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특유의 덥고 습한 날씨에 걷다보니 어깨가 늘어지고 말도 없어진다. 배에 타면 햇볕에 살은 붉게 달아오르고 목 근처가 끈적거린다. 물론 말도 없다. 배는 고픈지 안 고픈지도 모르겠고, 물은 마시고 싶은데 마시기 싫다. 그게 태국날씨다. 씻고싶다. 씻고싶다. 씻고싶는 생각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끈적임과 습함에 몸을 맡기게 되는데, 그럼 기분이 좋아진다. 길가에 걷다 나무그늘에 앉으면 그렇게 시원하다. 더운데 안 덥다.
까오산 로드 가야되는데 어떻게 가냐고 물었더니, 정류장에 있던 아저씨 두 명이 이러쿵저러쿵했다. 그중 한 분은 손에 숫자 며 개를 볼펜으로 쓰더니, 아무거나 타라고 했다. 그러다 버스에 타고나서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다. 버스기사는 정류장에 서서 한참을 출발하지도 않고, 뒷자석에 앉아있는 누군가의 핸드폰과 시름하고 있었다. 예사일이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웃으면서 대화를 나눴고, 버스기사가 출발하지 않고 핸드폰과 시름하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나는 이런 예사로운 것들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들의 주름살과 웃음에서 벗어나 있었고, 그들의 무관심에서 또 비껴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리 웃으며 말을 걸어도 이방인이다. 태국날씨가 주는 찝찝함과 끈적거림이라는 불쾌함의 끝에서 우연인지 필연인지 기분이 좋아졌지만, 버스에 탄 그들에게, 나를 스쳐간 태국인들에게 습함과 끈적거림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버스가 출발하지 않는 그런 자연스러움이다.
여행자가 되기 위해 내가 가져온 친숙한 것들을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할까.
내일은 무엇을 내려놓아야 그들의 문을 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