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와 열쇠

by 이승우

나는 오래된 자물쇠다
겉은 단단히 녹슬어 있고
속은 조용히 닫혀 있다

사람들은 나를 지나치며
열리지 않는 것이라 말했지만

사실 나는
함부로 열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수많은 손길이 스쳐 갔다
억지로 돌리려 하고
두드리고
부수려 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깊이 잠겼다

그러다
네가 왔다

너는 요란하지 않았다
힘으로 돌리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심스럽게 맞춰 보았다

찰칵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그 순간
내 안의 시간들이 흔들렸다

나는 깨달았다
열린다는 건
부서지는 게 아니라는 걸

사랑은
억지로 돌려 맞추는 힘이 아니라
처음부터
서로의 모양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라는 걸

네가 내 안으로 들어오자
어둡기만 하던 공간에
빛이 스며들었다

먼지 쌓인 기억들 사이로
숨이 돌았고
굳어 있던 감정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녹슨 쇳덩이가 아니었다

나는
무언가를 지키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은 자물쇠를 보면
닫힘을 떠올리지만
사실 자물쇠는
열릴 단 하나의 열쇠를 기다리는
가장 오래된 약속이다

네가 사라진다면
나는 다시 잠기겠지
하지만 예전처럼
차갑게 굳어 버리진 않을 거다

이미 한 번
빛을 본 심장은
어둠을 예전처럼 믿지 않으니까

나는 오늘도
겉으론 조용히 닫혀 있지만

속에서는
네가 남긴 온기가
아직도
따뜻하게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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