취소한 거라면? 그리고 안 좋은 방을 손님들이 예약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손님이 방이 맘에 안 들어서 환불을 요구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거라면? 깨달으니 이 숙소의 평점이 왜 안 좋았는지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십 분이 넘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을 했고 사장은 남자와 우리를 번갈아보다 약간은 피곤한 얼굴로 우리에게 알았으니 가라고 했다. 내가 환불해 주는 거냐고 묻자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너네 은행 계좌를 종이에 적으라고 했다. 우린 사장이 건네는 종이에 계좌를 적고선 그 끔찍한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왔다. 이젠 다신 볼일 없길 바라며!



다음날.

우리는 집을 구하기 위해 다시 다른 외곽의 게스트하우스로 옮겼다. 집 근처 광장에 앉아 아침으로 피자를 먹으며 통장을 확인했다. 그런데..

젠장할. 돈은 입금되지 않았다. 나는 다시금 분노를 느끼며 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걸었다.


"Hello"


사장이 아닌 직원의 목소리였다.


"어제 코리안 여자 2명인데 네가 환불해준다고 한 돈이 아직 안 들어왔어, 입금한 거 맞아?"


그 순간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가 뚝- 하고 끊겼다.

누가 봐도 일부러 끊은 듯한 태도였다. 다시 전화를 걸자 이번엔 아예 걸리지도 않았다. 그곳에서 내 번호를 차단한 거다. 이쯤 되니 화도 안 나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이번엔 난 친구의 전화기로 전화를 걸었다.


"HELLO"


그러자 이번엔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전화를 끊기 무섭게 준비한 말을 내뱉었다.


"당신이 어제 약속했잖아. 왜 환불을 안 해주냐. 너는 사기꾼이다. 내 돈 내놔!!!"


더 이상은 말이 곱게 나가지않았다. 전화는 약속이나 한것 처럼 다시 뚝- 하고 끊겼다. 끊겨버린 전화기를 붙잡고 잠시 멍하니 있었다. 애초에 사장은 우리에게 환불해 줄 생각이 없었다. 속아 넘어간 우리가 순진했던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받아올걸.. 사장을 믿은 내가 바보였다. 다시 게스트하우스에 찾아가서 이번엔 난동을 부릴까? 어제 그 남자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내던지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했으나 머릿속이 한순간에 차분해졌다. 무엇보다 그렇게까지 할 에너지가 우리에겐 없는 상태였고 만약 그렇게 까지 했는데도 환불을 못 받으면 정말 멘탈이 무너질 것 같았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과정에서 성급했던 내 잘못도 분명히 있었기에(계산 전에 방을 먼저 볼걸, 가격이 싸도 평점이 낮은 곳은 애초에 예약을 하지말걸.사장을 믿지말걸 ^^ 등등) 숙소 환불 사건은 인생교육비를 치뤘다고 친구와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비록 호주생활 일주일 만에 소중한 10만원이 하늘로 공중분해되고 스트레스를 얻었지만 돌이켜생각해보면 이 날 이후로 사기당하거나 분노했던 일은 없었다.

역시 액땜이었나보다.




도망치고싶던 그 날

(way out:나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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