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공연에서 인상 깊은 단어와 이미지가 머릿속을가시질 않는다.
<공동창작> 뒤에 숨겨져 있는 <공동착취>혹은
<공감착취>
<공동창작>이라는 말 속에는 종종 그럴듯한 이상과 평등의 언어가 숨겨져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결정권은 일부가 독점하고, 책임은 다수에게 분산되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창작자의 감정, 기억, 경험 즉 개인의 역사는 단지 창작의 재료로만 소진되고, 완주하지 못한 채 작업은 종결되는것을 목격하곤 한다. 때때로 우리는 공감과 탈권위를 호소하는 작업자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 볼수 있다. 평등함을 좇는 세련되어 보이는 공동창작으로 포장된, 직면 치 못한 개인으로 결핍에서 비롯된 작업의 시작이 아니었나?
그리고, 창작의 윤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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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구조는 위계적이었다. 작가가 희곡을 쓰고, 연출가가 그 희곡을 해석하고, 배우는 그 해석에 따라 연기했다. 모든 창작의 중심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었고, 대다수의 배우나 참여자들은 수동적인 실행자에 머물렀다. 하지만 1960~70년대를 거치며, 이런 고정된 구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위계와 권위에 대한 저항이 커졌고, 예술 역시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페미니즘, 시민운동, 탈식민주의 담론의 확산은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누가 주체가 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예술 안으로 가져왔다. 연극에서도 “희곡이 없으면 연극이 불가능한가?”, “연출가가 아닌 배우가 장면을 만들 수는 없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며, 공동창작이라는 흐름이 생겨났다. 이 방식은 연출가 한 명이 지시를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배우, 작가, 스태프 모두가 수평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실험하며 장면을 만들어가는 구조였다. 이 과정에서 텍스트는 더 이상 출발점이 아닌, 생성의 결과물 혹은 참고자료가 되기도 했다. 공동창작의 확산과 더불어, 연극의 형식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도 등장했다. 그것이 바로 포스트드라마 연극이다. 기존의 연극이 줄거리와 인물 중심의 기승전결 구조에 기반했다면, 포스트드라마 연극은 서사보다 감각, 이미지, 공간의 구성을 중시했다. 대사가 없는 장면, 이야기 대신 상황을 나열하는 형식,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이는 연출 방식 등이 등장했고, 이는 단순히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현실의 복잡성과 단절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동시대적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공동창작과 포스트드라마 연극은 예술의 민주성과 현실성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누가 창작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현실을 재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쌓인 결과였다. 단일한 메시지와 중심 인물이 주도하는 연극 대신,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고, 다양한 감각과 관점이 공존하는 작업이 필요해졌던 것이다.이러한 방식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단순히 형식을 바꾼 것이 아니라, 예술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며, 그 과정이 ‘누구를 위해 열려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