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도망치기
고등학교 시절 부터 친구와 나는 농담 반 진담 반 이런 말을 나누곤 했다.
"야 우리 대학 졸업하고 할 거 없으면 워홀이나 가자~"
"좋아 좋아!"
하지만 현실은 차가웠고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워홀은 무슨, 해외여행 한번 못가보고 취업하느라 바빴다. 다만 둘다 병원에서 일하는 직종에 다니다 보니 공감대가 맞아서 퇴근하고 자주 만나 맥주한잔씩 기울이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하는 말은 똑같았다.
"일하기 싫다..그만 두고싶어"
"..진짜 워홀이나 갈래?"
"그럴래?"
고등학생때와 달리 우리는 말만 하는 것에서 그치지않고 바로 호주 비행기를 알아봤다. 둘다 매너리즘에 빠진 시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준비를 하면서 의심이 들긴했다. 우리가 과연 잘 살 수있을까? 스피킹이 완벽하지도 않은 여자 두명이 무작정 외국에 가서 일을 구해 생활해야한다니.. 솔직히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막막하고 두려웠다. 난 겁쟁이고 무슨 문제가 닥쳐오면 그 상황을 정면돌파하는 타입보단 도망쳐버리는 타입이기에 외국에 나가서도 그럴까봐 걱정스러웠다. 최소한의 보호막 마저 없는 낯선땅에서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버틸 수있을까?
그래서 외국에 나가면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자신감도 키워서 내가 진정하고싶은 일을 향해 달려갈수 있지 않을까싶어서 워홀에 가겠다 마음먹었다. 하지만 자꾸만 내 안의 나약함이 나를 무너뜨리려 했다. 한번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되니 자꾸만 생각이 나쁜 쪽으로만 흘러갔다. 난 못할거야. 가서 고생만할걸? 영어가 안되서 일도 못구하고 어영부영대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거야. 이상한 사람 만나서 사기를 당할수도있어. 그 시간에 자격증 공부를 해야하는게 아닐까? 실패했다는 사람들의 워홀 후기만을 찾아보고, 과연 나는 저 사람과 크게 다를까? 나도 결국 저렇게 되지않을까? 굳이 해보지않아도 괜찮은 경험아닐까? 내 미래를 미리 판단해버렸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워홀이라는 도전을 해볼 기회가 없다는걸 뼈저리게 느껴서 쉽사리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같이가기로 한 친구도 있겠다, 부모님도 지지해주겠다, 나이도 어리겠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 안가서 평생 후회할바에 간 뒤에 후회하는게 훨씬 나을테니까.. 란 생각이 날 지지해줬다.
그 시기 쯤 난 ''타이탄의도구들''이란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 그런 구절이 나온다.
떠올릴때마다 약간 두렵고 긴장되고 떨리는 일, 그게 바로 당신이 원하는 것이다. '와 잘하면 완전히 인생을 망칠수도 있겠는걸! '
하는 일이 바로 당신이 찾아 헤매던 모험이다
저 문장을 보자마자 난 워킹홀리데이를 떠올렸다. 안전하게만 살던 내 인생에 어쩌면 도박과 같은 모험을 해보는거다. 그 과정이 내가 상상하던 것처럼 완벽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을거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최악의 상황또한 100프로 일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세상에 옳은 선택은 없다.그렇다고 틀린 선택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선택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판단 할수없다. 선택에 따른 결과는 전부 미래이며 그 미래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성공할수도,실패할수도 있다. 그 결과는 미래의 나의 행동, 운, 상황 등에 따라서 언제든지 바뀔수있기에 동일한 선택을 하더라도 결과는 다르다.
이렇게 멋있는 말이란 말은 다 적어놨지만 사실 혼자였다면 애초에 마음을 먹지도 못했을것이다.앞에 말했듯이 난 겁쟁이다. 혼자가 아니라서 용기를 낼 수있었다. 같이 가주기로 결심한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훗날 우리가 할머니가 되어도 워홀에 갔다온 기억은 두고두고 회자되겠지. 그거면 충분하다. 젊었을때 해본 미친짓은 평생을 살아갈 재밌는 추억으로 남을테니. 앞으로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느라 밤을 새지않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난 호주에 가기 세 달 전부터 하나 씩 현재 내 위치에서 할수있는 최선의 것들 (영어공부,마인드 컨트롤,정보수집 등) 을 해나갔다.
불현듯 두려움이 찾아와 날 삼켜버리려 할지라도 단단하게 맞서서 물리칠수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