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열전

1. 그녀가 나에게로 왔다

by 키작은 나무

그녀가 내게로 왔다. 결혼하고 14년째 되던 해의 일이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나는 파주시 도립의료원에서 퇴원 수속을 밟고, 그녀를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열흘 전에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도립의료원 응급실에 입원을 했었다.


나는 일요일 아침 큰 집으로 건너왔다. 지난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녀의 말투가 수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걸 일은 먹고 싶은 것이 있거나 용돈이 필요할 때뿐이다. 그런데 어제저녁에는 그냥 했단다. 특별한 용무 없이. ' 죽을 날 받아 놓은 뒷방 늙은이가 뭐가 먹고 싶겠냐? 주면 먹고 안 주면 굶는 거지. 그냥 해 봤다. 목소리나 들으려고...' 그녀의 '그냥'이라는 한 마디는 자신을 좀 봐 달라는 투정이었다.


큰 며느리에게 인사를 건네며 노인네 방의 문을 열었다. 그녀가 축 늘어진 채 누워 있었다.

" 형님! 어머니 아직 안 일어나셨어요? 왜 여태 저러고 계세요?"

"글쎄. 아침 식사하시라고 깨워도 안 일어나시네. 그냥 둬. 더 주무시게"

대화를 이어가며 노인네의 어깨를 잡아당겨 안색을 살폈다. 그녀의 입가에 거품이 흘러 말라 붙어 있었다. 119를 불렀다. 주무시는 거라고 만류하는 큰 며느리를 밀쳐 내며 소리를 질렀다.

" 형님 눈에 저게 주무시는 걸로 보여요? 개 거품을 흘리며 늘어져 있는데, 더 주무시게 놔두라고요!?"

평소 며느리에게 구박받는다고 이상할게 하나 없는 노인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죽음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끔찍한 계산을 하는 큰 며느리의 속내가 느껴지자 뜨거운 혐오감이 치밀어 올랐다. 십여 분 후에 그녀는 119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응급실로 오게 된 것이다.


응급실은 큰 집에서 우리 집으로 건너오는 경유지였다. 그녀도 큰 아들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입원하고 있는 동안 큰 아들 내외는 한 번도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죄목은 아들 앞에서 자살을 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가 자살을 선택하도록 만든 자식이 된 것이다. 그것은 결국 부모가 자식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죄목도 자식의 불효보다 작지는 않을 것이다. 퇴원하는 날도 큰 아들 내외는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결국 우리 집으로 모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나에게로 왔다. 그러나 그녀를 동거인으로 인정하기까지 나도 치열한 계산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아니 왜? 도대체 왜?'

' 갓난아이 남의 집에 맡기면서 출퇴근할 때 한 번 와서 도와주지도 않더니..'

' 애 낳고 미역국 한 번 끓여 준 적 없으면서'

' 집안 행사며 노인네 용돈이며, 간병비 병원비며,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비용을 모두 부담했는데 '

' 애 키우고 돈 벌고 살림하고, 며느리 노릇에 집안 가장 역할까지 도맡아 하며 열심히 잘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는데, 제 자식 못난 거 미안해서라도 어떻게 나한테 짐을 더 얹을 수가 있어?'

'잘하려고 애쓰면 도와주고 배려해 주지는 못 할망정 왜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거야?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나는 한 달 가까이 이 억울함과 분노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다. 친구들에게 열폭탄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 수밖에 없었다.

" 란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누군가는 하겠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자식이 안 하면 동네 이장이라도 들여다볼 거야."

친구의 말 한마디에 나의 복잡한 머릿속이 맑게 비워졌다. 그렇게 순간적이고 간단하게 정리될 일이 왜 그리 힘이 들었을까? 그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그 누군가는 모든 사람에게 노출되어 있는 가능성이다.


모든 사람에겐 사랑하고 봉사하고 희생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단지 그것이 표현되는 경우의 수가 다를 뿐이다. 독거노인이나 보육원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는 우아한 여인이 자신의 부모나 시부모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모실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길 고양이에게 헌신적으로 먹이를 챙겨주는 이가 꼭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도 따뜻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나도 막연하게나마 고아를 후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 했었다. 모든 사람은 제 각각의 상황과 경우에서 '그 누군가' 일 수 있다.

나는 친구의 한 마디에 마음 편하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의 시어머니가 아니다. 그냥 힘없고, 누군가 필요한 노인일 뿐이다. 우리가 양로원에 봉사 활동을 갔을 때 그 노인들의 역사를 묻거나 인성을 따지지는 않는다. 거기에 있는 노인들에게 필요한 위안을 주려고 애쓸 뿐이다. 그냥 한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으로 바라보면 훨씬 쉬워지는 일이었다.


그녀가 나에게로 왔다. 동거인이 되었다. 그리고 고부열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