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트로프(인간혐오자)

by 이승우

나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해부터 한다.
차갑다거나, 삐뚤어졌다거나,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본다고. 하지만 미산트로프가 된다는 건, 처음부터 인간을 미워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너무 많이 기대했고, 너무 진지하게 믿었고, 그만큼 많이 실망했기 때문에 도착하는 자리다.

나는 한때 사람을 좋아했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고, 말 한마디에 마음을 쓰고, 상대의 표정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사람 사이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다. 이해와 공감, 함께 버티는 힘 같은 것들. 그래서 인간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쉽게 변했다. 어제까지의 말과 오늘의 태도가 다르고, 약속은 상황에 따라 가볍게 수정되었고, 진심은 편리할 때만 꺼내졌다. 그 변화가 항상 악의에서 비롯된 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다들 바쁘고, 다들 여유가 없고, 다들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와 반복은 다르다.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계속 설명하고, 내가 계속 참는 구조가 된다. 그때 마음은 조금씩 닳아간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에서는 무언가가 하나씩 무너진다.

미산트로프가 된다는 건, 사람을 미워하기로 결심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기대를 접는 일에 가깝다. 인간에게서 선의만을 기대하지 않게 되는 순간, 관계를 이상화하지 않게 되는 순간, 나는 조금씩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 편해진다. 말 한마디에 상처받을 일도 줄고, 괜한 오해로 밤을 새울 일도 없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 그래서 미산트로프의 삶은 겉으로 보기엔 차분해 보인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감정의 파도가 크지 않다.

하지만 그 평온은 완전한 자유는 아니다.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건, 동시에 아무에게도 완전히 기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맡기지 않으니 상처는 줄지만, 깊이도 사라진다. 웃음은 가벼워지고, 관계는 얕아진다.

나는 인간을 싫어하게 된 게 아니라, 인간에게 지쳤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사람들의 이중적인 태도, 필요할 때만 꺼내지는 진심,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의 온도. 그런 것들이 반복되다 보니, 더 이상 놀라지도 화내지도 않게 되었다.

미산트로프는 분노하는 사람이 아니라, 체념한 사람에 가깝다.
“원래 그렇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더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 애쓴다. 기대하지 않는 것이 성숙이라고 믿으면서, 사실은 또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인간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 왔던 건 아닐까. 사람 하나하나에게 너무 큰 역할을 맡기고, 그들이 그 역할을 해내지 못했을 때 실망해 왔던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미산트로프라는 말이 꼭 냉소적인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실망의 기록이 있고, 지나온 관계의 흔적이 있다. 아무 기대 없이 태어난 사람은 인간을 혐오하지 않는다. 혐오는 언제나 기대의 잔해에서 태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히 인간을 포기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가끔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리고, 예상치 못한 친절에 오래 생각하게 된다. 그런 순간마다, 내가 아직 완전한 미산트로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인간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을 다시 믿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일지도 모른다. 믿음이 깨졌을 때,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미산트로프라는 말은 내 상태를 설명해 주는 단어이지, 내가 되고 싶은 정체성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인간을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에게 기대를 완전히 놓지 못하는 모순 속에 있다. 그 모순이 지금의 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아마 언젠가는, 사람을 다시 조금 더 믿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보다 더 조용히 혼자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괜찮다. 적어도 이제는 안다. 인간을 싫어하게 된 나 자신을, 그 이유조차 미워할 필요는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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