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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사람 May 07. 2020

떼껄룩 이야기

도전! 고양이와 함께 살기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설레는 마음으로 동물원에 가면 나를 실망시키던 퀴퀴한 냄새도 별로였고, 인간과는 소통이 될 것 같지 않은 동물들이 갇혀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닥 즐겁지 않았다. 동물은 동물로 사람은 사람으로 각자 이 지구를 함께 나눠쓰고 있는 생명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 그런 동물을 집안에 두고 키우고 가족으로 여기며 스킨십을 하는 모습은 나에게는 매우 이상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여겨졌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잘 돌본다는 굳은 약속을 받아낸 후, 애완동물을 들이고, 잠시 낯섬과 신기함의 시간을 지내면 그 돌봄의 책임은 온전히 주부의 몫인 사례를 너무도 많이 보았기에 나는 우리 가족에게 절대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을 것을 선언했었다. 다행히 시골 출신인 남편도 '동물이라 함은 의례 마당에서 키워야지' 라는 고마운 철학을 가졌기에 결혼 20년간 인간의 가정으로 평화롭게 지내왔다.


고3 아들이 공부와 진로와 인생에 대한 고민과 스트레스로 몹시 힘들어했다. 대한민국에 힘들지 않은 고3이 어디 있겠냐만 마음이 여리고 감성적인 아들은 한 교실의 옆친구들과 내신 경쟁을 해야하는 시스템을 못견뎌 했다. 여러 복잡한 감정으로 집안이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일때 전부터 계속 요구했던 고양이 키우기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중에 "그때 한 번 져줄걸...."하는 후회를 할까봐 두려운 마음에 고양이를 들이기로 큰 결심을 했다.


가족이 될 동물을 돈주고 사온다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키우던 고양이를 서로 분양해 주는 유료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얼룩 새끼 고양이를 분양한다고 올라온 사진의 뒷 배경으로 앉아 있는 검은색 아기고양이를 보고 흥분한 아이들이 바로 이녀석이라며 데려오자고 한다.
세상에.... 검은 고양이라니..... 어린 시절 읽었던 에드가 알렌 포의 '검은 고양이'는 나를 며칠간이나 잠 못들게 했고 그 이후로도 검은 고양이만 보면 소스라치게 놀랐던 나에게 검은 고양이라니.......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고, 고양이 입양을 위해 필요한 물품을 주문하고 있는 나의 모습과 부천역전 여관집에서 우악스럽게 캐리어에 담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생후 2개월 된 검은 고양를 마주한 나의 모습사이의 시간은 캥거루마냥 점프한 것 같았다. 


첫날밤, 녀석은 아들 방 책꽂이 틈새에 숨어 밥도 물도 먹지 않고 밤 새 울었다. 겁이 덜컥 났다. 이웃집에 끼친 폐도 걱정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어린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까 너무도 두려웠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음악도 틀어보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려주기도 했지만 다 허사였다. 고양이 입양을 허락해 준 내 결정을 후회하며 마음 졸이길 며칠!  녀석은 점점 적응하기 시작했고, 녀석의 적응을 위해 평소 남보듯 하던 여섯살 차이 남매는 열심히 의논하고 협력하며 녀석을 돌봤다. 화장실을 치워주고, 목욕을 시키고, 장난감을 사다 놀아주고, 용돈을 아껴 간식을 사오고. 한 생명을 돌보기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내하는 모습이 나의 두려움과 불안을 줄여줬다. 점차 사료와 물을 먹고,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이용하고, 목욕을 하고, 코인사를 나누고, 아이들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여전히 녀석과 나의 심리적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털 달린 짐승이 집안을 유유히 돌아다니며, 소파와 카페트, 그리고 침대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워있는 모습은 여전히 탐탁치 않았고, 발가락 사이에서 삐져나오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울땐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했다. 


모든 일의 해결사는 역시 시간이던가!  함께 한 시간이 쌓여가자 녀석도 우리도 서로에게 점차 적응해 가며 공감이란걸 하게 되었다. 녀석은 필요에 따라 다른 울음소리를 내었고, 우리는 그것을 알아듣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알아 차려 자제했고(예를 들면 두루마리 휴지를 물어 뜯는 일) 적당히 까칠하고 또 적당히 애교도 부려가며 서로 밀당을 하고, 원하는 것을 얻는 윈-윈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이상하리만큼 우리 가족의 성격과 특성을 그대로 닮아 소심하면서도 예민하고 까칠하면서도 정이 많은 행동을 보였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노력을 했다.


녀석은 아무리 가르쳐도 '손'을 하지 않았다. 손을 잡아도 한사코 빼앗아 갔다. 반면에 '코'를 하면 너무도 다정하게 뽀뽀하듯이 코를 들이밀어 마추치며 감정 표현을 했다. 물론 녀석의 기분이 허락할 때만 '코'를 했고 절대로 자기가 먼저 하자고는 안한다. 삶은 닭고기나 츄르(죽 형태의 고양이 간식)같은 간식이 먹고 싶으면 꼬리를 갖다 대며 가르릉 거렸고 특별한 먹거리를 주며 감사히 먹겠습니다 '아멘'을 외치면 최대한 비슷한 발음으로 '아멘'을 따라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자꾸 간식을 사주게 되고, 녀석은 무럭무럭 자라 허리가 긴 성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나비야' 하고 불러왔다. 고양이를 나비라고 부르는 데는 대략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로. 나비의 어원은 "납"으로 나부끼듯 날아다니는 모습이나 재빠름을 말하는데 여기에 접미사 "ㅣ"가 붙어서 나비가 되었다고 한다. 원숭이를 보통 잔나바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이 어원은 원숭이와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원숭이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듯 뛰어다니는 모습에서 비롯된 말이다. 같은 의미로 고양이가 나무를 잘 타고 나렵하게 움직인다는 뜻에서 고양이를 "나비"로 부른다는 설이다.

둘째로, 고려 공민왕 때 중국에서 건너온 아라비아 상인들이 공민왕에게 랍비의 수호물이라며 페르시아 고양이를 바치자 공민왕이 "랍비야, 랍비야" 하며 귀여워했던 것이 그 유래라고 하는데 별 신빙성은 없어 보인다.

셋째는, 고양이가 움직이는 나비를 좋아하다거나 고양이의 귀가 나비를 닮았다는 설이 있다.

(출처 : 냥이네 카페)


모두 다 아니다. 떼껄룩의 뒷 목덜미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검은 나비 한마리. 긴 꼬리를 도도하게 치켜들고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노라면 검은 나비가 퍼득거리며 날갯짓을 한다. 그래서 떼껄룩이 높은 곳을 좋아하고 잘 올라가나 보다. 오늘도 안방 커텐을 타고 장농 위를 한바퀴 돌고 내려왔다. 우리의 동거는 따뜻하며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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