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사람의 성 아래에 붙여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부르는 말.

by 헤이리그로스

나는 남자이면서 이름이 이선영이다. 나는 내 이름이 남자 보다는 여자 이름으로 더 많이 쓰인다는 것을 고등학교쯤 되어서 알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주근깨가 많아서 한 선생님이 나를 "이름도 여자 같으면서 깨도 많으니 넌 깨순이라 불러야 겠다" 불렀다. 뭐 주근깨가 컴플렉스였긴 했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는 깨보다는 순이라는 별칭에 더 신경이 쓰였다. 내 이름이 여자 이름 같은가? 혼자 생각을 하다가 친구한테 "니가 생각해도 내 이름이 여자 이름 같냐?" 라고 물어봤더니 "당연하지 니가 쑥맥이어서 주변에 여자애들이 없어 그렇지 여중이나 여고 운동장에서 선영아 나와봐라고 크게 외치면 아마 대여섯명은 창문 열고 볼걸" "정말 그렇게 선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많단말야?" 그 후 부터는 유심히 내 이름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는데 정말로 남자보다는 여자이름이 많았다. 아니 솔직히 남자가 내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본적이 없다. 성인이 되고 부터는 이름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심심치 않게 생겼다. 우선 매거진 에필로그에서도 말했듯이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선배들이 내 이름만 보고 여자인줄 알고 여자 동기랑 단둘이 한방이 넣어 놓은 적이 있다.

한번은 유명한 스터디 그룹에서 참여 인원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서 동아리 선후배들과 같이 신청을 했는데 실력좋은 선후배들은 다 떨어졌는데 나만 붙은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황당해 하다가 부러워 하더니 반대로 시기질투를 넘어 음모론까지 나왔다. 분명히 거기에 아는 사람이 있거나 돈을 썼거나... 부정한 방법을 썼을꺼야장난처럼 말하며 내가 스터디 그룹에 참가하는 날까지...동아리는 뒤숭숭했다. 정작 스터디 그룹에 갔더니 이유가 참.. 스터디 그룹에 선정된 사람들이 모여서 오리엔테이션을 하던날 운영자가 온 사람들을 한명씩 이름을 불러 출석을 체크했고 자기 소개를 간단히 요청했다. 전자공학 스터디 그룹이다보니 거의 대부분이 남자였다. 내 순서가 되어 운영자가 이름을 불렀고 내가 대답을 했더니 아니 여자분이 아니고 남자분이였네요~ 이 분야에 여자분들이 많지 않아 여자 신청자가 거의 없어 활성화 차원으로 선영씨가 초보이긴 했지만 여자분인줄 알고 뽑았는데... 하며 운영자는 속내를 감출수가 없는지 너무 아쉬운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난 뭐 이름 덕분에 유명한 스터디 그룹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왠지 실력이 아닌 이름때문에 들어 갔다는게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거야 기분 나빠 해야 하는거야? 학교에 돌아와 선후배들에게 말했더니 얼마나 배꼽을 잡고 웃던지 한 선배가 넌 역시 이름 천재야 라고 말하는 것이다. 얼굴천재는 들어봤어도 이름 천재라니... 그럴만두 한게 온라인 세상으로만 들어가면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초기 채팅 프로그램은 성별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이디와 닉네임 밖에 없다. 나는 주로 본명을 그대로 해서 들어가다 보니 남자들로 부터 채팅 초대 멧세지가 지속적으로 들어온다.

내 이름을 가지고 가장 전성기는 바로 아래 광고가 나오면서 였다. 이 광고는 파급력이 엄청 강했다. 이 광고는 마이클럽이라는 여성 전용 사이트에서 광고 카피를 "선영아 사랑해"로 한 것이다. 당시 선영아 사람에는 담벼락, 전봇대, 버스, TV 등에서 정말 엄청난 광고를 했다. 그 바람에 20년이 지난 지금도 내 이름을 말하면 이 광고를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마이클럽 '선영아 사랑해' 광고 장면

내 이름과 관련된 가장 대박은 사건이 내가 결혼하고 30대 중반쯤 됐을 때다. 그때 당시 친해졌던 사회 친구가 있었는데 술 먹으면 안부차 자주 전화를 했었다. 한번은 친구가 약간은 화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선영아 미안한데 우리 마누라랑 통화 좀 해라" "엥 왜 갑자기? 무슨일 있어?" "하여튼 받아봐" "알았어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진석이 친구 선영입니다" "아... 네... 정말 남자분이군요..죄송합니다" "네?" 라고 대답하자 마자 친구가 "아니 우리 아내가 도대체 선영이라는 년이 누구길래 밤에 술만 먹으면 전화를 하는거냐고 하두 바가지를 긁어서 전화 했다. 이제 오해가 풀렸으니 됐다 다시 전화할게" 헐... 정말 한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었다.

얼마전에도 이름과 관련된 일이 있었다. 우리 가족이 새로 지어 이사온 타운하우스 주민들과 집에 관련된 하자와 보수에 대한 소통하고 친해지기 위해 단톡방을 만들었다... 단톡방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됐다. 각자 서로 전화 번호를 주고 받는 상황에서... 옆집 아주머니가 208호는 애엄마이름이 이선영이지요? 근데 톡방에 들어와 있는 은하라는 분은 누구세요? 아..네 이선영은 저희 남편이구요.. 제가 은하예요... "아 그래요 하하 몰랐네 덕분에 이름은 잘 기억하겠어요~"

그렇다 나는 이런 에피소드로 인해 사람들이 쉽게 내 이름을 잊어먹지 않는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한번도 이름이 여자같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적이 없다. 덕분에 사람들에게 잘 기억도 되고 소소하게 이벤트가 생겨 좋다. 평생 나를 쫓아 다닐 이름 세글자 이선영~!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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