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오만

우울증 극복기, 지독한 메타인지

by 회색고양이상점

우울증이 거의 다 나았다. 돌이켜보니 '우울증이 맞았나?, 그냥 좀 널브러져 있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뜩하게 느껴진다. 죽일 듯이 옥죄어오던 정서와 생각들이. 명상에 매달리면서 내면에서 시커먼 악을 쏟아내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어딘가 미쳐버린 사람이 되었는데, 살갗이 아주 얇아서 조금만 건드려도 통증이 그대로 느껴지는 약한 영혼이 된 건 덤이었다. 순례길이 끝나고도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 나오던 눈물을 흘리며 미친 사람처럼 하루에 20KM씩 걸어 다녔고, 비가 오는 날이면 사람들이 없는 논두렁길과 숲길에서 웃통을 까고 걸었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왔다. 미친 사람처럼 지내던 중 어느 날부터 갑자기 괜찮아졌다. 그냥 괜찮아졌다. 사람이 변했다. 사람은 변한다. 삶에 대한 태도가 변했다. 사람이 변해서 태도가 변했는지, 태도가 변해서 사람이 변했는지는 모른다. 그냥 변했다. 변한 사람이, 변한 태도로 신음하던 날들을 돌아보니 비루했다. 부모를 원망했고, 사회를 원망했다. 스스로의 관점만 고집하면서, 독선적으로 굴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감쌌다. 스스로의 악을 외면하기 위해 타인들을 악마화하고, 스스로가 밑바닥인 걸 견딜 수 없어서 모든 사람들보다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 여겼다. 명상을 하면서 내면의 쏟아지는 악을 확인하고 나서는 스스로를 죽일 수 없어서, '인간은 원래 그래'라면서 타인들을 감히 용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야만 악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슬쩍 내밀 수 있으니까. 더 나열하기도 지칠 정도다.

임계점을 어떻게 넘었는지는 모른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히 '자업자득이시네요, 지팔지꼰이시네요. 당신 관점이 당신을 옭아매고 있네요. 관점을 변화시키면 다 나을 거예요'라고 말할 수 없다. 우울증이 왜 걸리는지 모르고, 어떻게 해야 낫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나의 경우엔 갑자기 변해버린 극단적이고 찰나인 내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데 한 문장이 제일 적합해 보일 뿐이다. '지나친 자학이 세상을 적대시하게 만들었고, 결국 견딜 수 없는 지점에서 스스로를 무너뜨렸다. 자학이 우울에 스스로를 가뒀고, 모종의 폭발이 우울을 걷어냈다'. 스스로 뿌린 자학의 흔적들을 찾아서 정직하게 한 자씩 흔들리지 않고, 기록할 수 있을 때가 되었을 때, 완전히 벗어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변해버려서 드디어 평범해진 사람의 관점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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