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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통 Dec 28. 2021

나는 왜 네가 힘들까

재판기일 D-45

퇴근 후 집에 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사랑스러운 아들이 기다리고 있만, 동시에 협의이혼 과정 중에 있는 남편도 있기 때문이다.


협의이혼 신청서를 낸지 한 달 반이 지났고, 판사님 앞에서 재판 확정을 받는 날까지도 한 달 반이 남았다. 지난 한 달 반은 참 더디게 갔다. 괴로운 마음을 대충 덮어두고, 아들과 친정 엄마를 위해 밥벌이를 이어나가야 했고, 내 사정을 모르는 직장 동료들 앞에서 평범한 가정을 이어나가고 있는 척 해야 했다.

이직 한 지 한 달도 안 된 직장 동료들이 남편 분은 뭐하시냐고 물을 때, 태연하게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하긴, 거짓말도 아니지. 아직 남편은 맞으니까.


왜 이렇게 한 공간에 있는 것이 힘들까. 그의 목소리와 숨소리만 들어도 괴로울까.

그는 태연하게 거실을 지키고 있고, 평소처럼 저녁마다 술을 마시고 있는데. 나만 이 세상의 괴로움을 다 짊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왜 나만 괴롭다고 느껴질까.


나는 상대방에게 존중받고, 배려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괴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결혼 생활 내내 그랬다. 대표적인 예가 담배다. 흡연자인 남편은 내가 임신 중에도, 아기가 태어났을 때도 집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내가 아무리 바깥에 나가서 피라고 얘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의 담배냄새보다도 괴로운 것은 정당한 요구가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법적 아내와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버젓이 데이트 어플을 통해 만난 낯선 여자들과 대화하고, 가끔 외박을 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괴롭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끝난 사이지만 그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여전히 상처가 된다.


자신이 못 견디게 괴롭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인생에서 만나선 안될 해로운 사람을 피할 수가 있다. 에게는 그것이 무례함이었다. 흡연, 주사, 바람은 나에 대한 무례함과 무시의 표상일 뿐이다.


그와의 고통스러운 법적 관계가 끊어지는 날까지 45일이 남았다. 그 날이 오면 나는 축배를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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