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한국도 만으로 나이를 세기 시작했지만, 미국에서 주로 생활하다 보니 만 나이에 익숙하게 지내왔다. 한국식 나이보다 어리게 나이를 계산할 수 있었던 것도 물론 또한 좋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한국식 셈법이나 만 나이에 상관없이 완연한 40대의 나이에 들어섰고, 그로 인한 감회가 새로운 것도 사실이다.
서른 살이 될 때만 해도, 특별함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단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나는 그저 20대의 내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았고,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였다. 내 나이가 서른 될 즈음에 나는 의대를 졸업할 시기였고, 그리고 결혼도 했었다. 무언가 인생의 스테이지들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듯했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것들이 새롭고 시작해야 하고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해진 것이 없었던 것만큼, 미래의 가능성 또한 많았던 시기였지만, 그때는 불안함도 참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해야 성공적인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막상 말은 30대라고 인정하고 다녔지만, 별로 그 이상 또는 그 이하도 스스로 느끼기엔 바뀐 것이 별로 없었다. 20대 후반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흔이라는 나이를 맞이하면서, 꽤 많은 생각의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일단 겉으로 보기엔, 의사로서의 수련과정도 마쳤고, 어텐딩으로서 의사생활하는 모습에서 이젠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가정에 있어서도 결혼 생활 10년과 아이들의 출생 그리고 이젠 어엿한 아빠 그리고 남편의 모습을 띄어가는 내 스스로의 모습도 이젠 낯설지 않다.
하지만 더 큰 변화는 내면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내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에도 끝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비록 불과 몇 살 더 먹은 것뿐인데, 애늙은이 같은 소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마흔이라는 나이를 마주하게 되니, 스무 살이나 서른과는 다르게, 앞으로 내 인생에 주어질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이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고 해야 할까.
앞으로도 내가 무한정 어리고 젊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
몸의 건강도 그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도 끝이 있을 것이라는 자각.
내가 이루고 싶은 인생의 꿈과 목표들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급함.
하루가 다르게 내 아이들은 커가고, 해가 지나갈수록 주변 어른들의 건강문제들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들을 보며, 나도 나이를 먹고 있구나 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요즘 시대 어른들이 보시기엔, 아직도 나는 정말 이제 갓 어른이 되는 겨우 마흔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마흔이라는 나이를 마주한 요즘, 나는 나에게 앞으로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예전처럼 무한하지 않을 것을 몸소 느껴가고 익숙해지는 중이다.
어찌 보면 그래서 좀 아쉬워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이러한 깨닮음은 현재 내 삶에서 해내야 할 고민과 결정들을 좀 더 단순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남은 시간이 그렇게 끝없이 많지 않으니,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 그리고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들의 구분이 명확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 대학교 심리학 교수님 중에 Barry Schwartz이라는 분이 "The Paradox of Choice"라는 유명한 책을 쓰셨는데, 그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선택이 많을수록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고, 선택의 폭이 좁을수록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미래의 시간에 제약을 느끼지 못했던 10대나 20대 때에는 소위 내가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A이지만, 지금은 B를 먼저 해야 것 같아 그러니까 A는 나중에 해도 돼"라는 논리로서 항상 최선의 노력과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를 설득시키고 채찍질한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인지하고 있는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나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 속, 만약 "내가 하고 싶은 A가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A의 길을 선택하고 집중해 보자"라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다.
결국 마흔이라는 나이가 나에게 인생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조급함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조급함은 오히려 나에게 있어서 우선순위를 좀 더 선명하게 해주는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유한하다면, 내가 이루어 보고 싶은 꿈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가면서 채워가기에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식교육과정의 시간들도 다 보냈으니, 과연 내가 근본적으로 무엇을 원하고 추구하는지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지금 이 마흔이라는 나이의 변곡점에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인생의 모습은 무엇인지 좀 더 솔직하게 살펴보기로.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조금씩 무언가 제자리로, 내 본연의 꿈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 싶었고, 그렇게 실천에 옮길 용기도 조금 생기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 자신 스스로에게 잘했다 칭찬할 수 있는 날들도 더 생기지 않을까 싶은 바램도 생겼다.
(덧붙임)
그래서 난 최근에 생각지도 않았던 이직을 결정했다. 어텐딩으로서의 첫 직장을 이렇게 빨리, 우연치 않게 옮기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결론적으론, 어느 정도의 리스크는 있지만, 마음이 향하는 길로 용기 내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