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녀의 계산법
우리는 일반적인 통념과 관습에 얽매여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라는 것은 세상의 진리요 불변의 법칙인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해 왔고, 자식은 어떠한 경우라도 부모를 섬기고 보살피려고 노력해 왔다. 지금 젊은 세대에서는 많이 달라진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50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세대에서는 그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의 지향점 이기도 하다. 누구도 그 진리의 이면을 객관화시켜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부모 자식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느냐?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는 게 부모지.' 내가 자식을 낳아서 키워보니 그 말은 진리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내리사랑. 그 말 또한 진리임이 분명하다. 어떤 경우에도 부모의 사랑을 넘어서는 자식의 마음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은 드러나지 않을 때에만 진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둠 속에서만 빛을 발하는 진리이다. 희생이 희생인 줄 모를 때, 헌신이 고생인 줄 모를 때. 그저 사랑하는 마음을 따라 최선을 다하다 보니 늙은 부모의 마음이 비어 있는 경우도 있고, 뿌듯함으로 가득한 경우도 생기는 것 아닐까? 그저 사랑일 뿐이다.
그녀와의 동거가 시작된 이후 저녁 식사자리에 그녀와 함께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보니 서로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까지 선을 넘는 경우도 종종 생기게 되었다. 나는 기질적으로 수직적 관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시어머니에게까지 입바른 소리를 자주 하곤 했다.
어느 날 그녀는 딸들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며칠 전 그녀의 생일날 딸들의 용돈 봉투가 기대만큼 두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망할 년! 5만 원이 뭐냐? 5만 원이. 아무리 못해도 10만 원은 넣어야지. 셋째는 이 번엔 그것도 없네. 에이~! 지독한 년"
1년에 몇 번 안 되는 수입이 있는 날 실망스러운 결과는 그녀에게는 치명적인 손해였다. 더구나 내가 매달 10만 원씩 드리던 용돈마저 동거 이후 끊어 버렸으므로 명절 때나 생일 때 자식들에게 받는 용돈과 노후 생활자금 20여만 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그나마 막내딸이 한 달에 한두 번씩 소소하게 챙겨주는 용돈이 있어 부족한 대로 쓸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 엄니! 한 달에 2~30만 원이면 못써요? 그리고 엄니 뭐 산다고 할 때마다 내가 몇 만 원씩 더 얹어 드리잖아. 그 정도면 됐지 얼마나 더 쓰실라고? 엄니가 먹고 싶다는 거 필요하다는 거 다 사다 바치는데 뭐가 더 필요해서 자식들한테 그렇게 바래요?"
나는 순간 본인 생각만 하는 그녀가 미워져서 퉁퉁거리며 한마디 내던졌다.
" 내가 왜 못 바래냐? 죽을 둥 살 둥 제 녀석들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 당연히 지들이 나를 챙겨야지. 내가 왜 못 바래?
그녀는 내게 핀잔받는 것이 더 서운했던 것 같다. 제법 성을 품은 말투로 퉁명하게 내뱄는다. 자식들에 대한 그녀의 유일한 무기는 없이 살면서 힘들게 6남매를 키웠다는 것이다. 시아버님은 남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으니, 그녀가 자식들을 혼자 키우는 동안 가슴에 얼마나 큰 구멍이 생겼을지. 그리고 거기에 얼마나 깊은 한이 맺혀 있을지는 가늠하여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그 힘겨움과 서러움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기는 매 한 가지라지만 길고 짧은 것이 있고, 굵고 가는 것이 있다. 나는 부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낳고 길렀다고 다 같은 부모는 분명 아니다. 무늬만 자식인 경우도 있고, 핏줄만 부모인 경우도 종종 있다. 내가 좀 냉정해서 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가 부모라고 자식에게 도에 지나치게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지지해 줄 수가 없었다.
" 엄니, 고생해서 키웠다는 것은 내가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하고 싶은 것 못하고 자식 잘 살게 하기 위해 애쓰며 키우는 거잖아. 그런데 우리 집은 엄니가 고생해서 키운 게 아니고 그냥 없는 집에 태어나서 다 같이 고생하며 살아낸 것 아니에요?. 자식 여섯 중에 제대로 고등학교 졸업한 건 막내 아가씨 하나라며. 애 아범도 고등학교 졸업은 한 줄 알았더니 다니다 말고 공장으로 나갔다며? 둘째 고모는 애 보느라고 초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중이염 방치해서 한쪽 귀에 보청기 끼고 산다며? 그리고 모두들 어려서 껌도 팔아보고, 소라도 팔아 보고, 초등학교 때부터 엄니 장사하는 것 배달하며 살았다며? 근데 뭘 엄니가 고생해서 키워? 다 같이 고생하며 살아온 거지?
그리고 엄니는 이미 그 보상은 다 받지 않았어요? 엄니 밍크코트가 3벌이지? 그 옛날에 벌써 동남아 여행은 빠짐없이 다 다녀오셨지? 다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독립해서 돈 벌었다며? 20년 키우고 30년 자식들 덕으로 하고 싶은 거 다하셨으면 자식들도 할 만큼한거 아니에요? 이 나이 되도록 동남아를 몇 군데씩 다녀온 자식 있어요? 밍크코트처럼 비싼 옷 몇 벌씩 입고 있는 자식 있어요? 엄니는 어려울 때도 장사하면서 춤 배우러 다니셨다며? 엄니 자식들 착한 줄 아세요. 그래도 같이 고생하며 살아온 역사가 있어서 엄니 끔찍하게 위하는 거예요."
일반적 통념에 따른다면 보통 부모들은 할 것 다 해주고도 잘해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고, 고생시킨 게 안쓰러워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전전긍긍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자식에게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아무런 밑거름을 만들어 주지 못한 그녀가 중전마마처럼 대우받기를 원한다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너무 매몰차게 몰아붙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속은 시원했다. 항상 자신의 위안밖에 살피지 못하는 그녀가 늘 가엾게 여겨졌던 터라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내게 돌팔매를 던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자식 앞에 아름답게 늙어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나의 모자란 상식과 인품으로는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에게 계산법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자식들도 자라는 과정에서 서운한 것이 있었고, 한 맺힌 것도 있다. 아직도 그때의 상처를 쓸어내리고 달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