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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름 Jul 08. 2022

008 내가 사랑했던 모든 뜨개에게

P.S. I Still Love You



코로나가 시작되고 없던 취미가 생겼다.

내 삶의 모든 걱정과 불안을 잠재워주는 뜨개를 만났다.

손가락에 온 기운을 얹고 한 코 한 코 나아간다.


첫 시작은 대바늘로 목도리 뜨기,

초반엔 땀이 일정치 않아 삐뚤빼뚤한 목도리가 완성됐다.

그래도 빼뜨기를 하며 매듭짓는 순간 묘한 쾌감이 올라온다.


대바늘이 손에 익을 때쯤

코바늘을 만났다.

한 뼘 정도 크기의 코바늘로 탄생시킬 수 있는 건

꽤나 많았다 --- 크런치, 책갈피, 컵받침, 파우치, 가방 등.


내 적성엔 코바늘이 더 맞더라.

처음엔 버벅거려 포기할까 했지만

생각을 멈추고 계속 떴다.


뜨개는 길이 어긋나도, 훌훌 풀면 금방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한 코를 놓쳐도, 한 코를 더 떠도 어떻게든 방법은 생긴다.

언제든 뒤로 돌아가 후회를 떠낼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작년 연말, 소중한 사람들에게 뜨개를 선물했다.

편지 한 폭에 더하여 내 마음을 전달했다.

사실 단순한 수제품 정도로 느껴질 수 있겠으나

뜨개에 담긴 내 마음은 생각보다 더 깊다.

상대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깊을 수도

(그래서 절대 말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 뜨개를 하다 보면

최소 2시간에서 최대 일주일이 걸리는데,

뜨는 내내 선물할 상대를 생각한다.


이 색을 좋아할까?

이 뜨개가 필요할까?

평소에 어떤 컵을 썼지?

평소에 뭘 들고 다녔지?

이 사람이 읽던 책이 두꺼웠나?...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실을 좇는다.


내 뜨개에 담긴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었길

뒤늦게 바라본다.


-

뜨개는 잔잔한 취미지만

한편으론 부지런히 요동치는 활동이다.


가끔은 생각이 많아

실과 함께 끈적이 엉킬 때도 있지만

그를 돌돌 풀며 안식을 찾는다.


뜨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 글이 닿을 수 있길.


뜨개 덕에

내 삶이 또 다른 가지를 뻗어냈다.







+.

어릴 적 엄마는 내 조끼, 원피스, 점퍼를

모두 대바늘로 떠주셨다.

첫 등교 때 입을 노란 카디건부터

크리스마스용 빨강 원피스까지

엄마가 스스로 생각해낸 무늬로 곱게 떴다고 한다.


어쩌면 엄마도 모든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떴을지도 몰라.

그리고 또 사랑하는 맘을 가득 담아 떠주셨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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