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장맛비 내리다.
늦은 퇴근길,
장맛비가 내린다.
젖은 발자국이 계단에 남는다.
삑. 삑. 삑. 삑.
짧은 신호음 4번이 울리고
현관문 틈으로 흘러든 빛이 집 안 가득한 어둠을 가르면
그제야 오늘을 끝낸 안도감이 밀려온다.
거실에 어지럽혀진 장난감과 책들은
즐거웠던 내 아이들의 하루였고
또한 고단했을 아내의 하루다.
반쯤 열린 안방 문을 조금 열면
큰 아들, 엄마, 그리고 작은 아들.
아빠가 온지도 모른 체 다들 곤히 잔다.
이불 밖으로 뛰쳐나와 벽을 뚫을 것 같은
큰 아들 녀석 살며시 안아 바로 누인다.
머리맡에 앉았다.
가만히
그리고 오래 바라본다.
세상은 우리가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얼마를 가질 것인지로 우리를 바라볼지 모른다.
하지만
이불 위에 남아 있는 너희들의 온기
너희들의 들숨과 날숨.
그것만으로 너희는 내게 우주.
존재 자체로 소중한 존재.
사랑한다.
장맛비가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