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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철 Feb 14. 2024

동백섬 지심도

거제도 여행


아래는 거제시가 만든 팸플릿에 나와 있는 지심도의 이야기를 옮겨 적어본다.


거제 지심도는 하늘에서 보면 마음 심(心) 자를 닮았다고 하여 지심도(只心島)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섬에 주둔했던 일본군은 보리섬(麥島)라고 불렀다. 지심도는 사계절 풍광이 아름다운 섬으로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춘 자연휴양지로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7선에 선정되었으며 전체면적이 0.356 km, 해안선길이 3.7km, 최고점 97M, 주민 10여 세대가 살고 있는 섬이다.


역사적으로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 왜구들이 설치한 포진지와 탄약고, 구 일본군 헌병주재소 및 전등소 소장사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으로 로 아픈 기억이 있는 섬이며 지심도가 국방부 소관이던 시절에 건립된 국방과 학 연구소도 있다. 특히 겨울, 봄에는 섬의 절반 이상이 동백꽃으로 빨갛게 물들어 동백섬이라고도 한다.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진 오백 년 이상 신비의 원시림 숲이 매우 아름다우며 가을에는 쪽빛 바닷물과 어우러진 섬의 풍광과 손 내밀면 닿을듯한 대마도를 보면서 걷는 트레킹은 최고의 힐링을 느낄 수 있다. 숲 속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운이 좋으면 볼 수 있는 예쁜 팔색조와 동백꽃을 좋아해서 동백나무와 살고 있는 동박새의 새소리는 속세의 고뇌를 잊게 하여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섬의 탐방시간은 1.5 ~ 2시간 정도로 원시림 숲 터널로 이루어져 있어 오백 년 이상 원시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를 마시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섬이다. 특히 봄, 가을에는 전국의 산악회에서 많이 찾는 트레킹 코스로도 유명하며 지심도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포함된 청정지역으로서 반딧불이가 서식하고 있으며 섬 주민들이 운영하는 숙박시설이 있고 바다에서 잡은 해삼, 멍게와 해물, 멍게비빔밥, 해물파전, 막걸리 등 먹거리도 즐길 수 있다. 거제 지세포항에서 유람선을 타고 13분 정도면 지심도 선착장에 닿는다.


아름다운 지세포항의 운항 노선은 소노캄(대명콘도), 라마다호텔, 호텔상상의 지심도 전망대 등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멋을 느낄 수 있으며 지세포항의 운항노선은 바람과 파도의 영향을 적게 받아 멀미걱정이 덜하다. 지세포항 유람선주차장은 매표소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승용차 500대, 대형버스 10대를 주차할 수 있는 무료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주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지심도는 한번 왔다 간 사람이 섬의 아름다운 매력에 빠져 계속 찾아오는 섬으로 신비한 원시림의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한 섬이다.


운항안내:http://jisimdocruise.com/

지세포출발 08:45 / 10:45 / 12:45 / 14:45 / 16:45

지심도출발 09:05 / 11:05 / 13:05 / 15:05 / 17:05

네이버예약: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56835/items/2026585?tab=book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56835/items/2026585?tab=book

경남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해안로 43 (우) 53328 지번일운면 지세포리 929-121

경남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해안로 43 (우) 53328 지번일운면 지세포리 929-121


동백꽃은 세 번 핀다 하지요. 눈 쌓인 나무에서 한 번 피고, 떨어져 땅에서 또 한 번 피고, 이 내 가슴에 불게 다시 피지요.


2024년 2월 13일 화요일 오전 기준


외도를 가려고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는데 외도 가는 배편이 떠나고 없었다. 유람선 터미널에는 외도 가는 배편과 지심도 가는 배편의 매표구가 나란히 맞은편에 있다. "외도 가는 배편은 여기가 아닌가 봐요?" 매표구 아저씨는 "외도보다 동백꽃이 한참 핀 지심도가 나은데요""외도 가면 아무것도 지금 없는데 지심도가 백번 낫는데예" 승선권을 구매하기 위해 신분증이 필수이다. 그래서 메일에 내게 보내기나 첨부로 신분증을 첨부해 두면 휴대폰에 있는 거 보여줘도 신분증 없이 충분히 승선이 가능하다.


외도는 기억 속에 두 번 왔기에 그렇다면 지심도로 가보자는 결심을 하고 표를 구한다. 지심도 왕복 2만 원에 소요시간 15분에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히 돌 수 있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한다.

평일이라 사람도 없이 한산한데 느닷없이 버스가 한대 왔고 60대 이상분들이 버스에서 내린다. 안산에 있는 모 산악회 사람들의 모임인가 보다. 그래도 휑하니 심심하지 않게 배를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저런 시간을 보낼까? 아니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출발하는 시간은 대체로 날씨가 맑았으며 기온이 춥지 않은 봄이 완연한 날씨였다. 바다이고 내일 날이 흐린 예보로 바닷바람이 파도와 나의 머릿결을 심하게 가를 뿐이다. 나의 머리카락은 바람이 순전히 쥐약이다. '통째로 날아가버리면 나도 난감하니 조심해야지!.' 안산의 산악회 분 중 가이드하시는 분이 새우깡 가져온 신 분 있으시냐 물으신 이유를 승선을 하고 알았다. 사람들의 습관이 그래서 무서운 거다. 배다 출발하자마자 저기 뭍에서 기다리던 갈매기떼들이 일제히 솟구쳐 날아올라 필사적으로 따라 날아오른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새우깡은 던져 주지 않는다. 그래도 애걸하듯이 그들의 눈은 2층 위 갑판에 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끼룩끼룩거린다.

지심도에 도착하는 배편중에서는 장승포항에서 출발하는 배가 온다. 장승포항에서는 20분 소요 지세포항에서는 15분 정도 소요된다. 배시간을 확인하고 승선을 해야 한다. 네이버에서도 예약을 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즉흥적으로 항구로 와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지심도에 도착하면 선착장에는 동백 그림이 가득하다. 여수 오동도에 방파제에 그려놓은 동백 그림과 사뭇 닮음이 있다. 물론 오동도의 동백나무도 수령이 오래되고 키가 크기도 해서 떼를 지어 붉은 꽃들이 함께 피지 않는다. 동백들은 서로들 다투어서 함께 피지 않고 옆의 피는 꽃들에게 순서를 양보하면서 피기에 무리를 지어 피지 않는다.

사진출처: 청주 송암산악회

5,6의 포진지와 탄약고는 반드시 둘러보고 와야 한다. 섬에 도착하면 전기자동차가 아니면 매표소 직원이 왼쪽으로 돌고 힘들어서 카트를 타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3번을 둘러보고 운동장으로 가서 반드시 포진지와 탄약고를 둘러봐야 한다. 포진지 둘레는 시멘트로 두른 수로처럼 생긴 것이 포를 나르던 레일이었다. 탄약고에 가장 취약한 수분을 방지하기 위해 방수를 얼마나 단단히 했으며 지금도 탄약고의 벽면이 그토록 깨끗이 새것처럼 보일까 생각해 본다.

출처: 거제시 관광투어SNS공모전



매표소 아저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동백이 만개한 것은 아지만 듬성듬성 동백이 자리를 탐하지 않고 순서대로 피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2월 중순의 지심도 동백나무들이다.

지심도의 남쪽 끝인 "마끝"은 남풍을 마파람이라고 부르는데서 유래한다. 마끝의 곰솔나무들이 해안절경과 어우러져 절경이다. 돌아오는 길 오른 언덕이 이 마을의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곳에 학교가 있다니 놀라웠다. 지세포 지심분교의 12회 졸업기념사진(1978년)을 인터넷에서 구했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물이 학교의 교사이다. 지금은 오른쪽 건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마음 넓은 푸른 운동장옆으로 동백이 울창하고 동백꽃만 그 화려한 시절을 회상해주고 있었다. 지금은 마을 회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일제는 지심도 일대 토지를 매입하고 주민을 강제 이주 시킨다. 지심도는 1개 중대 300여 명이 주둔해 1941년 태평양 전쟁 당시 양지암 기지와 함께 연합군 공격에 대응한다. 위의 터는 '비행장'으로 알려져 있다. 활주로라 하기에는 짧은 감은 있지만 얼마든지 이착륙을 불시착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기록은 없지만 비행장을 만들다 말았다는 기록은 있다고 한다.


이곳에 세관초소(1966~1986)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사회의 혼란한 틈에 남해안으로 밀수가 성행하였는데 1960년대는 대마도 이즈하라항을 본거지로 밀수조직이 활동, 1970년대는 활어 수출선을 통한 밀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밀수 대상은 금괴, 녹용, 시계, 전자제품 등이었다. 국내로 들여온 밀수품은 선박을 이용해 옮기거나 무인도로 옮겨 뭍으로 들여왔다. 하여 이를 근절하기 위해 거제의 지심도에 통영 소매물도에 세관초소가 운영되었다.

1945년 9월 일본군이 섬을 떠난다. 뭍으로 강제 이주된 주민 20여 호가 섬에 정착한다. 비탈진 땅을 개간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농사를 지었다. 섬전체로 보면 물을 구하기도 힘들었으며, 땔감도 섬에 있는 나무들에 의존했다. 이 섬을 둘러보면 토양이 황토이며 햇빛이 드는 곳에 밭을 일군 흔적들이 보인다. 내가 갔을 때는 그 밭에는 홍매화와 청매화가 향기를 뿜고 있었고 그 나무들 아래로는 관리되지 않은 땅인지 잡초가 무성하게 말라 흐드러지게 있었다.

지심도의 60%~70%가 동백나무로 우거져 있다. 동백(冬柏)이라는 말이 겨울에도 푸르다는 말답게 푸르름을 머금고 있다. 후박나무, 자귀나무, 대나무 등 37종의 난대성 수목들과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소나무 연리지가 묵묵히 지심도를 지키고 있다. 진지 구축하여 포대를 숨기기 위하여 심었던 소나무들이 지금은 지심도를 아름답게 지키고 있는 소나무들로 가려져 자라고 있다.


'새끝'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욱일승천기가 걸려있었다. 자세히 보면 국기 게양대 아래의 콘크리스대는 그때 그대로였는데 그 위에 다시 국기 게양대를 만들어 놓았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2015년 8월 15일에 주민들이 태극기를 걸었다고 한다.

방향지시석이다. 총 6개의 지시석이 있었는데 지금은 장승포, 가덕도 등대(다덕도 외양포 포대), 절영도(부산 영도의 절여도 포대), 쓰시마 남단(쯔쯔자키포대)을 나타내는 5개만 남아 있다. 위의 지시석이 잘 보이지 않아 물을 부어 화면으로 확대해 보니 부산 영도(影島)의 절영도(絶影島東三) 포대를 나타내는 지시석이다. 부산절영도동삼은 외국선박의 출입을 감시하기 위해 고종 18년에 절영도진(絶影島鎭)을 설치하였는데 태종대가 있는 영도의 원래의 이름이 절영도였다.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가 너무 빨라 그림자조차 끊어져 보이지 않았다 하여 절영마(絶影馬)를 기르는 곳이어서 이름 지어졌다. 말은 소처럼 묶어서 기르지 않고 방목했는데 주로 천적인 호랑이가 없는 섬에서 길렀다. 제주도, 거제도, 절영도가 나라에서 직영한 목장이었고 육지로 수송이 쉬운 명마의 산지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절영도를 마키시마라고도 불렀다.


지심도를 요새로 만든 일제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지심도의 위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남단 끝에 위치한 지심도는 대마도 50여㎞ 거리에 위치해 있다. 대마도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해군기지가 있는 진해만으로 들어오는 길목이자 거제 최고의 양향 지세포 입구에 자리해 있다. 가덕도와 지심도 양쪽에 대공포 기지를 만들어 군대를 주둔시켰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지심도에는 이상하게도 대나무가 많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큰 포대가 포를 운용하려면 그 반동으로 산의 흙들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대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지심도의 위치는 동남단 끝에 위치하여 대마도에서 50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대마도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해군기지가 있는 진해만의 길목이고, 거제 최고의 양향 지세포 입구에 자리 잡아 가덕도와 지심도 양쪽에 대공포 기지를 만들어 군대를 주둔했다. 그때 서치라이트를 보관하던 곳이다. 세월의 흔적은 쇠문이 녹으로 검게 물들고 있었지만 2중 콘크리트의 그 단단함은 어제 갓 굳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천혜의 요새였다. 이 건물의 특징이 이중벽의 형태이다. 내벽과 외벽이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서치라이트가 당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 사용한 조명이 도달하는 거리는 7km~9km나 되며 서치 라이트를 방향지석으로 끌고 가서 사용되었다 한다.

소리를 자세히 들어 보면 대나무들끼리 부대끼면서 싸우는 것처럼 "으르렁, 으르렁" 거린다.

누군가가 일구어 놓은 밭의 양지바른 곳에 핀 청매와 홍매는 그 역사적 사실들을 잊고 하루 탐방객들에게 향기만 전해준다. 봄이 지나면 개나리도 필 듯 하지만 남쪽에서 맨 먼저 매향을 만난 그 기쁨과 아울러 역사의 아픔을 새긴 소중한 여행이었다.

일제는 진해만을 최고 해군기지로 만들고 대륙진출의 거점으로 삼는다. 거제 전역을 '진해만요새사령부'의 작전지역으로 선포한다. 당시 지심도에는 13세대 61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지심도, 가덕도 등 인근 섬들은 군사기지로 바뀌었다. 지심도에도 포대를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쓰시마(쯔쯔자키포대), 이키(오오지마)에도'포대설치'를 한다. 지정학적으로 대한해협을 제압하는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섬 북쪽 망루에 망루로 가는 탐조등(서치라이트)의 보관소와 방향지시석이 남아 있다. 탐조등은 직경이 2미터에 이르고 장승포, 지세포, 진해만, 대마도 방향으로 접근하는 선박을 감시하였다. 잉에 군사기지와 탐조등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전등소를 설치한다. 이를 관리하는 소장이 거주하는 사택과 일본식 가옥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위의 관리하는 전등소 소장의 사택이었다.

숙박과 거주시절들이 예전에는 일본군의 숙소로 사용되다가 국방부의 부대 숙소 이후에 마을 주민들에게 다시 돌아가게 된다. 아직 기와가 옛날의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덮어 버리기에는 너무 멀쩡하게 지붕을 이루고 있다.

갈매기들은 가는 배에도 여전히 먹이를 주지 않지만 잠시 바닷가에 머물다가 배가 출발하자마자 그 배뒤를 따라 날아오르고 무리를 지어 사람들에게 모이를 호소한다. 내가 떠난 이 지심도에도 역사를 모르는 갈매기들은 배에 실은 손님을 그렇게 맞이하고 보내고를 반복할 것이다.

선착장에 있는 인어와 호랑이의 스토리 텔링 동상이 여러분을 반겨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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