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설명서

by 이승우

만약 사람에게도 설명서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새 휴대폰을 사면 기능과 주의 사항이 적혀 있고, 기계를 사면 고장 났을 때의 해결 방법까지 적혀 있다. 그런데 정작 가장 복잡한 존재인 인간에게는 그런 안내서가 없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라는 사람의 설명서는 어떻게 쓰여야 할까?”

이 사람의 외관은 평범하다. 눈에 띄게 특별하지도, 튀지도 않는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장난도 치고, 분위기에 맞춰 웃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문제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부 구조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사소한 말 한마디를 오래 곱씹고, 이미 지나간 장면을 머릿속에서 여러 번 재생한다. 겉은 단순해 보여도, 속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이 사람의 기본 성향은 ‘관계 중심’이다. 사람을 쉽게 싫어하지 못하고, 한 번 가까워지면 오래간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말투, 표정, 사소한 습관까지 기억해 둔다. 대신 기대도 커진다. 기대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실망도 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상처를 받으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속에서는 천천히 금이 간다.

사용 방법은 사실 어렵지 않다. 진심을 보여 주면 된다.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여 주면 된다. 이 사람은 완벽한 말보다 서툴러도 솔직한 말을 더 믿는다. “네가 힘들었겠다”라는 한마디가 길고 화려한 위로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 관심은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걸 이 사람은 잘 안다.

하지만 주의 사항도 있다. 이 사람은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문제였을까?’ ‘내가 부족한 걸까?’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비교에도 약하다. 다른 사람의 장점은 크게 보이고, 자신의 장점은 작게 보인다. 그래서 가끔은 스스로를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고민이 많다는 건 더 나아지고 싶어 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사람의 에너지원은 ‘인정’이다. 거창한 칭찬이 아니어도 된다. “잘했다”라는 짧은 말, “네가 있어서 좋다”라는 솔직한 표현 하나면 충분하다. 그 한마디로 며칠을 버틸 수 있다. 반대로 무심한 태도나 가벼운 농담 속의 진심 없는 말에는 생각보다 오래 흔들린다.

고장 증상은 조용해지는 것이다. 평소보다 말이 줄고, 연락이 뜸해진다. 웃음이 옅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때 억지로 밝게 만들려고 하면 오히려 더 멀어진다.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옆에 가만히 있어 주는 것이다. 이 사람은 완전히 부서지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 스스로를 정리하고 돌아온다. 무너질 것 같아도 끝까지 버티는 성질이 있다.

장점도 분명히 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무심해 보여도 속으로는 꽤 많은 것을 책임지고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기보다 이해하려고 애쓰고, 세상을 완전히 부정하기보다는 그래도 한 번 더 믿어 보려고 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성실하게 성장 중인 사람이다.

이 사람은 빛과 어둠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밝아 보이지만 가끔은 깊은 고독을 느끼고,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따뜻한 말 한마디에 쉽게 녹는다. 그러나 그 모든 모순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나는 나의 약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약함이 있기에 누군가의 약함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설명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실패를 겪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계속 수정될 것이다. 새로운 경험이 추가될 때마다 장점과 단점의 목록도 바뀔 것이다. 어쩌면 몇 년 뒤의 나는 지금의 설명서를 보고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아직 성장 중이며,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서툴고 흔들려도, 끝까지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 자신이다. 그러니 이 설명서는 결함이 있는 제품의 안내서가 아니라, 계속 업데이트되는 존재의 기록이다.
이것이 현재 버전의 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조용히, 다음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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