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일까, 숲을 그린 걸까.
“기하학. 너는 기하학이라는 단어에서 풍겨오는 역겨움에 무릎 꿇어 토사물을 쏟아내지만, 누군가는 그 말을 다시 찾아와야만 한다."
- 이상우 프리즘 중에서-
작가
이상
들어가면서
이상이 ‘지도(地圖)의 암실’에 갈겨놓은 모든 좌표는 지도 밖으로 놓이고 싶은 이상을 가리킨다. 될까? 이상, 이상, 이상, 이상이라고 아무리 부르짖다가 이상, 이이이이사앙, 이쌍, 이썅, 이쌰아앙으로 수천 번을 소리 지르고 토한다면 어떤 이상이 드러날까? 스포트라이트에 비껴서 어둠 속 눈을 뜨고 있는 이상일까? 무대에서 가련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이상일까?
내던져진 이상.
‘지도(地圖)의 암실’을 읽다보면 섬세하다 못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감각과 사고(思考)로 무장한 채로 시름하는 이상의 형체가 희미함 속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상은 세계에 포석처럼 깔린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방탄유리에 박힌 총알처럼, 이미 이 세계라는 그물망에 결박되어 있다. 아니, 그가 그물망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할 지도 모른다.
시간이라는 그물망
글자를 제 것처럼 가지고 그 하나만이 이랬다저랬다 하면 또 생각하는 것은 사람 하나 생각 둘 말 글자 셋, 넷, 다섯, 또 다섯, 또또 다섯, 또또또 다섯, 그는 결국에 시간이라는 것의 무서운 힘을 믿지 아니할 수는 없다 ···(중략)··· 지금 생각나는 것이나 지금 가지는 글자가 이따가 가질 것 하나 하나 하나 하나에서 모두씩 못쓸 것인 줄 알았는데 왜 지금 가지느냐.(지도의 암실, 9 page)
캘린더의 붉은빛이 내어배었다고 그렇게 캘린더를 만든 사람이나 떼이고 간 사람이나가 마련하여 놓은 것을 그는 위반할 수가 없다.(같은 책, 10 page)
이상은 시간에 중압감을 느낀다. 일 초, 이 초, 삼 초 흘러가는 시간 속에 놓여있지 않은 것은 없다. 또또 다섯, 또또또 다섯이라는 말에서 보이듯 시간에서 벗어나려는 이상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또또 다섯과 또또또 다섯이 또가 하나 늘어서 다른 게 아니라, 그 모양이 다르다. 모양이 달라지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생각 없이는 불가능 하다. 말장난으로 피해가기엔 너무 무거운 시간성이다. 시간은 결코 하나를 둘 이게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은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지금이 아닌 게 되는 것처럼, 하나에 하나를 쌓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이상은 푸념한다. 지켜봐야 쓸데없는 짓이 아니냐고.
언어라는 그물망
왜 잠이 아니 오느냐. 자나 안 자나 마찬가지인 바에야 안 자도 좋지만 안 자도 좋지만 그래도 자는 것이 나았다고 하여도 생각하는 것이 있으니 있다면 그는 왜 이런 앵무새의 외국어를 듣느냐 원숭이를 가게 하느냐 낙타를 오라고 하느냐 받으면 내어버려야 할 것들을 받아 가지느라고 머리를 괴롭혀서는 안 되겠다.(같은 책, 16 page)
이상은 언어를 괴로워한다. ‘자나 안 자나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자는 것이 나았다고 하여 또 말을 해버렸다. 이상은 ‘잔다’라는 말이 잘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아무리 ‘잔다’고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원숭이를 가게하고 낙타를 오라고 하는 것과 잠을 잔다는 것이 구별되야 할까? 어차피 그 어떤 말로도 잠자고 있는 사람에는 닿지 못 할 텐데 말이다. 언어가 지칭하는 대상과 언어의 간극에서 느껴지는 답답함. 그 어떤 소리의 유려함으로도 실체(실체라는 것이 있다면)에 닿을 수 없다는 음울함과 허망함이 이상의 조소로 드러난다.
탈출 혹은 탈출 가능성
그는 그의 몸뚱이의 향방에 대하여 아무러한 설계도 하여 놓지는 아니한 행동을 직접 행동과 행동이 가지는 결정되어 있는 운명에 내어맡겨 버리고 말았다. 그는 너무나 돌연적인 탓에 그에게서 빠아져 벗어져서 엎질러졌다. 그는 이것은 이 결과는 그가 받아서는 내어 던지는 그의 하는 일의 무의미에서도 제외되는 것으로 사사오입 이하에 쓸어 내었다.(같은 책, 23)
이상은 탈출을 시도한다. 너무 돌연적인 탓에 그에게서 빠아져 벗어져서 엎질러졌다. 스스로를 잃었다. 절망적이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한 부분이 나오는데, ‘무의미’에서도 제외 되었다고 쓰는 부분이다. 그런데, 사사오입 이하로 쓸어 내었다고 한다. 스스로를 잃었는데 혹시 무의미나 의미 속으로 빨려들어 갈까봐서 얼른 사사오입 이하로 허둥지둥 탈출한다.
이상은 탈출했을까? 앙뿌을르에 봉투를 다시 씌우고 편안하기 위해 잠이 드는 그는 대체 무슨 마음일까? 이상은 글에 지독한 물음표를 붙여 놓았다.
'가능할까?'
"이상의 세계는 무한히 변주 가능하다. 어쩌면, 이 사실은 그가 지독한 이고이스트로서 세계의 한복판을 언제나 비껴나고 있다는 역설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