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낭비한 게 아니라, 잠시 멈췄을 뿐

멈춰 있던 시간에도 생각은 움직였다.

by 이승우

하루가 끝나갈 즈음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늘 비슷하다.

‘오늘 나는 뭘 했지?’라는 질문이다.

특별한 사건도, 남길 만한 성과도 떠오르지 않으면

괜히 하루 전체가 허무해 보인다.


아침에 눈을 떴고, 학교에 갔고, 사람들과 말을 섞었고,

집에 돌아와 씻고 밥을 먹고 휴대폰을 조금 보았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분명히 하루는 움직였는데

기억 속에서는 유독 공백처럼 느껴진다.


아마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결과’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를 끝내야 의미가 있고,

확실한 흔적을 남겨야 잘 보낸 하루라고 믿는다.

그래서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한 날은

스스로에게 낮은 점수를 주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모든 날이 앞으로만 달릴 수는 없다.

가끔은 멈추고, 속도를 줄이고,

생각이 정리될 시간을 주는 날도 필요하다.

그 과정이 겉으로는 보이지 않을 뿐,

안에서는 분명히 무언가가 쌓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았던 오늘도

사실은 나를 조금 더 알아간 하루였을지 모른다.

무엇을 하면 집중이 흐트러지는지,

언제 가장 쉽게 지치는지,

어떤 순간에 괜히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는지.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내일은 조금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

더 잘하려는 다짐보다

덜 자책하는 선택이 먼저일 수도 있다.


오늘을 실패한 날로 남기지 않기로 했다.

그저 숨을 고른 날,

잠깐 멈춰 서서 방향을 확인한 날로 적어두면 충분하다.


내일은 오늘보다 바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다시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