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의 끝에서 마주한 진정한 자유

20,000 Leagues Under the Sea

by 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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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은 아주 특별한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해였다. 그 해에 발생한 일은 신비롭고도 혼란스러운 현상으로, 아마도 아직까지 아무도 잊지 못했을 것이다. 해양에서 떠도는 소문은 내륙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특히 선원들은 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유럽과 미국의 상인, 평범한 선원, 선장, 항해사, 각국의 해군 장교들, 그리고 여러 국가 정부까지도 이 사건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여러 선박이 만난 것은 “거대한 존재”였다. 길쭉한 방추형의 물체였으며, 때로는 형광을 띠었고, 고래보다 훨씬 크고, 이동 속도 또한 놀라울 정도였다.(20,000 Leagues Under the Sea 원문 중)]


[여러 로그북에 기록된 사실들은 그 생물의 형태, 쉬지 않는 빠른 움직임, 놀라운 이동력, 생명체다운 특성 등에서 거의 일치했다. 만약 이것이 고래라면, 그 크기는 지금까지 과학에 분류된 어떤 고래보다도 컸다. 여러 관찰 기록의 평균치를 고려하면, 일부가 주장한 200피트 길이의 소극적인 추정치나, 1마일 너비에 3마일 길이라는 과장된 의견을 제외하더라도, 이 신비로운 존재는 학자들이 인정한 어떤 크기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인간의 마음이 신비로운 것에 끌리는 성향을 생각하면, 이 초자연적 현상이 전 세계를 흥분시킨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단순한 신화로 치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20,000 Leagues Under the Sea 원문 중)]


[잠수함 이론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개인이 그런 장치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낮고, 설사 국가가 소유했다고 해도 모든 국가의 감시를 피해 비밀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당시 이 사건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자문을 받았다. 나는 이미 프랑스에서 Mysteries of the Great Submarine Grounds라는 논문을 출판해 이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상태였다. 초기에는 사건 자체를 부정했으나, 설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20,000 Leagues Under the Sea 원문 중)]


[바다의 깊이는 우리가 완전히 알 수 없다. 심해에는 어떤 생물이 살고 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미지의 심해에 존재하는 해양 포유류나 새로운 종이 우연히 표면으로 올라올 수도 있다. 만약 이미 알고 있는 종들 중 하나라면, 그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거대한 일각고래(narwhal)이다. 일각고래는 최대 60피트까지 자라며, 이를 다섯 배 또는 열 배로 키우고 힘과 공격 무기를 비례하게 늘리면, 관찰된 괴물과 일치할 것이다. 일각고래의 뿔은 강철과 같은 단단함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배를 관통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이처럼 사건을 과학적,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의 상상력과 공포는 이미 사건을 하나의 전설로 만들고 있었다.(20,000 Leagues Under the Sea 원문 중)]




19세기 유럽은 눈부신 발전의 시기였습니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기계와 증기선, 철도, 전신망은 사람들에게 전혀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바다를 건너 대륙을 횡단하며,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거리를 단숨에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국주의는 과학기술의 힘을 등에 업고 새로운 영토를 개척했고, 과학의 진보는 인간에게 거의 전능에 가까운 힘을 안겨줄 것처럼 보였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등장한 작가가 쥘 베른이었습니다. 그는 '과학 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며, 시대의 낙관주의를 바탕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놀라운 상상력을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단순한 공상과학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과학이 열어줄 수 있는 장밋빛 미래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불안과 인간적 고독, 그리고 문명이 가진 폭력성을 함께 응시했습니다. 그 대표작이 바로 "해저 2만리"입니다.


"해저 2만리"는 바다라는 무한한 공간을 배경으로, 인류가 아직 알지 못하던 심해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한 모험담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과학에 대한 환호와 두려움, 인간 존재의 고독과 공동체의 필요, 제국주의적 폭력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간 내면의 갈등이 촘촘히 얽혀 있습니다. 작품 속 핵심은 네모 선장과 그의 잠수함, 노틸러스호입니다. 노틸러스는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인간이 바다를 정복하고 새로운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꿈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철저한 고립의 공간입니다. 무한히 넓은 바다를 누비지만, 그 안에 타는 이들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갇혀 있습니다. 인간의 과학이 만들어 낸 성취가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속박으로 이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네모 선장은 바다를 자신의 세계로 삼고 사회와 단절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더 이상 인간 사회의 억압을 견딜 수 없었다. 바다만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그러나 그가 찾은 자유는 진정한 해방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회적 억압을 피해 도망쳤지만, 그 끝은 고독과 집착이었습니다. 네모가 구축한 세계는 새로운 낙원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감옥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성경 속 바벨탑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이름을 내고 하늘에 닿으려 했으나, 그 교만은 흩어짐과 혼란을 불러온 역사적 사건과 연관됩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이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세기 11:4)


네모의 노틸러스 역시 인간 기술의 탑이었지만, 그 끝은 고립과 분열이었습니다. 네모 선장의 자유는 고독과 분노에 잠식된 자유였습니다. 그는 해저 세계의 경이로움을 만끽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에게 상처를 준 지상 세계에 대한 증오를 놓지 못했습니다. 복수심과 고립 속에서 그의 영혼은 더욱 깊은 바다처럼 어두워졌습니다. 아무리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다 해도, 인간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성경은 강조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외부와의 단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화해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피어남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사람이 그 행위를 스스로 정결하게 여기나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 16: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6:32)


두 동료는 선실 바닥에 몸을 뻗고 곧 깊이 잠들었다. 나는 너무 많은 생각과 해결할 수 없는 질문, 상상으로 눈을 반쯤 뜬 채 잠이 들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어떤 힘이 우리를 운반하는가? 기계가 바닷속 최저층으로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끔찍한 악몽이 찾아왔다. 신비로운 피난처 속에서, 이 잠수함은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미지의 동물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곧 정신이 안정되며, 나는 흐릿한 무의식 속으로 빠져 깊은 잠에 들었다.(20,000 Leagues Under the Sea 원문 중)


네모 선장은 '성을 빼앗는 자'가 되었을지 모르나,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되지 못했습니다. 그의 해저 왕국은 역설적으로 가장 견고한 감옥이 되었던 것입니다. 함께 노틸러스에 오른 아로낙스 교수는 과학자이자 탐험가로, 바다의 신비에 매혹됩니다. 그는 해저 생태계와 진귀한 생물을 관찰하며 경이로움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가 목격한 것은 지식이 결코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과학을 통해 바다의 신비를 밝히고 시각의 범위가 넓혀 질수록, 그 안에서 고독과 폭력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게됩니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도서 1:17~18)


베른은 바다를 창조 세계의 두 얼굴로 그립니다. 바다는 끝없는 풍요의 창고이자 동시에 위험의 심연이라는 것과 작품 속 인물들이 본 산호 숲과 진귀한 진주, 화산 지대와 고래 떼의 그 장엄함은 경이로움 그 자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즉, 바다는 동시에 폭풍과 파괴의 힘을 품은 공간임을 시편에도 잘 들어나 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 19:1~4)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 생물이 무수하니이다 선척이 거기 다니며 주의 지으신 악어가 그 속에서 노나이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시편 104:24~29)


"해저 2만리"의 마지막 장, 아로낙스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탈출을 감행하지만, 노틸러스호는 노르웨이 해안의 거대한 소용돌이 '마엘스트롬'에 휘말리게 됩니다. 마엘스트롬은 실제로 존재하는 매우 강력한 해상 소용돌이로, 뱃사람들 사이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죠. 소설 속에서 쥘 베른은 이 자연 현상을 극적이고도 웅장하게 묘사하여, 독자로 하여금 노틸러스호의 운명을 예견하도록 한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노틸러스호는 네모 선장의 천재적인 과학 기술로 만들어진 최첨단 잠수함으로 그 어떤 문명의 위협도, 바다의 깊은 압력도, 심지어 거대한 해양 생물조차도 이 잠수함을 막지 못했습니다. 네모 선장은 이 '강철 물고기'를 통해 인류 사회를 등지고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그러나 마엘스트롬에 휘말린 노틸러스호는 아무리 정교하고 강력한 기술로 무장했더라도, 결국은 자연의 압도적인 힘 앞에선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노틸러스호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처절하게 몸부림칩니다. 네모 선장이 그토록 자랑하던 자율성과 통제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잠수함은 거대한 자연의 힘에 속절없이 끌려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기술적 진보와 문명이 아무리 절정에 달해도, 궁극적으로 자연의 거대한 질서와 섭리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는 강력한 상징적인 메시지를 던집니다.


네모 선장은 바다의 심연을 탐험했지만, 결국 자연의 정해진 한계를 넘어설 수 없었으며, 바다가 가진 절대적인 질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틸러스호가 마엘스트롬에 삼켜지는 결말은, 인간이 과학 기술로 아무리 거대한 문명을 일궈도, 창조주가 정한 거대한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결코 지배자가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안겨줍니다.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신느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마태복음 8:23~27)


드넓은 해저 2만 리, 그 미지의 심연을 탐험하며 쥘 베른은 독자들에게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을 선사합니다. 노틸러스호의 첨단 기술이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것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생명의 신비와 광활한 대자연의 압도적인 위엄이었습니다. 그곳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었으며, 그 어떤 인간의 지식이나 기술로도 온전히 통제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임을 소설은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성을 가진 이가 자연의 섭리를 파헤치려 노력해도, 심연의 바다와 그 안에 깃든 생명의 장엄함 앞에서는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해저 2만 리가 보여준 대자연의 경외로움은 피조물의 한계를 일깨우고, 동시에 모든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하시는 분의 위대함을 증언합니다. 온 세상의 아름다움, 생명의 존귀함과 피조물을 향한 사랑은 그 자체로 보호의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상기시키고, 인간이 만든 지식과 기술 너머에 존재하는 창조주의 위대함을 겸허이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진지하게 전하고 있다고 봅니다.


By.James


"20,000 Leagues Under the Sea 줄거리(용약)"

19세기 중반, 정체불명의 해상 괴물 소문이 전 세계 바다를 뒤흔듭니다. 이 괴물은 배를 공격하고 침몰시킨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미국 정부는 이 괴물을 추적하기 위해 함선을 파견하고, 그 배에 프랑스인 해양학자 아로낙스 교수, 그의 충직한 하인 콩세이유, 그리고 유명한 포경사 네드 랜드가 동승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만난 ‘괴물’은 사실 거대한 생명체가 아니라 첨단 잠수함 노틸러스호였습니다. 잠수함을 만든 사람은 신비로운 인물 네모 선장으로, 그는 육지와 문명을 떠나 바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로낙스 일행은 노틸러스호에 갇혀 바닷속 세계를 함께 항해하게 됩니다. 그들은 바다 속의 기묘한 생물들, 해저의 경이로운 풍경, 난파선과 보물, 남극의 얼음 지대 등 미지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아로낙스 교수는 학자로서 호기심과 감탄을 느끼지만, 네드 랜드는 자유를 갈망하며 탈출을 꿈꿉니다.

네모 선장은 바다를 사랑하고 인류 문명을 거부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제국주의와 억압, 전쟁에 깊은 상처를 입은 과거를 숨기고 있으며, 때로는 복수심에 차 무자비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아로낙스는 네모의 고독과 고뇌를 이해하려 하지만, 점점 그의 비극적인 성격을 목격하게 됩니다.

결국 폭풍우와 거대한 사건들이 이어진 끝에, 아로낙스와 동료들은 탈출을 시도합니다. 마지막 순간 노틸러스호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네모 선장은 운명 속으로 사라집니다. 아로낙스 일행은 간신히 살아남아 다시 육지로 돌아오지만, 해저에서의 경험은 그들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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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제 글이 만족하셨나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제 나름대로 책과 정보를 찾아 다시 정리해 이렇게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솔직한 제 생각이나 이야기를 여러분께 제공하고자 노력 중이오니 많이 격려해 주시고 구독도 부탁드립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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