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험생활 그리고 악몽

2008년도에 습작스럼 기재한 글

by 이성우 변호사

그런데 아직까지 꾸고 있다면 믿으실까요?


이하 당시 글


며칠 전 사법시험 합격자 중 시각장애인이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몇 년 전 시각장애인 수험생이 있어 시험 주관 부서에서 그 수험생을 위한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최종적으로 좋을 결과를 가져 온 것 같아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나의 수험생활이 불현듯 생각난다.


나도 짧지 않은 수험기간을 가졌는데 참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 외로운 시절이였고 과연 붙을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과 공포감에 항상 힘들어했던 시기였다.


나는 사법시험 2차를 네 번 보았다. 그러니까 사법시험 1차를 2번 붙은 것이다. 처음 1차 시험은 제대 후 거의 8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붙었다.

운좋게 1개 차이로..

내 기억에 영어가 너무 어려워 40개 만점에 14개인가 틀린 것으로 기억되는데

아무런 기초도 없이 1차를 너무 빨리 붙는 바람에 2차 시험 공부가 모래성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살도 많이 빠지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황폐해졌던 것 같다.


제일 힘들었던 시기는 처음 1차를 붙은 그 다음 해, 그러니까 두번째 2차 시험을 보는 해 4월 정도였다.

모의 시험 점수도 잘 안나오고, 2차 시험에서 떨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에 항상 짓눌려있었다.

급기야 두통도 상시화되고 불면증에도 시달렸는데 시험 치는 날까지 머리가 깨질 듯 아파 내가 무슨 뇌종양 같은 것에 걸리지 않았나 걱정을 했을 정도였다.

2차를 보는 4일 내내 잠도 제대로 못자고 둘쨰 날 민소법을 망쳐서 과락의 공포가 넷째 날까지 나를 짓눌렀다.

후에 결과를 보니 민소법은 그나마 점수가 괜찮았고 같은 날 치르는 민법에서 과락이 나왔다.

당시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시험이 끝나는 6월말까지 너무 고통스러워 다시는 이런 시험 보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다.

시험이 끝나고도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 내 젊은 생을 이렇게 망치는구나 생각했는데

왠걸.. 그 다음 날 감쪽같이 괜찮은 것 아닌가. 다행이다 싶었지만 한 편 쓴 웃음도 나왔다.


여하튼 내 생애 최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그 해 발표나는 12월(요즈음은 10월경에 발표가 나지만 예전에는 결과 발표까지 반년이 걸렸다)까지 아무런 생각 없이 진짜 아무런 생각 없이 보냈다.


점차 발표일이 다가왔다.

불합격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내심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발표 당일날 무작정 영화관을 찾아 갔는데 영화제목은 '리베라 메'였다.

'나를 구원하소서' 정도의 의미인데 딱 당시 나의 상태를 나타내는 영화제목이었다.

보는 내내 핸드폰을 꺼 놓고 있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핸드폰을 켜보니 아무런 문자도 없었다..

내가 합격자 명단에 있었다면 누구든 나에게 문자를 넣었을 것이다.


불합격이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로 가야하나

그 힘든 시기를 다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끔찍했다.

당시에 나는 객관적으로 아직 어렸고 남들처럼 사법시험을 세네차례 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왜 그리 절망적이였는지..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이 시험을 한번 더 보라고 했는데 나는 할 수 없었다. 너무나 황폐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법시험을 꼭 붙어야 한다는 동기도 없었다.

그저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태를 뒤로 한채 운 좋게도 한국은행 시험에 합격해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같이 입사한 동기들은 모두들 한 공부했던 경력을 자랑하는 훌륭한 분들이였다.

한은 연수원 시절 한국경제가 IMF를 맞은 이유에 대해여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난 그들의 해박한 지식과 냉철한 분석력에 정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한은 연수를 2개월 정도 받으면서 처음으로 스키장도 가보고 마음껏 자유를 느꼈다.

나는 신입 조사역으로 각종 분석과 통계, 기업경영분석, 외환 등의 업무를 익혔다.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였지만 재미있었고 그 여유가 좋았다.

되도록 사법시험과 관련되는 얘기는 관심밖에 두려 했고 편안하게 보내려 하였다.


다만 회사 생활이 반복되면서 법학을 전공한 이가 한은에서 어느 정도 두각을 나타내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과 10년 후의 내 모습이 너무나 전형적인 직장인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왜 사법시험을 공부했는지,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그러자 문득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싶지 않은 사법시험 공부가 다시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고시생 생활은 다시 시작되었는데 얼마 안되어 또 한문제 차이로 1차 시험에 합격했다.

난 참 운이 좋은 것 같다. 아니면 겸손을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일지도 모르겠다.

그 해는 월드컵이 있었던 해이다.

신림동에도 어김 없이 '대~한민국' 함성 소리가 넘쳐났다.

나는 시험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6월 독서실 휴게실(집현당 일거다^^)에서 무아지경의 응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난 다시 심기일전하여 2차 시험을 준비했는데

예전의 그런 고통도 없고 상당히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공부를 하였고 홀가분하게 시험에 임했다.


이윽고 시험은 시작되었고 역시 민법은 참으로 쉽지 않은 과목이였는데.

당시 사법시험 2차에서 민법 case 문제에서 등장인물이 통상적으로 많아 봤자

'갑' '을' '병' 정도 나오는데 그 해 따라 등장인물이 갑, 을 , 병, 정, 무, 기 까지 나온 것이었다.

돌아 가시는 줄 알았다.

법률관계가 얼키고 설켜 있어 초안을 잡는 데만 20분 이상(통상 10분 정도 잡고 50분 정도 쓴다) 걸렸는데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 우선 단문(case와 달리 '계약금의 성격'처럼 실제 사례이 아닌 문제, 아마도 '상계항변'이였던 같다)을 작성하기 시작 했는데 그 단문은 운이 좋게도 내가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본 문제였기 때문에 일사천리도 써내려 갔다.

그러나 다시 단문을 쓰고 케이스를 쓸려고 보니 또 답이 안나오는 것이였다.


난감하였다.

나의 사법시험은 또 이렇게 허망하게 과락으로 망치는가 하는 공포가 잠깐 엄습하였지만 꾸역꾸역 문제의 결론까지 쓰는 그야말로 악전고투를 하였다.

물론 나중에 결과를 보니 과락이 나오지 않았지만 과락을 살짝 얹혀 있는 점수였다.

십년 감수한 점수다.


이렇게 저렇게 4일간의 시험을 마쳤는데 예전처럼 머리 아픈 것도 없었고 잠도 잘 잤을 뿐만 아니라 기분도 홀가분했다.


시험을 마친 후 교회 수련회에 갔는데 난 그곳에서 영적 경험을 하였다.

합격발표 바로 한 달 전 부흥회를 통해 합격의 확신을 하였고 발표날에도 너무 평안한 마음이었다.


발표 당일 신림동에서 공부하던 후배한테 전화가 왔다.

형 이름이 있다고..

실은 그 해 나 말고도 내 이름으로 2차 본 사람이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그래서 끝까지 확신을 못했었는데..

내 수험 번호였던 것이다.


감사하다.. 또 감사하다..

내 파란만장한 수험생활이 드디어 끝났구나..

시험에 붙어서 기쁘다는 느낌 보다는 이제 더이상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더 컸다.


얼마전 오랜만에 대학교 도서관에 들렀는데 나보다 한참 대선배이신 분이 아직까지 꼿꼿이 수험책을 보고 계셨다.

아는 체 하기도 뭐하고 자리를 피했는데 뭐라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찾아온다..

그 분도 왕년에 나름 수재 소리를 들으시고 전도 유망한 청년이였을텐데 이제는 벌써 희끗희끗한 아저씨가 되었다.

내가 사법시험을 한참 할 때도 10년 넘게 공부하고 계셨는데 지금도 하고 계시니 족히 20년은 넘었을 것이다. 최근 그 선배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사무실 일이 바빠 찾아 뵙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법조인을 꿈꾼다.

우스개 소리로 치기에는 심각한 이야기이지만 법조인 특히 변호사는 이미 사양직업이 된 것 같다.

사명의식과 소명이 없으면 그 정글의 법칙에서 살아 남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나는 몸이 힘들거나 피곤하면 사법시험을 다시 보는 악몽을 꾼다.

한동안 꾸지 않다가 요새 다시 꾸기 시작했다.

꿈은.. 1차를 붙고 2차시험을 남기고 있는 시점이거나, 또는 변호사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 합격에 문제가 생겼으니 다시 2차 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이다..

꿈을 꾸면 그 상황이 너무 생생해서 너무 놀란다..

잠에서 깨어나 다시 사법시험을 안 봐도 된다는 현실에 안도하지만

그 꿈은 그림자처럼 항상 나를 따라다닌다.

그때 참 힘들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내가 시험을 붙지 못했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직 신림동 어디 쪽방을 전전하고 있었을까.


감사, 또 감사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어떤 물건이나 돈이 공짜로 얻게 되면 금방 그 물건 값어치 만큼 정도로 손해를 보거나 그 돈을 잃기 일쑤였다.

난 합격이라는 것을 공짜로 얻은 듯하다. 두번이나 일차를 한문제 차이로 붙었고 그렇게 과락의 공포로 나를 짓눌렀던 민법 과목에서도 시험 직전 화장실에서 본 문제가 단문으로 출제되었고 그 점수 또한 과락을 아슬아슬 벗어나는 점수였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천우신조이며 공짜로 받은 것이나 다름 없다.

내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것도 공짜이니 아마도 내가 누리고 있는 몇몇 호사(?, 가령 통상적인 분들보다 마이너스 한도가 많을 수 있다는 것)는 내게 그만큼의 손해를 주거나 곧 잃어버릴 듯하다.


공짜로 얻었으니 참으로 쉽게 쓸 수도 있지만 귀히 여겨 쓰고 싶다.

비록 생계형(?) 변호사이긴 하지만 남의 생계도 항상 생각하고 싶은 변호사가 되고 싶다.


근데 이 불쑥불쑥 등장하는 악몽에서 언제 벗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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