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승우

운동장 끝 가로등 아래
눈은 급하지 않게 내려와
검은 아스팔트에 닿자마자 젖는다

누군가 남기고 간 발자국 옆으로
새로운 눈이 얹히고
곧이어 다시 흐트러진다

교복 어깨에 붙은 눈은
서로를 밀치며 걸어 들어온 교실에서
말없이 물 자국이 된다

창가에 앉아 창틀을 보면
어제 밤 사이 들어온 눈이
얇은 얼음 조각으로 남아 있다

버스 정류장 의자 위엔
아직 아무도 앉지 않아
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의자를 털어내면
차가운 물이 손바닥에 번진다

신발 밑창에 끼인 눈은
집까지 따라와
현관 앞에서야 떨어진다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눈을 치운다 말하지만
쓸어낸 자리 옆 모서리엔

밟히지 못한 눈이
하루를 더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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